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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5.02.08. 주일낮예배설교<전12:1-2. 어둡기 전에>

by 설렘심목 2015. 2. 8.

2015.02.08. 주일낮예배설교<12:1-2. 어둡기 전에>

 

청년의 때, 곧 청춘, 이는 누구의 글처럼 듣기만하여도 설레는 말입니다. 밤을 새도 지칠 줄 모르고 가슴은 희망에 벅찬 때가 누구에게나 한번 주어집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청춘은 붙잡아 둘 수 없습니다. 다신 돌아오지 못하는 게 시간과 엎지른 물과 뱉어낸 말이라고 합니다.

 

본문 1절에 의하면 청년의 때란 아직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을 말합니다.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을 말합니다. 즉 아직은 곤고하지 않고 아직은 즐거움이 있는 시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청춘은 힘이 넘치는 시절이고 모든 가능성을 갖고 도전해볼 만한 아직은 즐거운 시절을 의미합니다.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말합니다. 그 청년의 때가 속히 지나는데 지나기 전에 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저와 여러분 어떻습니까? 인생의 황금기인 지금 청년의 때에 과연 하나님을 소중하게 생각하느냐는 겁니다. 잠시 후면 몸은 쇠약해지고 머리 희어지고 치아는 흔들리고 목소리는 쇳소리가 나는데 하나님을 위해 난 뭘 하고 있는가? 한창 좋은 시절은 자신만을 위해서 엉뚱한 곳에 사용하고 너덜너덜할 때쯤 의지할 곳 없어서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나마 찾으면 다행이고 그렇지도 못한 채 영원한 심판대로 달려가게 됩니다.

 

너의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말씀은 속히 이를 심판의 날을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날 거기서 넌 뭐라고 말할 것이며 젊은 날, 긴 세월을 어떻게 사용했냐는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 앞에 다가올 메시아 재림의 날 우리 모두는 살아온 날들을 샅샅이 평가받을 것입니다.

 

그 때 저와 여러분 주님 앞에 뭐라 말씀드리고 어떠한 대접을 받을 것인가? 100명이라면 100등까지 등수를 낼 수 있습니다. 학교성적 등수나 아파트 당첨 우선순위에는 큰 관심 있어도 주 앞 믿음의 등수엔 관심이 없습니다. 이건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얼마나 우리가 어리석고 무지한 가운데 있는지 모릅니다. 정작 중차대하고 절대적인 것은 소홀히 여기고 사소한 것에는 생명이라도 걸듯이 벌벌 떨며 눈에 불을 키고 흥분하는 것이 군상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은 저와 함께 그 군상의 울타리에서 속히 빠져나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총회는 양의 우리 안 교회를 말합니다. 양의 문이 되신 예수께서 모든 출입을 지도하시고 다스리시며 보호하십니다. 그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기억하라. 날이 어둡기 전에 본향을 기억하라. 너희 삶의 종점이 거기 땅이 아니라 여기니라.

 

세상만사에는 다 때가 있습니다. 때를 못 맞추면 산통이 깨지는 법입니다. 적시타는 멋집니다.

다시 전합니다. 너무 늦기 전에 너의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Before it is too late. 너무 늦기 전에...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무 늦기 전에..그렇다면 그분을 기억할 만할 때가 언제입니까?

 

1.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입니다.

 

고통과 곤경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을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축원합니다. 심판은 죽어서 받는 무서운 형벌의 시작이고 책망은 살아 받는 고침의 기회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선 하늘의 심판을 피하도록 많은 기회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동안에 당하는 여러 책망으로 인한 통증입니다. 육신의 날에 당하는 질고는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싸인으로 속히 알아차리고 반응하신다면 그는 지혜로운 자요, 복된 사람입니다.

 

곤경에 처하고도 하나님을 외면하면 살 소망도 잃을 뿐 아니라 악한 영의 노리개감이 됩니다.

우리가운데 하나님을 멀리함으로 악한 영의 노리개감이 되는 자 한 영혼도 없는 줄 압니다. 악한 영의 노예가 되면 하나님을 함부로 입에 올려 난도질하려 합니다. 멸망의 길로 속히 달려가게 됩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불행과 행복은 종이 한 장의 차이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억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하나님을 외면하고 등을 돌려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1절에는 그 날에 아무 낙이 없다고 하는 때가 온다고 증거합니다. 여러분, 삶은 마땅히 사랑함으로 즐겁고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이 왜 허무하고 슬퍼집니까? 죄와 악으로 인한 것입니다. 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모든 것을 말합니다. 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남으로 파생되는 모든 결과를 말합니다. 불행은 하나님을 멀리함으로 시작된 일들입니다.

 

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입니다.

 

모든 소망이 사라지기 전에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고 속히 돌아와야 합니다. 인생의 소망과 기쁨의 수많은 등불을 해와 빛과 달, 별에 비유한 말씀입니다. 인생의 소망과 기쁨은 크게 관계와 소유와 자랑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랑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말합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이러이러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자랑은 오직 주예수만 되시기 바랍니다.

 

1) 먼저 해와 빛인 관계와 관계에서 오는 소망과 기쁨입니다.

이 관계라는 것은 소유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갖습니다. 진정한 행복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관계가 주는 실망이나 좌절은 무엇보다 강력합니다. 사랑하는 이가 죽으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맛봅니다. 믿었던 자가 배신하고 돌아서면 말 못할 분노를 느낍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닮아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라 관계에서 오는 행과 불행은 실로 중차대합니다.

 

가장 크고 우선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하나님은 인간관계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관계에 어둠이 오기 전에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과 그 심판을 기억하여 주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2)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입니다. 방금 증거한 것처럼 관계 다음으로 우리를 흔드는 것은 소유입니다. 그것이 물질이든 재능이든 그것은 우리 삶에 매우 요긴한 것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우리 삶에 밀착돼 있어서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함께 하고 싶은 좋은 사람이 많은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언제나 내 곁에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소유물은 더욱 그렇습니다. 모든 눈에 뵈는 나의 소유들이 황당한 일로 나를 떠나기 전에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날, 심판의 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날 거기서 심판에 이르지 않고 칭찬받기 바랍니다.

 

해와 빛과 달과 별같은 모든 의미와 소망과 즐거움의 등불이 꺼지기 전에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사랑 앞에 그동안 우리가 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3.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입니다.

 

창조주를 기억하지 않는 삶은 늘 궂은 날씨처럼 근심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렇게 환경으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계속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갈 때 염려와 근심의 먹구름은 드디어 비를 내리기 시작합니다. 비를 맞고 서둘러 하나님의 장막으로 피하면 그는 겉옷만 버립니다. 그러나 말귀를 못 알아듣고 고집을 피우면 속옷까지 다 버려 결국 몸까지 병을 얻어 인생전체, 가정전체가 몸살을 앓게 됩니다. 우리 좋으신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라도 구원의 방주에 올라오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여러분을 택하신 하나님께선 끝까지 포기치 않으시고 우리를 영생복락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사랑하는 예배자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핀 전도서 121-2절은 서론에 불과합니다. 뒤의 3-6절은 어두워지면 일어나게 되는 구체적인 일들을 소개합니다. 잠시 후면 모두 늙습니다. 처량하고 초라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주님께 헌신하고 그분만을 찬송하기로 작정한다면 저와 여러분 이제는 천국을 소유한 자로서의 기쁨으로 늙어짐도 큰 축복인 로맨스그레이가 될 줄 압니다. 호반을 거닐며 G선상의 아리아, 여호와의 아리아를 만끽하는 로맨스그레이가 되십시다. 아멘.

 

기도합니다.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우리 모두 어둡기 전에 하나님을 향하여 고개를 들게 하옵소서. 각자의 심령 깊은 곳에 계신 거룩하신 주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