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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5.02.01. 주일 낮 예배<삼하7:1-13. 네가 내 집을 지으려는가? 내가 네 집을 지으리라.>

by 설렘심목 2015. 2. 1.

2015.02.01. 주일 낮 예배<삼하7:1-13. 네가 내 집을 지으려는가? 내가 네 집을 지으리라.>

 

다윗이 블레셋을 비롯한 모든 사방 대적을 물리치고 언약궤를 옮겨온 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궁에 평강을 주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편안하게 된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궁전건축을 생각하게 됩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그런데 11b~13절을 보니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세우고 그 집을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고 하십니다. “네가 내 집을 지으려는가? 갸륵하구나. 그러나 내가 네 집을 세우리라. 견고케 하리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설교제목입니다. 본문을 살피며 다윗이 지으려했던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이 다윗을 위해 세우려하셨던 하나님의 집은 무엇인지 알아보며 은혜를 나누기로 합니다.

 

1. 다윗이 지으려는 하나님의 궁정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 오늘 날 예배당이 대표적인데 이 예배당은 성막이 성소로, 성소가 성전으로 성전이 회당으로 회당이 예배당으로 바뀐 것입니다. 예배당은 건축물이요, 그 안에 모이는 회중을 교회라고 부릅니다. 교회는 아시다시피 선택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다윗이 세우려는 당시 하나님의 처소는 하나님의 언약궤(법궤. 증거궤)가 모셔져 있어야 합니다. 이 궤, 곧 금칠한 나무상자는 하나님의 언약과 임재를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금이 덮여있고 대제사장은 언약궤 앞에서 번제물의 피를 뿌리고 죄를 고백하며 제사를 집행했습니다. 그러므로 법궤의 안치나 이동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이나 모든 인생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처소는 언제나 눈에 보이는 건축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지구상에는 지하실이나 옥탑의 작은 예배당에서 시작해 크게는 일천억원이 넘는 교회건물이 있습니다. 예배당마다 하나님을 어찌하면 더욱 성심으로 높여드릴까 고민하는 예배자들로 교회를 이룹니다. 사람들은 웅장한 파이프올갠소리와 수백명의 찬양대가 내는 아름다운 하모니와 오케스트라에 그만 압도되어 , 하나님은 이렇게 웅장하게 나타나시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한편 10평도 채 안되는 지하실 작은 교회당에는 곰팡이 냄새가 나고 어둡고 칙칙하여 궁색한 빈티가 여전히 성도들 마음을 초라하게 합니다. 이렇게 우린 육안이 주는 함정에 곧잘 빠집니다. 더욱이 큰 예배당을 가진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은 목회는 목회자싸이즈만큼 된다.”는 말로 작은 교회를 옥죄입니다. 처음에 그 말이 얼마나 멋지게 들렸는지요. 그러나 살피니 그 말은 이렇게 큰 교회부흥은 내가 크기 때문이라는 말이었고 그 말은 매우 잘못된 편견임을 알았습니다. 근대산업사회가 갖는 사회성과 문화구조와 정서의 특성은 건전한 목회철학에 +A를 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요즘 교회성장연구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소견입니다. 즉 교회의 성장은 애석하게도 슈퍼마켓의 전망과 거의 같은 원리로 계획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교회성장의 조건으로는,

1) 무엇보다 먼저 목이 좋아야 한다. 교통접근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2) 음향과 조명 등 건축물이 성도를 압도해야 한다. 시청각의 제압이요,

3) 좋은 교역자들이 탁월한 계획과 경험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험론적 기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1항과 2항에 문제가 생기면 부흥은 하되 생각보다 긴 세월이 걸릴 수도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1항과 2항이 충족되면 3항은 시간이 지나면 적절한 대응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깊은 진리보다는 현대인의 안일주의와 편의주의가 빚어낸 교회성장의 현주소입니다. 우리주님께서 우리에게 앞으로 주실 새 건물은 어디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거기 환한 조명과 고급음향장치는 다름아닌 성도여러분의 환한 얼굴과 은혜로운 찬양과 기도와 신앙고백의 울림, 말씀의 선포가 함께 어우러져서 참으로 아름다운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는 교회의 새 출발이 되리라 믿습니다.

 

2. 하나님이 세우시는 다윗의 집입니다.

 

다윗은 성을 지어 백향목 궁전에 거하면서 문득 하나님의 처소에 대한 부담을 나단선지자에게 말합니다. 바로 그날 밤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합니다.

5절 이하 17절까지는 나단선지자가 다윗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줄여본다면 내가 오늘까지 천막 속에 있으면서도 언제 집을 지어달라고 했는가? 그것으로 나무란 적이 있더냐? 그런데 이제 네가 내집을 짓겠다니 갸륵하구나. 그러니 오히려 내가 널 위하여 네 집을 견고히 해서 다시는 침략받거나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네 후손을 세워 나라를 세우고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짓고 싶은 다윗의 아름다운 마음이 하나님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오히려 다윗의 집과 나라를 세우리라고 약속하시는 장면이 오늘의 본문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의 집에 깊은 애정으로 기도하신다면 여러분의 가정은 하나님이 세워 가시는 줄 믿기 바랍니다. 잘 살펴보세요. 본문에서 다윗은 건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세우신다는 말과 이루신다는 말을 사용하십니다. 즉 다윗은 건축물이지만 하나님께서 짓는 다윗의 집은 단순한 건축물을 말씀하는 게 아닙니다. 13절입니다.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집이 아니라 나라요, 왕권이라는 지위와 영광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 어떤 나라인가?

 

1) 영원하고 견고한 나라입니다.

 

(1) 영원한 나라입니다. 세상에 어떠한 나라와 민족의 이름도 결코 영원하지 못합니다. 섞이고 쪼개지고 다시 합치고 그래서 영원한 나라도, 민족도 사실은 없습니다. 인생 그 자체가 영원하지 못합니다. 영원한 나라는 결국 영원하신 단 한분의 존재,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지속적으로 증거하고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해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도 흙으로 돌아가 우리처럼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 이슬같은 인생입니다. 솔로몬도 그 부귀영화를 내려놓고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통해 이 땅에 오신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나라를 이제도, 또한 영원히 다스리시는 줄 믿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세우시는 나라는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영원한 하나님나라입니다.

 

(2) 견고한 나라입니다. 이 땅에 영원한 나라가 없듯이 견고한 나라도 한 순간일 뿐입니다. 인류역사상 견고한 나라들이 많았지만 진정한 견고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견고를 말할 때 그것은 언제나 곧 사라질 견고여서 지속적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견고가 영원과 맞물려야 비로소 견고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류 4대문명인 메소포타미아-이집트-인더스-황하문명, 그리고 불가사의한 마야문명을 일구었던 마야족도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는 견고한 다윗의 나라는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나라입니다. 주님의 나라는 그 견고함이 지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나라, 저와 여러분이 소망하고 이미 가고 있고 가기로 결정된 하나님의 나라, the kingdom of heaven. 천국입니다. 그 나라의 견고함은 그 어떤 것으로도 상하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변질되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습니다. 영원한 견고입니다.

(3) 하나님의 통치로 이뤄지는 나라입니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만이 가득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공평입니다. 선입니다. 진실입니다.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끝내 사랑이 모든 법이 되어 실행되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노래가 그치지 않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로 모두가 기뻐하며 주를 노래하는 찬송의 나라입니다. 거긴 아름다운 주악이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그것은 생각만해도 너무나 기대가 되고 마음이 설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 교회당은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예비하며 연습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의 다스림과 그 순종을 표현하기 위해서 주를 사랑하듯 서로 사랑하며 그 사랑가운데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하는 자들이 모여 함께 찬양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반면, 죄악된 이 땅의 통치는 죄인인 인간이 다스리는 곳입니다. 인간의 통치는 공평치 못하고 선하지 않으며 끝내 어둠과 슬픔이 가득한 눈물과 한이 모인 진흙밭입니다. 이 땅에 인류가 있는 한 전쟁이 그치지 않을 것이며 온갖 술수와 가난과 범죄가 떠나지 않을 겁니다. 그게 세상나라인 것은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오질 않았고 그러므로 인생들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와 그 통치를 간절히 기대하는 것 외에 소망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배자 여러분. 그 하나님의 나라가 첫 시작을 하나님의 손에 의해 우리 작은 가슴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 앞에 새롭게 헌신하는 저와 여러분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순종의 무리들에게 천국과 그 만복이 열릴지어다. 이 선포된 말씀이후에 저와 여러분 심령에서 시작되는 하나님나라의 건축에 우리들의 순종과 헌신이 요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헌신을 주께서 바라십니까? 그렇습니다. 영원하고 견고한 하나님의 나라건설이 하나님의 통치로 이뤄질 때 그것은 하나되는 일입니다.

 

2) 하나님의 나라, 그 통치는 하나되는 일입니다.

 

우리주님이 잡히시기 전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을 위한 기도에서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합니다. 다시 주님은 아버지께서 내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기도했습니다. 영원하고 견고한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의 기도처럼 먼저 하나되는 일로 시작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되지 못하여 서로 비방하며 헐뜯고 자기 것을 챙기는 이기심과 시기질투하는 심령으로는 주님 나라건설이 어렵습니다. 잘 아시는 마6:33,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그 모든 것을 더 하시리라.”는 말씀은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되는 나라입니다. 사랑으로, 찬양으로, 기쁨으로, 헌신으로, 희생과 섬김과 낮아짐으로 하나되는 나라, 하나님나라에서 진정 주님이 기뻐하시는 영원하고 견고한 주의 나라, 먼저 개인개인 가운데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 나라는 먼저 저와 여러분 심령안에서 지체들과의 관계를 통해 훈련되고 이뤄져 가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그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마음이 내게 부어져서 나도 그를 가엽게 여기는 마음이 생기고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됩니다. 판단 대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바뀌지 않아도 내가 평안을 누릴 것은 나를 바꾸시는 주님의 은혜가 임한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예배자 여러분. 주님이 지으시는 주님나라 내안에서 먼저 이뤄지면 우리가 어느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던 어디로 가든 우린 기쁨의 예배를 통해 주님 기뻐하시는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남은 생애를 주님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