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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4.11.16.주일낮예배(요16:7~11.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성령의 책망)

by 설렘심목 2014. 11. 16.


2014.11.16.주일낮예배(요16:7~11.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성령의 책망)


예수님 떠나시기 전에 새 계명 즉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 이후에 비로소 보혜사 성령의 존재에 대하여 언급을 했는데 오늘 본문은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보혜사성령을 자세하게 말씀하십니다. 한절씩 읽어가면서 주님주시는 생명의 꼴을 집중해서 함께 받기 원합니다.


본문 요16:7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주께서 몸으로 계시지 않고 영으로 계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십자가에서 육체를 버리지 않고 부활승천도 필요없이 영원히 몸으로 계셨다면 우리는 평생에 한번도 주님을 체험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번 만나려면 수십 년을 기다려도 쉽지 않은 육체에 주님은 갇혀있지 않으신 영이십니다. 누구든 주를 시인하고 믿으면 만나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의 보혜사로 오늘도 이렇게 예배 중에 우릴 만나주시는 줄 믿기 바랍니다. 영이시니 누구든 동시다발로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든 계시고 육체가 아니시니 졸거나 피곤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들 육체처럼 뭘 먹지 않아도 됩니다. 잘 아시는 요4:34절에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정답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이 진리를 배우기 위해 이스라엘민족은 40년 간 광야에서 고된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육체는 빵을 먹어야 살지만 영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열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그리스도는 몸을 버리시고 하늘에 올라가셔서 다시 우리 안에 보혜사 거룩한 영으로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이번엔 16:8절입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눈에 뵈는 몸으로 계신 예수님이 떠나시는 것이 인생들에게 유익한 이유를 지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떠나시면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신다고 하셨는데 성도를 책망하시는 게 아니라 세상을 책망하신다고 했습니다. 계18:4절에선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합니다. 책망받는 일은 슬프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세상을 책망한다 하셨으니 성도는 세상에 속하지 말고 구별돼야 하며 자신 안에 있는 세상적인 것을 나무라야 할 것을 말합니다.


본문 9절입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죄의 정의는 다양하게 내릴 수 있으나 성경에서 이르는 죄는 하나님을 떠나면서 시작되는 모든 문물, 정서, 삶 전체를 말합니다. 즉 불신앙으로 인한 죄를 본문은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불신앙은 모든 좋은 것의 파괴와 멸망과 죽음을 불러옵니다. 관계의 파괴로 인한 평화의 파괴, 지혜의 몰락, 상실의 연속은 인간을 말할 수 없는 참혹한 세계로 끌어내립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가 모든 악의 뿌리이고 죄의 시작이 되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사실상의 의, 진정한 의미로서의 의(義)는 하나님 한분에게만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의(義)라는 말의 한자는 신기하게도 양머리변 아래 나를 나타내는 아(我)로 받치고 있습니다. 즉 양을 머리로 섬기는 사람에게 이르는 말이 의가 됩니다. 우리대신 죽으신 어린양 예수그리스도를 모든 것의 으뜸진리로 섬겨 머리가 되게 해 드리고 그 아래 순종으로 따르는 저와 여러분이면 주님은 우리의 그 순종과 믿음을 보시고 드디어 의인이라고 불러주십니다. 이 믿음으로 의에 이른 우리가 본문에선 진정한 의의 개념을 주님이 하나님께 감으로 다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 의에 대한 증거이고 성령의 책망이라고 정리합니다. 우리 여기서 잠시 당시 이스라엘 종교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어 의로워지는 건 율법을 잘 지켜서 모세오경에 어긋나지 않고 제사에 철저한 자가 힘써서 자기의를 세우는 것 외에 다른 의를 가르칠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구약의 율법정신 앞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의를 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 우리 주님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40일간 5백여 명 앞에(행1:3/고전15:5) 친히 보이셔서 증거하시고 승천하심으로 진정한 의를 보이셨습니다. 참된 의는 이렇듯 율법에 눌린 자기의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이룬 대속보혈에서 의미를 찾아 그리스도의 대신속죄를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증거하셨다는 겁니다. 이렇듯 당시 모세율법에 의한 자기의를 꾸짖게 될 보혜사 성령은 예수님이 떠나셔야 우리에게 오실 거룩하신 이 곧 예수의 영이셨습니다.


10절 한번 더 읽습니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이번에는 하반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한다.”는 말씀에서 의를 봅니다. 주님이 하나님께로 가심으로 다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의에 대한 책망이 세상을 향해 나타났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씀 안에는 흙을 떠나 사람 눈에 뵈지 않는 것이 의에 대한 증거가 돼 그 사실을 믿지 않을 때 성령께서는 세상을 책망하겠다는 뜻이 있습니다. 중요한 대목입니다. 주목하기 바랍니다. 죄인은 죽어 반드시 썩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주님은 죄가 없으시되 인간의 죄를 대신 끌어안고 십자가에 오르셨습니다. 주님이 의 그 자체시라는 것이 부활승천으로 핑계할 수 없이 증거됐습니다. 주님이 의(義)이셨다는 증거가 바로 사람 눈앞에서 죄인처럼 썩는 시체가 아니라 살아 승천하심으로 완전하게 사라졌다는 건 더 이상의 의에 대한 논쟁이 필요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렇게 부활승천으로 의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을 꾸짖은 겁니다.


본문 11절입니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끝으로 심판에 대한 보혜사 성령의 책망은 심판을 주제로 하는데 심판이란 어원을 먼저 살피기 원합니다.

심판이란 정의의 잣대로 재어 행한대로 판결하는 것을 말하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심판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히9: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엔 심판이 있다.”고 했고 롬8:1절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했는데 정죄함없이 심판댕 나간다는 건 무얼 의미합니까? 요3:18~19절을 함께 읽습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사랑하는 예배자여러분, 믿음으로 심판을 피한 자에겐 심판이란 게 의에 대한 확정판결로 무죄판결이 선포되는 걸 의미합니다. 반면 죄로 인해 예수를 거부하고 세상을 사랑하면 그 상태가 벌써 죄아래 놓였고 죄의 시작과 과정과 결국이 고통과 슬픔과 저주스러운 지옥행이라서 그 자체로서 이미 심판에 들어갔다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말씀가운데 눈여겨볼 단어는 세상임금입니다. 이미 8절에서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고 했고 지금 11절에서도 세상임금이 심판을 이미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예배자여러분. 이미 심판에 들어갔고 또 심판받은 세상임금이 다시는 우리를 압제하지 못한다는 것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자유, 어찌 얻은 것입니까? 우릴 사랑하셔서 우릴 대신해 죽으신 예수그리스도의 희생, 그 의로 인해서 얻은 새생명입니다. 그런데 악한 세상임금에게 다시 돌아가 노예가 될 순 없는 일입니다. 거듭 일러드리는데 큰 싸움에서 이긴 자가 작은 싸움에서 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싸움이 전체의 실패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않기 바랍니다. 마귀를 물리친 자가 자기에게 패배해서 수치를 당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간추리며 마칩니다.


1. 부활승천하신 주님이 이제 우리가운데 의의 심판주 보혜사 성령으로 함께 하십니다.


2. 우리 주의 영 보혜사 우리 성도 안에 계신 성령이 끊임없이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종종 우리 안에도 숨어드는 세상임금과 세상을 꾸짖고 계십니다.


3. 우리가 꾸짖어 책망해야 할 세상은 우리가 점령해야 할 땅, 말씀으로 지배해야 할 육체입니다.


4. 주의 동행과 임재와 확정된 승리를 믿고 느끼고 인식하는 것이 성도의 능력으로 드러납니다.


5. 저와 여러분 안에 지금 계신 주님을 늘 환영하고 활발한 교제를 하면서 24시간 살아야 합니다. 꿈속에서도 잠재의식 가운데서도 늘 자신을 주장해 달라고 탄원하시기 바랍니다.


6. 주와 철저하게 밀착된 삶은 주의 이름을 자주 쉬임없이 부르면서 시작됩니다. 주님과 잠시 틈을 보이면 그때는 즉시 마귀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7. 영적지식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또 의지적 결단 곧 지정의, 총체적 인격과 삶으로 주님을 늘 모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결국 주님의 활동을 따라 주님과 함께 이미 우리 안에서 쫓겨난 세상임금과 세상을 꾸짖어 나무라면서 호통치는 승리자로 세상과 육체가 이기지 못할 야무지고 귀한 믿음의 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