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강단

2015.07.05주일예배<민23:5-12.나귀의 입을 여신 하나님-3.시리즈끝>

by 설렘심목 2015. 7. 6.

2015.07.05주일예배<23:5-12.나귀의 입을 여신 하나님-3.시리즈끝>

이미 하나님이 어찌하실 것을 발람은 알고 있었지만 뇌물로 인해서 한 번에 거절하지 못하고 발락왕의 귀족들과 함께 바알의 산당에 올라갔습니다. 본문은 발람의 입술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이스라엘강복(降福)의 내용입니다. 주께서 내려주실 믿는 자의 복을 발람은 어떻게 전하고 있습니까?

8절을 함께 읽습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꾸짖으랴.”

 

1. 세상과 인간이 가로막지 못하는 복입니다.

 

택한 주의 자녀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각양 복을 주시기로 결정된 자들입니다. 발람이 발락의 청을 들어주려 했지만 하나님이 막으셔서 도리어 축복의 선포를 하게 하셨습니다. 제 아무리 뇌물을 갖다 주어도 하나님이 주실 복을 저주로 바꿀 순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계획 속에 복주시기로 작정한 백성이나 개인은 그 복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발람은 10절에서 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 4분지 1을 뉘 능히 셀까라며 축복합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술사 발람은 하나님의 인도로 이스라엘진영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이르러서 매우 중다한 족속의 큰 무리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감동을 주시는 대로 노래를 시작합니다.

발락왕이 의도하고 원했던 대로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에 따라 이스라엘백성을 축복하는 발락은 몇 번이고 자신의 축복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고 꾸짖지 않은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고 꾸짖겠냐는 것입니다. 천한 술사조차 그 입술을 주장하셔서 저주대신 축복을 베푸시는 분이 우리들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발락은 발람이 자신의 부탁대로 저주하지 않자, 이번엔 이스라엘 진영의 일부만 보이는 다른 데로 데려 갑니다. 혹시 발람이 이스라엘의 한 끄트머리만 보고 왜소하게 여겨 저주하지 않을까 기대했을 겁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발람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스라엘을 축복합니다. 21절입니다.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의 힘이 들소와 같도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결정한 일은 인간의 어떠한 반응에도 무관하게 지켜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어느 누구도 흔들 수 없는 확정된 사실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은 그 허물과 반역에도 불구하고 이미 복주시기로 결정된 백성입니다. 이스라엘이 강하게 모진 훈련을 받는 이유도 주께서 주시기로 확정된 만 가지 각양 복이 온전해지기 위한 것들이었습니다. 아무리 귀하고 아름다운 복도 받을만한 그릇이 돼있지 않으면 속히 사라지고 맙니다. 구멍난 그릇은 아무리 채워도 계속 새어나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릇부터 고치시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복받을만한 도구로 변화시키신 다음 주실 복을 내리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고 잊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복은 결코 부족하질 않습니다. 주께서 판단하실 때 그만하면 족하다는 그 때까지 넉넉하게 부어주십니다.

다만 우리가 힘겹게 사는 것은 인간의 문제 곧 내 그릇의 문제, 신앙과 인격의 문제일 뿐입니다.

복을 담을만한 그릇이 아직 돼 있지 않으면 주께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릇을 만들어 가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시기로 한 복을 누가 감히 가로막겠습니까? 23절에선 야곱을 해할 점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라고 발람은 하나님의 감동을 이기지 못하고 저주대신 축복의 예언을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언하기는 저와 여러분에게 오는 갖가지 복을 방해하는 건 남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임을 분명히 일러드립니다. 세상이나 환경이 나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나를 방해하고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술사 발람도 오늘 본문에서 증거하기를 야곱을 해할 점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 한번은 야곱이라 했고 한번은 이스라엘이라 함은 우리들 믿음의 사람들이 갖는 인격 여하에 무관하게 임하는 하나님의 강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인격이 출중하든지 아니면 믿음인격이 허약하여 늘 부끄럽든지 상관없이 성도라 이름을 받은 자에겐 어떠한 저주의 주술도 먹혀들지 못한다는 것을 본문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술이 무관한 축복의 백성 우리 교회,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보여주신 이스라엘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본문 9-10절을 함께 읽습니다.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 4분지 1을 누가 능히 셀까.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 하매

 

2. 뭇 사람 중에 골라 뽑아 우뚝 선 자의 탁월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많은 열방 중에 하나처럼 여기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백성은 홀로 처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많은 백성의 무리 가운데 있지 않고 홀로 우뚝 서서 높고 영화로운데 거한다는 뜻으로 민족 중에 빼어난 민족이 될 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래 전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이 땅에 오신 후 바울을 통해 이방인에게 구원의 길을 여신 주님께서는 이제 예수이름을 붙잡고 부르는 자마다 구원하시고 자녀 삼으셨습니다. 열두제자에서 보았듯이 히브리인의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우리를 부르셔서 크고 놀라우신 일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주님은 쉬지않고 일하십니다. 믿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주의 귀한 도구로 살고 있는 한, 아무도 우릴 해치지 못합니다. 아무리 큰 뇌물을 주고 수단을 사용해도 하나님의 만가지 강복예언과 신실하신 언약을 변개할 수 없습니다.

발람은 또 이어서 축복합니다. “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 4분지 1을 누가 능히 셀까.”4분지 1이란 이스라엘이 동서남북 네 개의 진영으로 배치된 중 하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의 수와 규모가 매우 방대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받고 지금은 비록 미약해도 훗날 약속의 주님께서 이 말씀대로 우리의 미래를 극히 밝고 크게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21:17-18절에서 주님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모압왕 발락이 아무리 발람을 유혹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했지만 하나님의 계획을 흔들 수는 없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입성하기까지 아무도 하나님과 이스라엘백성의 약속을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가나안은 이제 우리에게 약속된 저 천국 주님이 다스리시는 평화와 풍요의 본향입니다.

 

사랑하는 비전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열어주신 꿈이 있습니다. 교회와 가정을 통해서 그리고 학업과 생업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가 생각하기 전에 꿈꾸고 이미 계획하셨습니다. 우리의 꿈이 주님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기뻐하시고 우리도 소원하는 것이라면 이는 과연 환상적인 미래일 것입니다. 꿈도 많고 계획도 많은 성도여러분,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이루어서 하나님의 꿈을 그대로 이어받아 기쁨으로 힘쓰는 저와 여러분이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