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01. 주일예배<롬5:17-20. 사망의 왕과 생명의 왕>
하나님은 어떤 헌신자를 원하시는 걸까? 99%헌신된 자 100명보다 100%헌신된 한사람을 원하신다는 말을 들어봤습니까? 이 말은 1%부족한 99명을 무시하는 말이 아니라 정녕 귀한 일을 감당할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은 언제나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민족이나 인류를 범죄에 빠지게 해 참혹하게 하는 것도 실은 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한 영혼이 그래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히틀러 한사람의 잘못된 생각으로 600만 무고한 유대인이 아무 이유도 모른 채 가스실에서 또는 각종 실험대상으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본문은 한 사람으로 온 인류에게 사망이 찾아와 왕노릇하게 되었고, 또 한 분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많은 사람이 영원한 생명 안에서 평강의 왕노릇을 하게 되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 예배하는 우리는 평강의 왕이시오, 영원한 생명의 왕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의 왕 노릇은 과연 무엇이며 우리가 영원히 바라봐야 할 삶의 가장 고귀한 가치는 어떤 것인지 살피기로 합니다. 이 말씀가운데 예수의 영이 저와 여러분 가운데 임하기를 바랍니다. 남은 평생을 바르고 효과적이며 풍성하게 하는 길은 무엇인가?
1.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순종입니다.
19절을 함께 읽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온 인류의 신분이 죄인으로 바뀌었듯이 죄인이 죄를 용서받아 생명과 의가 임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드러낸 건 한 사람 예수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한 것임을 본문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삼상15:22절에서는 불순종하여 왕권을 빼앗기는 사울에게 사무엘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순종이 예배드리는 것보다 낫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예배의 결과물로서 순종이 따라야하는데 순종치 않으면 드린 예배가 결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란 성령의 충만한 임재와 오직 진리를 선포하고 진리를 따르는 예배를 말합니다. 즉 성경과 성령의 조명과 인도를 받는 예배를 말합니다. 그런데 순종하는 마음과 그 자세가 없으면 이러한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느 임금이 명령했습니다. 누구 한 사람 저 구멍난 항아리에 물을 퍼서 가득 채우라는 것입니다. 서로 눈짓하며 피합니다. 그 중 한 신하가 임금의 명령이니 물을 길어 붓는 것이 도리라고 말한 뒤 하루 종일 물을 퍼서 구멍난 항아리에 부었습니다. 몇시간을 그렇게 어리석은 일을 하는데 항이리는 여전히 빈항아리인데 대신 우물 바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두레박이 바닥을 긁기 시작할 때 뭔가 걸려 올라오는데 신하는 놀라고 말았습니다. 빛나는 큰 황금덩이가 있습니다. 임금에게 달려가 아뢰니 “그것은 사리를 살피지 않고 명령에 순종한 상급이니 네가 가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선 이것저것 살피지 않고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저와 여러분의 영적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임을 믿으시기 축복합니다. 요리조리 따져본 뒤 믿을만해서 믿고 사랑할만해서 사랑하고 순종할만해서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상급이 없습니다. 사람과 세상 앞에 영리하다는 칭찬을 들을 순 있습니다. 그러나 순결한 믿음을 원하시는 주님의 칭찬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어린아이처럼 주님나라를 섬기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린 종종 환경이 우리에게 복종하길 원합니다. 특히 돈이 내게 와서 무릎 꿇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기도방망이를 내리쳤더니 돈이란 놈이 나타났습니다. “주인님 저는 뭔가를 통해서만 움직일 수 있답니다. 직장이나 사람이나 만나셔야 합니다.” 다시 내리쳤더니 하나님의 천사가 직장과 돈을 갖고 나타나서 말합니다. “이것들을 가지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순종으로 만나야 하오. 하나님의 사람에게 먼저 순종하시면 이것들이 당신 것입니다.”순간 절약하고 돈을 무섭게 여기란 설교가 생각났지만 그때마다 너무 듣기 싫었고 어디서 공돈이 안 생기나 요행을 기다렸습니다. 직장에 성실하라고 했는데 그만둘 날짜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먼저 만나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워 몸에 익혀야 합니다. 순종이 그렇게 이루어지면 세상과 환경이 내 앞에 순종하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실 때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영광이 주께 나타났고 많은 생명을 살리시는 놀라운 구원이 완성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순종할 때 그 순간 하나님은 우릴 향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영육간에 있어서 저와 여러분이 가장 신속하고 확실하게 바로 서서 번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2.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용서입니다.
덮개는 아구리보다 큽니다. 죄를 덮는 은혜의 시은좌 법궤 뚜껑은 불순종의 증거궤보다 큽니다. 불순종의 죄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큽니다. 그래서 용서하는 자는 언제나 용서받는 자보다 대인입니다. 대인은 겸손하게 낮아진 자입니다. 소인배의 교만을 용서하는 어진 마음과 단호한 의지로 부드럽게 모든 연약을 껴안고 덮어줍니다. 덮는다함은 보이지 않게 한다는 겁니다. 큰 자가 할 수 있는 용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순종은 용서하지 못할 죄인들을 용서하도록 하셨습니다.
18절입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아담으로 모든 인류가 죄인의 신분을 갖게 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의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의롭다함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습니다. 그리스도의 의는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쳐서 죄에 사로잡힌 인류를 용서하신 그 큰 용서를 말합니다.
한 부자가 세 아들에게 유산을 나눠준 뒤 한개 뿐인 소중한 가보를 물려주기 위해서 아들들에게 선한 일을 한 가지씩 한 뒤 말하라고 했습니다. 한 아들이 말합니다. “물속에 빠진 아이를 살려냈습니다.” 또 한 아들이 말합니다. “불속에 들어가 아이를 구해냈습니다.” 마지막 아들이 말합니다. “저는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는 원수를 구했습니다.” 부자아버지는 원수를 살려준 아들에게 가보를 물려주며 말합니다.“원수를 구해준 용서만큼 큰 사랑은 세상에 없다. 이 보물은 네 것이다.”
이 말을 기억하십니까? “죄의 징벌은 정의일 뿐 힘은 아니다. 진정한 힘은 죄를 용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만이 지닌 거룩한 힘이다.”영화 쉰들러 리스트 가운데 나오는 말입니다. 진정한 능력은 용서에 있습니다. 우릴 용서하신 주님은 그러므로 영생의 능력이십니다. 용서하는 그 기쁨을 아십니까? 용서함으로 믿음의 거인, 영적인 큰 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생명입니다.
부활영생, 그것은 반드시 죽음이라는 절대과정을 통과한 것입니다. 죽지 않고는 다시 사는 길이 없습니다. 부활, 죽지 않고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주님의 영광,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와 성도들이 영광은 원하지만 십자가는 피합니다. 그래서 원하는 영광이 나타나질 않습니다. 강대상에선 위로와 평강과 풍성을 말하며 그것을 가져다주는 십자가의 모진 훈련과 눈물과 아픔은 말하지 않으려 합니다. 경고하고 책망하고 성화를 촉구하는 선지자의 음성이 메마른 현대교회의 강대상은 이미 주의 영광을 포기한 것과도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순종은 생명을 드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순종은 모든 것을 포기한 대가로 영원한 생명을 죄인에게 값없이 공급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영생과 주권은 이제 죄와 허물로 백번 죽어 마땅한 인생들에게 더없는 복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꽃은 영원한 생명, 영생입니다. 죽을 몸이 죽지 않고 영원히 하나님 곁에서 찬송을 부르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생명에 대한 바른 정의를 갖고 있어야합니다. 이미 선포됐듯이 사랑이 사랑이려면 영원을 보장받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즉 잠시 사랑하고 사라질 것이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믿음도 잠시 믿고 후에 돌아설 것이라면 그건 믿음이 아니며 기쁨도 잠시 기쁘고 곧 사라질 기쁨이라면 진정한 기쁨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시말해 모든 것은 지속적으로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있어야 그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시고 우리에게 주신 생명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런 생명이 아닙니다. 숨을 쉰다고 다 생명이 아니라는 겁니다. 눈에 뵈는 모든 생명들은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생명과는 개념이 다릅니다. 한시적인 이 땅의 모든 생명은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영생은 끝나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예배자 여러분. 십자가의 고난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극심한 고통입니다. 인간의 몸은 통증이 심할 때 감각하는 신경물질의 휴즈가 끊어지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심한 고문으로 까무러치면 찬물을 끼얹어서 깨워 다시 고통을 주는 건 죽음 직전에 머물게 하는 고문입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는 인류가 경험한 어떠한 고문보다 더한 통증입니다. 그 심한 통증으로 하늘아버지께 순종하신 주님이 그 큰 용서로 인하여 우리가 살길을 얻되 영원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생명을 주신 분은 그 손에 인생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쥐고 계십니다. 모든 것 가운데 믿음을 달라고 간절히 구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생겨야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순종과 용서와 생명이 저와 여러분의 가슴을 찬미예수로 복된 삶을 풍성히 채우게 되는 줄 믿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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