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29. 주일낮예배<민19:1-10(7-9). 정결케 하는 잿물의 제조법>
오늘 우리가 받는 본문 하나님말씀은 속죄제에 사용할 잿물 만드는 방법입니다. 잿물은 비누의 원료입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도 비누가 없을 때 잿물을 만들어 사용하다가 서양문물의 진입과 함께 양잿물이라고 부르는 가성소다, 즉 수산화나트륨이 비누의 원료로 사용되면서 잿물대신 가정에서 세탁에 쓰였습니다. 본래는 콩깍지나 짚단 등을 태워서 재를 만든 뒤 시루에 앉혀 물을 부어내린 잿물에 끓는 돼지기름과 쌀겨를 섞은 굳혀낸 게 과거의 비누였습니다.
본문을 한절씩 읽어가며 속죄제에 사용되는 잿물제조방식을 살피며 은혜를 나눌까 합니다.
1-2절 :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를 메지 않은 붉은 암송아지가 그 재료로 사용됩니다. 정결예식, 속죄제에 사용될 제물인 만큼 먼저 재료부터 흠이 없고 정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죄를 씻어 정결하게 하시고 의롭게 하시려고 죄를 통하지 않고 성령으로 죄 없는 그리스도께서 제물로 오신 것과 같습니다.
4절 : 회막 앞에 그 피를 손가락에 묻혀 일곱 번을 뿌립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이고 그 사망을 면할 길은 다른 희생으로 속죄의 피를 드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습니다. 일곱 번 생명의 피를 뿌림으로 대속제물로 쓰일 송아지의 완전한 죽음과 완전한 속죄를 이룹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완전한 죽음, 완전한 대속, 완전한 부활을 떠올리게 됩니다. 주님의 부활은 영원한 삶으로 이어져 우리를 당신 안에 그리고 당신이 우리 가운데 영원히 계심으로 육체는 잠시일지라도 우리는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5-6절 : 가죽과 고기와 피와 똥을 불사르고 제사장은 동시에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을 그 불가운데 집어 던집니다. 당시 이런 제사의 형식을 보면 다분히 주술적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형식은 백성들의 정서에 적합했고 그 주술적 행사 가운데는 상당한 의미가 깔려 있다는 걸 우린 조금만 살피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선 온전한 희생으로 온전한 죄사함과 그로 인한 하나님과의 온전한 회복을 의미합니다. 거기에 제사장이 불에 던지는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은 각각 의미가 있는데 백향목은 생명의 고결성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슬초가 지니는 정결하게 하는 상징과 붉은 색실이 뜻하는 보혈과 그 피로 구원한 영원한 생명의 의미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동양에선 지금도 실타래가 대부분 무병장수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7--8,10절 : 제사장은 붉은 암송아지의식을 집례하는 동안 그 속죄제물에 전가된 죄와 죽음의 부정에 일단 접촉됐다고 보아 정결하게 하는 예식을 한 후에야 비로소 진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죄에 관한 한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하나님 앞에 엄숙히 정결하게 하는 모든 법을 지켜야 합니다.
9절 : 죄가 씌워진 암송아지를 태워서 만든 재를 진 밖에 두었다가 물을 앉혀 내리면 거기서 미끈거리는 잿물이 나오고 그것은 속죄제에 부정한 죄를 깨끗하게 하는 정결예식에 사용하는 세척수가 되었습니다. 이 잿물로 만든 정수의 원료로는 암송아지 뿐 아니라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을 태운 재로 만들어 그 의미가 죄로 인한 사망에서 깨끗하게 하는 세척수중에 순도높은 세척수였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죄를 씻는 잿물입니다. 재는 불탄 찌끼로서 빻아서 불면 날라가는 티끌입니다. 죄를 이 잿물로 씻어내리는 정결례의 의미는 나름대로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바가 큽니다. 먼저 구약시대에 이미 잿물을 세척수로 또는 죄를 씻는 결례에서 정수로 사용하고 사람들이 잿물을 비누삼아 사용했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깊은 의미를 봐야 합니다. 잿물은 지금의 비누와 같은 성분이며 오늘날의 비누는 화학기술로 다량생산된 것입니다. 잿물에 향료와 피부보호제를 섞어서 비누를 만들지만 그 원료는 가성소다, 화학명으로는 수산화나트륨입니다. 물에 넣어 희석시킬 때 7-80도의 높은 열을 발생하기도 합니다. 잘못 양잿물에 물을 직접 부으면 그래서 폭발하기도 합니다. 반드시 다량의 물에 소량의 가성소다를 조금씩 집어넣어야 합니다. 이러한 가성소다가 뭔가를 태운 잿물이 원료성분이라는 것은 지저분한 때를 씻어 내리는 데는 태워지는 희생과 죽음이 요구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이치라는 것도 하나님이 명령하신 제사법에서 그 기초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봐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죄를 씻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기 죄를 씻는 잿물은 살피고 있습니다. 뭘 태워서 만든 숯덩이같은 재입니까?
또 무슨 불로 태웁니까? 그렇습니다.
1. 죄를 씻는 세척수, 정결하게 하는 잿물이 필요합니다.
히9:22절입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정결하게 하는 피는 구약처럼 더 이상 짐승의 피가 아닙니다. 죄인의 피도 아닙니다. 죄없이 모든 인생들을 구하시려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피입니다. 그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 깨끗하게 하는 잿물입니다. 많이 운다고 구원받는 것 아닙니다. 노력한다고 받는 구원이 아닙니다. 공부많이 해서 받는 구원도 아니고 고매한 인격이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요일1:7절 함께 읽습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오직 예수를 믿어 그 피를 의지함으로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찬259장 1절을 함께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더러운 죄 희게 하는 능력을 그대는 참의지 하는가. 예수의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마음속의 여러 가지 죄악이 깨끗이 씻기어 있는가?♬
2. 성령의 불로 우리의 옛 자아가 태워지기 원합니다.
성령의 불로 자신 안에 자신도 싫은 각종 상처와 억울함과 교만함과 불신앙과 불순종과 이기심을 태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릇된 편견과 불평을 번제단 위에 올려놓고 하나님의 불로 태워야 합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의 불이 저와 여러분 안에 있는 모든 해묵은 죄악과 부족과 수치와 허물의 찌끼들을 다 태우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잘 태워져 검은 숯이 되면 많은 물소리와도 같은 주님의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게 될 것이며 우리의 육신을 통해 분명하게 삶으로 증거될 줄 믿습니다. 화전민은 숲을 태워 밭을 일궈 경작하는 농민을 말합니다. 옛사람이 확실하게 타없어진 그 과거라는 자리가 까만 옛사람의 재, 아픔과 슬픔의 경험으로 덮여 겸손한 옥토되면 그렇게 거듭난 저와 여러분 심령밭에 말씀의 씨가 뿌리깊이 든든하게 자리잡을 줄 믿습니다. 꾸준하게 듣는 설교말씀의 단비가 지금 촉촉이 내려 적셔지고 있습니다. 새 생명이 움터 올라오고 있습니다. 느껴집니까? 인정해야 바랍니다. 우리가 못 느껴도 주님이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기도합니다.
주여. 이백성가운데 계셔서 우리의 부끄러운 옛자아가 말씀을 따라 우리에게 오신 성령의 불로 잘 태워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그 재위에 주의 보혈, 생명수를 적셔서 잿물이 흐르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과가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되는 정결의 역사를 이시간 베풀어 주옵소서. 그리하여 맑은 영혼 모두 되어 주님의 형상을 닮고 그 얼굴 오늘 보며 세상이 알고 스스로 놀라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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