2015.04.12. 주일설교<느8:10. 여호와로 기뻐함이 성도의 능력>
70년 바벨론 포로생활은 말이나 글로 다할 수 없는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대언자, 즉 선지자를 수없이 보내 목이 쉬도록 외쳤건만 지각없는 왕과 백성들은 외면했습니다. 렘29:10-13절을 찾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렇듯 정확하게 찍어서 예언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눈에 안 뵈는 하나님은 말씀으로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어떤 성경구절을 읽거나 들을 때 가슴에 와 닿아 감동이 되면 그 말씀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능력과 약속이 되는 것을 믿기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의 큰 줄기입니다.
1.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해야 합니다.
2. 모든 기쁨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아는 것이 힘입니다.
3. 모든 슬픔과 불행이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아는 것이 힘입니다.
4. 지각있고 능력있는 성도는 모든 기쁨의 근거는 하나님으로부터 찾아내고 모든 실패와 아픔은 자신에게서 찾게 됩니다.
5. 그러므로 자랑할 일은 오직 하나님이며 자신에게는 부끄럼과 부족뿐인 줄을 아는 게 힘입니다.
시64:10절입니다. “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 혹 우리에게 자랑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과 안다는 것입니다.<예설>
렘9:23-2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었습니다. 문제는 이 말씀이 실생활에 녹아들지 않고 서로 따로따로 물과 기름처럼 하나되지 못하는 게 보통 저와 여러분, 성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 배워 잘 알고 있어도 몸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입니다. 만일 말씀과 삶이 하나가 된다면 그는 과연 힘 있는 성도로서 기뻐하는 삶으로 하나님을 만인 앞에 증거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참능력의 삶이 기쁨으로 시작되는 첫 신호가 되길 기대합니다.
첫째 여호와로 기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보다 눈에 뵈는 것에 일단 마음이 빼앗겨 기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합니다. 당연합니다. 우리의 삶은 먼저 몸으로 느끼는 것이 정상입니다. 다만 성도는 하늘에 속한 자답게 만사만물에서 그 근본이치와 결과를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찾는 자들입니다. 그렇게 그 마음의 생각이 근본부터 달라 구별된 이들로서 만사의 이치에 있어 그 뿌리는 하나님이신 줄 우리가 믿고 또 알고 있습니다. 세상이 결과만을 말할 때 교회는 뿌리와 과정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뿌리가 되시는데 읽은 렘29:10절 이하 말씀처럼 인생의 화평과 부요와 기쁨을 원하시는 하나님께 무한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그 기쁨의 뿌리가 하나님이신 것을 아는 것은 성도에게 대단한 힘이 됩니다. 70년 포로생활에서 구원받은 일은 결코 이스라엘 스스로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한 일이란 강대국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한 불신앙이었습니다. 더욱이 각종 영적 정치적 부패는 사회부패로 이어져 그 패역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는데 그런 이스라엘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구해주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에서 그 이유를 찾게 됩니다.
긴 포로생활의 참상을 뚜렷하게 기억하는 백성들은 그 해방과 자유의 기쁨을 이길 수 없어 목 놓아 우는데 지나온 날들의 서러움이 복받쳐 올라옵니다. 불순종했음을 깨달고 회개와 기쁨이 뒤엉키는 순간이었습니다. 불순종과 우상숭배로 인해 얼마나 긴 세월을 힘겹게 살아왔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격한 감동으로 우는 백성에게 본문은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합니다. 앞뒤를 살펴보면 여호와의 성일, 주일이니 근심하지 말고 넉넉히 먹고 마시되 준비 못한 이들에게도 나눠주면서 기뻐하라는 것인데 이 기쁨이 성도의 힘이라고 말합니다. 그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다른 것들로 기뻐하면서 거기 의지하고 경배했습니다. 그 결과 칠십년을 바벨론의 참혹한 포로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쁨의 근거로 삼으라는 선지자의 지적입니다.
다음 둘째 모든 기쁨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아는 게 힘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게 힘이고 하나님이 기쁨의 근원이심을 아는 게 힘입니다. 내 백성이 무지하여 망한다는 말씀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지식정보가 결국 힘이고 권세입니다. 1950년대 이승만대통령 시절에는 “아는 게 힘”이라는 말이 크게 퍼져 있었습니다. 너무 무지해서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는 지금 우리도 “아는 게 힘”인 때를 살아갑니다.
호6:6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외치던 호세아 선지자는 이 백성이 무지해 망한다는 하나님말씀을 가정 먼저 들은 선각자였습니다. 무엇을 분명히 깨달아 알아야 합니까? 거듭 받는 말씀, 우리의 기쁨은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시작해 그 기쁨이 능력이 돼 슬픔과 절망과 분노와 수치의 근원인 육체를 이기는 그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슬픔과 불행은 사실상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했다는 분명한 각성입니다.
이 각성은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겸손하게 만들어 다른 이들을 함부로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않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불행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고 실패하지 않고 승리하길 바라십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리로다.”-애3:33. 우리의 행복과 풍성을 우리보다 더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행복과 풍성을 바라시는 하나님은 그것들을 위해 때로는 모진 풍파도 못 본 척 하시는 줄 믿습니다.
다음 넷째는 만사의 근거를 바로 찾아야 지각있고 능력있는 성도의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명의는 수술을 잘해서 명의가 아니라 진단을 잘해 병의 뿌리를 바로 찾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기쁨과 행복, 그리고 슬픔과 불행의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으려한다면 그는 평생 불평만 하면서 살게 됩니다. 난 왜 이렇게 못났나? 하필이면 이런 가문에서 태어났는가? 왜 그 인간이 그날 거기서 그런 말을 했나? 남의 집 자손들은 다 괜찮던데, 우리집 자식은 이거 뭐야? 끝없는 불평을 늘어놓게 됩니다. 그러나 죄에서 구원받아 천국영생을 약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으로 깨어있다면 모든 기쁨과 행복의 뿌리는 하나님이시고 불행과 아픔과 수치의 원인은 자신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인정하고 불평대신 돌이킬 줄 압니다.
깨닫고 돌이켜 회개하는 사람이 역사적 위인보다 하나님 앞에 더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 안에 들기로 결정해야 합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의 능력이시니 듣고 아멘하는 이마다 그리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불행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깨달아 회개한 후 한발 나아가 감사하는 성도되길 기대합니다. 감사하면 그 때부터 기쁨이 몰려오기 때문입니다.
이제 끝으로 하나님과 급속하게 가까워지고 또 지속적으로 친밀함을 유지하여 무슨 일에나 감사하고 기뻐하는 길을 일러드립니다.
마지막 말씀을 전하기 전에 질문을 드립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계속 만나고 싶고 함께 하고 싶습니까? 부모자식, 부부지간, 친구지간을 무엇이 가깝게 합니까?
그렇습니다. 먼저는 느낌과 생각이 하나여야 합니다. 어떤 사안 앞에 함께 기뻐하고 함께 미워하며 아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 네 것 내 것의 구분이 없을 정도로 소유를 공유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느끼시길 원하기 바랍니다. 주님의 생각을 닮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그리고 주님의 것이 다 내 것이니 공연한 욕심 소용없는 걸 알면 인색하단 말 안 듣게 됩니다. 모든 것 다 몸까지도 잠시 빌려 쓰다가 빈손으로 갑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 다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또 하나님께 돌려드릴 것이니 하나님 앞에 후덕하게 넉넉하게 드리며 살기 축복합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드립니까? 생각과 중심과 물질과 시간이 다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낌없이 드리세요. 그러면 그 분과 대단히 가까워집니다. 가까워지면 진정으로 자신이 하나님과 아는 사이라는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넉넉하게 기뻐하며 살 수 있게 됩니다. 아멘대로 될지어다.
아멘.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영존의 아버지 하나님 여호와시여. 우리의 어리석음과 불신앙을 불쌍히 여기소서. 오늘 말씀이 뼈와 살에 새겨져 잊혀지지 않게 하옵시며 인생의 답을 엉뚱하게 눈에 뵈는 것에서 찾는 어리석음이 사라지게 하옵소서. 주님 손 안에 없는 것이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고생인 우리인생들이 속히 주님을 깨닫되 말씀 안에 깊이 들어가 알게 하시고 이젠 주님과 사귀어 살면서 정녕 주님 한분만으로도 넉넉하게 기뻐하며 사는 성도들 다 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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