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11.주일낮예배<민18:1-7.(벧2:9) 제사장과 레위인의 임무>
본 민18장은 레위인과 제사장의 직무를 언급하는데 1-7절은 레위지파의 직무를, 8-20절까지는 레위인의 먹거리가 되는 성물과 21-32절은 레위인과 십일조에 관계된 말씀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본문 1-7절의 말씀은 제사장의 직무를 비롯한 모세와 아론의 지도권에 도전해서 단번에 땅에 묻혀 멸망한 고라일당사건 후 레위인과 제사장의 직무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제사장과 레위인의 구별된 직무와 책임과 영광은 각각 무엇인가?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조상의 가문은 성소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요. 너와 네 아들들은 너희의 제사장 직분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니라.”
1. 성소와 직분에 대한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고라와 다단일당들이 모세를 거역하여 제사장직이 도전을 당한 뒤에 하나님께선 아론의 제사장직을 더욱 분명하게 하십니다.
벧전 2:9절에서 주님은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아론과 그 수종자로 임명받은 레위인은 오늘 날 저와 여러분인 줄 믿으십니까? 이제 읽은 본문 1절에서 정하신 아론의 직임은 무엇입니까?
1) 제사장은 성소에 대한 책임을 갖습니다.
성소에서 일어나는 제반사항에 관한 일체의 책임은 제사장에게 있으므로 제사장은 백성에 대한 통제권도 갖습니다. 때로는 나무랄 수도 있고, 칭찬도 하며 연약한 자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제사를 잘 드릴 수 있도록 권면하며 가르칩니다. 오늘 날 교회의 교역자를 비롯한 직분자를 말합니다. 목사, 전도사, 장로, 권사, 집사 등 직임을 맡은 자가 평신도를 잘 계도하고 인도하는 모습을 제사장의 책임과 권한으로 보면 됩니다. 그렇게 사명자와 직분자들에겐 책임을 주신만큼 명예와 권한이 주어집니다. 여기서 할 일은 다하지 못하고 권리만 내세우면 그 개인과 교회는 위기를 만납니다. 반면, 성실한 사람이 음성을 낮추면 그 겸양의 덕으로 시끄럽던 온 교회가 평온하게 됩니다.
교회에 대한 책임, 회중들에 대한 치리와 섬김의 책임이 바로 저와 여러분, 곧 왕같은 제사장들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이 일이 먼저 저와 여러분 개인의 신앙과 됨됨이 속에서 시작되기 바랍니다. 우리 심령이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방금 읽은 말씀처럼 우리 개인의 심령 작은 성전을 잘 관리하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 일이며 큰 책임인지 모릅니다.
성전관리에는 몇 가지 잘 지켜야 할 중요한 잣대가 있습니다. 요약해서 전합니다.
(1) 등불을 끊이지 않고 켜놓는 일입니다. 출27:20절에는 저녁부터 아침까지 어두운 시간에 제단을 밝히되 순결한 감람나무기름으로 등불을 키게 했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순전하게 바로 드러나려면 복음의 등불이 돼야 하는 성도들이 순결한 신앙으로 성령의 불을 지펴야 합니다. 그래서 고통으로 으깨진 겸손한 인생의 진솔한 고백들이 모여 하나님의 덕을 밝히 증거해야 합니다. 그 때 어두운 세상은 비로소 자신의 마지막 소망이 빛이신 예수그리스도라는 사실에 기꺼이 동의할 줄 믿습니다.
(2) 떡상에 떡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눅22:19절 성만찬에서 떡을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참고.떡:몸-삶./잔:-속죄>”고 하십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인생을 창조하셨고 말씀은 오늘 우리를 먹이시고 키우시는 우리 영의 양식입니다. 마구간 구유로 오신 것도 나귀같은 인생에게 영혼의 양식으로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떡을 준비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성도에게 줄 영혼의 양식이 성전에는 늘 예비돼 있어야 한다는 걸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소망, 곧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하여 묻는 자에게 벧전 3:5절에선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항상 예비된 영의 떡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기 바랍니다. 영혼이 강건해질 것입니다.
영혼의 건강없이 내면의 세계나 그 밖의 다른 육신의 모든 것이 건강해지기 바랄 수는 없습니다. 영혼의 강성을 위해선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떡인 성경을 꾸준히 먹어야 합니다. 떡을 준비해서 나도 풍성하게 먹고 이웃에게 나눠주며 공급하는 행복한 말씀의 전달자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3) 향로에 향이 꺼지지 않아야 합니다. 금향로에 향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기도뿐입니다. 기도의 향내가 하나님 앞에 향긋하게 올려지기 바랍니다. 무릎으로 열어가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길, 무릎꿇게 하시고 그 기도 받으신 하나님이 친히 책임져주시는 줄 믿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억납니까? “생각하면 사람이 움직이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기도없이 이뤄진 일은 필경 함정이다.” 오래전 우리교회 매일문자 중 하나입니다. 기도에 달인 되기 바랍니다. 기도는 성령에 이끌려 주고받는 하늘의 대화입니다. 하나님을 일하시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4) 물두멍에 늘 물이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 물두멍은 제사 전에 손을 닦는 큰 놋대야를 말합니다. 손은 행함이요, 발은 행보를 의미합니다. 어디가서 무슨 일을 했는지 손과 발은 다 알고 있습니다. 예배 전의 자신의 흔적에 대한 회개가 철저히 이뤄져야 합니다.
(5) 제단에 올릴 제물을 살피고 준비합니다. 작은 흠이라도 있으면 성소에 제물로 올리지 못합니다. 초태생이 의미하는 흠없고 깨끗한 것이어야 합니다. 바쳐진 제물은 내장과 똥을 꺼내어 진 밖에서 불사릅니다. 더러운 죄와 허물을 모두 꺼내어 성령의 불로 태우는 겁니다. 내 죄를 제물위에 얹어 전가하려면 죄를 떠맡는 제물이 깨끗해야 한다는 영적원리는 죄없이 우리 죄를 맡으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주님의 십자가에서도 발견됩니다.
훗날 레위인이 타락하자 성전에서 제물을 구실로 뒷돈이 오가는 부패현상이 나타났고 어느 날 주께서 성전에 들어가 상인들의 상을 뒤엎고 노끈채찍으로 제물용으로 팔고 있던 양과 소와 비둘기를 내쫓고 환전상의 돈을 바닥에 쏟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성전을 헐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시겠다고 하심으로 자신의 몸으로 세울 하나님의 나라 천국의 도성을 예언하셨던 것입니다.
제물이 타락하면 성전이 타락합니다. 그렇게 예루살렘성전은 주후 74년에 로마 티투스장군에 의해 함락당하고 주님 예언대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무너져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현재 이스라엘 성지순례에서 보는 통곡의 벽은 이 성전 한 쪽 벽의 돌 몇개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레위인의 중요한 책임중 제물의 성결성 여부를 점검하는 일은 먼저 제물 중 제물인 저와 여러분 자신의 성결을 돌아보는 것으로 그 거룩한 임무 기초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2) 제사장은 자신의 직무에 대한 책임을 갖습니다. 성소에 대한 책임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섬김과 교육과 조직에 대한 책임이라면 직무에 대한 책임은 자신의 신언행에 대한 책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의 뒷부분은 그것을 분명히 정하는데 “너와 네 아들들은 너희가 그 제사장 직분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니라.” 여기서 죄라 함은 죄짐을 말하는 것이고 제사는 죄짐을 말갛게 정리하는 거룩한 예식이니 제사장은 직분이 갖는 죄짐을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에 맡겨야 한다는 겁니다.
기억을 더듬어봅니다. 남자로 태어난 최고의 영광은 아비가 되는 것이고 아비된 자의 영광은 제사장이란 이름을 받음으로 완성된다면 여자는 어머니가 되어 제사장될 자녀를 훈육함이 영광입니다.
제사장직은 일생최대의 영광이요, 큰 권세요, 기쁨이요, 최고의 가치와 보람을 갖는 일입니다. 권세는 악한 영이 쫓겨나는 권세요, 영광은 주의 이름을 붙잡은 영광입니다. 권세와 영광이 크면 거기 따른 책임도 중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잘 섬기고 가르치며 이끌려면 먼저 자신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직무에 먼저 충실해야 다른 지체들의 직무를 도우며 살피고 권면하여 이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말하기 전에 먼저 나를 판단하고 분석한다면 모든 이로부터 존경받을 만한 일이 될 것입니다.
2. 레위인은 제사장의 곁에서 수종을 들도록 했습니다.
여러분. 레위인과 제사장은 엄연히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지위의 상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잇몸처럼 서로 절실하게 보완함으로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본문 6절을 함께 읽습니다. “보라 내가 이스라엘자손 중에서 너희 형제 레위인을 취하여 내게 돌리고 너희에게 선물로 주어 회막의 일을 하게 하였나니”아론제사장도 레위지파입니다. 그러나 일반 레위인들은 하나님께서 제사장에게 시중을 들라고 주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날 레위인에 속하는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합니까? 사례를 받건 무보수로 하던 교역자를 도와 교회와 예배를 섬기는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즉 성도모두를 넓은 의미의 레위인으로 보아 무리가 없습니다. 넓게는 모든 성도로부터 좁게는 사례금을 받고 일하는 유급봉사자들을 포함합니다. 그런데 제사장의 직무에는 손을 대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3절입니다.“레위인은 네 직무와 장막의 모든 직무를 지키려니와 성소의 기구와 제단에는 가까이하지 못하리니 두렵건대 그들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레위인이 성소의 기구나 단에 손을 대거나 제사장이 하는 일에 손을 대면 제사장과 함께 진노로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엄명입니다. 사울 왕과 경우와 웃시야 왕의 경우 제사장 대신 분향하다가 봉변을 당했습니다. 지금도 강대상의 설교와 축도와 성례식 등 몇가지는 목회자만 할 수 있도록 엄격하게 구별하고 있습니다.
3. 성소와 제단에 분별없이 접근하는 외인은 죽임을 당합니다.
본문 4절과 7절 말미에 보면 외인은 회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하고 가까이 오면 죽는다고 경고했습니다. 4절하반절입니다. “외인은 너희에게 가까이 못 할 것이니라.” 7절 하반절입니다. “거기 가까이 하는 외인은 죽일지니라.” 외인은 어떤 경우에도 제단에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인데 이 말씀은 외인을 멸시하거나 미워해서 내린 명령이 아닙니다. 제단을 거룩함으로 구별하려는 하나님의 뜻이 제사장이나 레위인들로 하여금 제단의 거룩성을 훼손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아무런 중보없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인간의 죄와 직접 만나는 건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이 죽음을 면치 못하던 구약시대 신앙정서입니다. 심지어 택한 민족도 하나님을 직접 만나 그 얼굴을 보면 그 자리에서 죽음을 면치 못하던 시절에 외인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외인이었던 자를 제단 가까이 부르셔서 옛자아가 성령의 불에 타죽게 하신 주님을 찬미합니다.
엡2:19절을 제가 읽겠습니다.“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제단가까이 가면 죽음을 면치 못하던 제사의 엄위성과 제단의 엄격한 규율이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그 이름을 부르되 누구든지 여호와 우리아버지 아빠라고 부르면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예배자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직임이 레위인이건 제사장이건 대제사장이건 그 구분은 이 은혜의 신약시대에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직임의 구분보다는 오히려 한 개인이 최소단위의 교회로서 갖는 의무와 도리와 권세가 더욱 중요한 이 마지막 시대입니다. 오늘 들은 하나님의 말씀처럼 외인이었던 우리가 이제는 부름받은 사역자라는 소명감과 사명의식을 갖기 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레위인이나 제사장이나 한결같이 우리는 무엇으로 복음의 능력을 선포할 것인가?
무엇으로 제사장된 직분을 바로 감당할 것인가?
첫째, 기도가 멈추지 않아서 성령과 교제함으로 늘 영의 불이 꺼지지 말아야겠습니다.
둘째, 가슴엔 늘 예비된 말씀이 샘솟아 나나 남이나 그 영혼이 메마르지 않게 해야겠습니다.
셋째, 순결과 거룩함으로 영의 능력과 신앙의 권세를 세상에 선포해야겠습니다.
이 모든 일은 거듭 강조하거니와, 예배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 그리고 말씀의 풍족한 공급을 통한 감동과 그 감동으로 인한 행함으로만 가능한 것임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제사장의 권세와 성실과 능력이 이 말씀들은 자마다 기쁨 중에 넘칠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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