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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4.11.23. 주일설교 <창 19:1-23. 타락한 소돔의 착하고 우유부단한 롯>

by 설렘심목 2014. 11. 23.

2014.11.23. 주일설교 <창 19:1-23. 타락한 소돔의 착하고 우유부단한 롯>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롯도 하나님의 천사들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성문에 앉았다는 건 롯이 이미 소돔에서 얼마간 부와 명예를 얻고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법 여유로운 살림살이가 된 롯은 살림살이뿐 아니라 그 정서와 문화와 도덕에 이르기까지 이미 많은 부분 소돔사람이 돼 있었습니다. 예비사위들은 장인어른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아 소돔대피에 합류하지 않습니다. 타락한 땅에서 아무리 훌륭한 사윗감을 골랐다고 해보았자 소돔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변환경이 주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습니다. 한절한절 살피봅니다.

 

2-3 : 롯의 간곡한 요청으로 간신히 천사들을 집안으로 모십니다. 천사들은 가능하면 그 땅의 타락상을 거리에서 더욱 소상히 확인하고자 했으나 롯은 심한 타락으로 해가 지면 더욱 각종 음난과 범죄가 들끓는 거리에 귀한 분들을 방치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잠시 우리는 비교적 우유부단하여 단호하지 못한 롯이었지만 그의 갸륵한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예배자여러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깁니까?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사람들과 하나님의 창조물을 통해서 섬김의 도를 다하면 됩니다. 부지중에 나그네를 잘 대접해서 복받은 아브라함의 조카답게 롯도 나그네를 잘 대접해서 죽음의 성읍 소돔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엎드려 절하고 쉬어가기를 간청하는 롯은 율법에 충실한 착실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당시 풍습은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라”는 신10:19절 말씀에 순종하던 시대였습니다. 보통 나그네라는 말에는 항상 지치고 외로운 이란 수식어가 붙습니다. 우리도 지치고 외로운 나그네지만 영생을 모르는 지치고 외로운 영혼들을 대접해 위로하고 영생과 구원의 소망을 전하는 게 우리들의 몫입니다.

롯의 나그네대접을 살펴보면 첫째 율법에 철저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온화한 사람이었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은 수고로운 일이었지만 롯은 나그네의 고단함을 이해하고 끝까지 외면 못하는 착한 성품의 사람이었습니다. 주 이름으로 당부합니다. 착하고 온유하되 단호하시길 바랍니다. 끊어야 할 일에서 끊고 붙잡아야 할 건 붙잡고 버려야 할 건 버려야 합니다. 착하되 단호하고 강력하되 부드럽길 축복합니다.

 

4-5 :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여러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와 외지에서 온 낯선 사람들을 상관하겠다니 소돔이 올 데까지 왔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건 소돔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에도 소돔과 같은 일들이 대낮에 세계곳곳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본문엔 원근각처에서 늙은이 젊은이들이 몰려와 롯의 집을 에워싸고 외지인을 내놓라는데 더 충격적인 것은 늙은이들도 그랬다니 얼마나 타락한 음란의 도시였을까 짐작합니다.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사람들이 몰려와 집단성폭행을 일삼았던 게 당시 풍속이라면 유황불이 합당하단 생각이 듭니다.

 

6~8 : 롯은 어떻게 해서든지 귀한 손님들을 보호하려 합니다. 그러나 자기 딸들의 정절이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음으로 무책임한 부성에 우릴 놀라게 합니다. 이는 매우 부끄러운 아비의 태도입니다. 이런 정신은 훗날 술에 취해 딸들에게 씨를 주고마는 추태를 보이고 그 후손인 불행한 모압과 암몬자손을 태동시킵니다.

 

9~11 : 거리의 악한 무리들은 드디어 문을 깨부수며 롯의 집 안으로 들어오려 합니다. 천사들이 저들의 눈을 어지럽혀 물리칩니다. 비록 우리가 부족해도 주님을 향한 정성으로 애쓰고 힘을 다할 때 우리의 악한 대적은 주께서 친히 물리쳐 주십니다.

12 : 아브라함의 기도로 구원의 천사들은 롯에게 발길을 옮겼고 롯은 지극정성으로 천사들을 대접합니다. 딸의 안위도 아랑곳없이 미련할 정도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대접했습니다. 그런 후 천사로부터 롯과 온 집에 구원의 방법이 제시됩니다.

 

13절 :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은 소돔의 악함과 패역함에 대한 억울한 인생들의 신음이었습니다. 작은 숨소리도 들으시는 인자하신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14 : 롯의 사위들은 소돔인이었고 어려서부터 그 땅의 부패한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무리들이었습니다. 장인의 간곡한 권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장인은 권위를 이미 잃었고 사윗감들은 버릇없이 멋대로 자란 청년들이었습니다.

 

15-16 : 천사들은 재촉하고 롯은 머뭇거립니다. 그 불신앙의 머뭇거림도 구원의 계획 앞엔 소용없습니다. 손을 잡아 성 밖으로 인도해 내신 하나님은 롯에게 “자비를 더하셨다.”고 본문은 소개합니다. 결단력이 약해 주저하고 망설일 때 그대로 망하는 걸 보지 못하는 우리 하나님 최고의 하나님 생명의 주님이 우릴 이끌어 내셨습니다.

 

17-22 :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라는 명령에 동의하지 않는 롯의 유약한 불신앙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선 심판하기로 한 어느 작은 성읍을 면제시켜서 롯을 그리로 피하게 합니다. 롯이 안전지대에 이르기까지 심판을 미루시는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을 살리시려고 바울이 탄 배와 함께 한 모든 이들을 구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우리가 속한 곳을 늘 살피시는 줄 믿기 바랍니다.

 

23 : 이 모든 구원의 역사는 한 밤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칠흙같은 어두움은 새날을 창조합니다. 심판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갈라냅니다. 여러분에게 혹시 뜻하지 않은 어두움이 있습니까? 원치 않는 터널을 지나며 질식할 것 같은 고통이 있습니까? 야곱이 죽음의 얍복강을 건너 브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은 것처럼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습니다. 인생의 어두운 밤은 어김없이 소망의 새벽을 향해 갑니다. 턴널을 지난 거기 성결로 구별된 우리들의 아름다운 헌신의 삶이 준비돼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간추려 봅니다.

 

1. 소돔문화에 물든 롯(19:1)이지만..

 

그는 천사를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롯의 극진한 대접은 그러나 부모된 도리를 벗어났습니다. 딸을 거리낌없이 희생시키기에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부덕했습니다. 여기서 보는 그럼에도 불구한 하나님의 사랑은 인생이 비록 부족하고 미련해도 주께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손을 잡아주신다는 것입니다.

 

2. 소돔에 물들어 구원 앞에 머뭇거린 롯이지만..

 

천사들은 롯의 손을 잡아 구원했습니다. 롯은 사위들에게도 이미 위신과 권위가 없었고 딸들에게도 체통을 지키지 못하는 무능한 자였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구원의 역사 앞에서 소돔의 모든 것들을 포기하지 못하고 미련을 두었습니다. 아까운 것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때를 놓친 순종은 순종이 아니라 불신앙입니다. 롯의 지체는 불순종이었고 불신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약속이 우리의 어떠함에 전혀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않길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미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의 기도를 받으신 하나님은 확고한 뜻으로 롯에게 천사를 보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그리스도로 인한 것이지 우리의 어떠함에 무관한 것 다시한번 확인합니다.

 

3. 천사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자신의 편의만을 주장하는 롯이지만..

 

끝까지 염치없는 요구까지 천사들은(21절:내가 이일에도) 순순히 들어줍니다. 연거푸 이일에도 여전히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생각(19:29)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군가를 위해 하는 기도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돕는 기도는 극진한 사랑입니다. 지금도 누군가 우릴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령께서 우릴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제 누군가의 구원과 영혼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 주께서 친히 베푸시는 기쁜 삶을 모두 함께 누리시기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