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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4.09.28. 주일낮예배<암5:4-13.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by 설렘심목 2014. 9. 28.

2014.09.28. 주일낮예배<암5:4-13.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본서가 기록된 주전 760년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유례없는 안정과 번영을 누리고 있는 때였습니다. 아모스선지자는 여로보암 2세의 치하에서 나라의 부강과 부요로 백성들이 교만해질 대로 교만해지자 회개를 촉구하도록 부름받은 농부출신의 선지자입니다. 아모스는 본래 양을 치며 뽕나무를 재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갑자기 부르셔서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예언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무사태평 한창 잘 나갈 때 “너희들 곧 망할 것”이라고 한다면 그 말한 사람은 대번에 외면당하고 공격받습니다. 아모스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벧엘의 성소는 무너질 것이고, 왕은 칼에 죽겠고 백성은 사로잡혀 갈 것”이라는 겁니다. 


벧엘은 아마샤라는 제사장을 세워서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빈부의 격차가 심했고 우상숭배와 사치풍조와 성적 타락이 극심했습니다. 가난한 자는 짐승취급을 당하며 멸시와 학대가 만연했습니다. 부자들은 상아침대에서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 송아지요리로 시작하여 비파에 맞춰 헛된 노래를 주절거리며 쾌락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종교지도자들이 정치꾼들과 결탁해 돈과 명예에 취해 하나님의 진심을 바로 전하지 못하여 결코 본이 되질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한 백성들이 이토록 타락하고 부패한 데 대하여 분노하시고 공의에 팔을 휘두르시기 전에 먼저 선지자 아모스를 보내신 겁니다. 그리고 그대로 오염된 상태가 지속적일 때 당할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이때 회개를 촉구하며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오늘 듣는 내용으로서 제목은 “나를 찾으면 살리라.”즉 여호와 하나님을 찾으면 살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머지않아 아모스의 예언대로 성소가 파괴되고 왕이 칼에 죽고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 나라가 망할 일이 곧 벌어질 텐데 그 가운데서도 살 길은 하나,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본문 암5:5-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니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


1. 죄에서 돌이켜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지금 읽은 본문에 등장하는 지명들은 모두 영적인 의미와 역사가 깊이 새겨진 곳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이러한 곳들을 특별히 기념하고 순례하곤 합니다. 벧엘은 야곱이 꿈에 하나님을 만나서 언약을 확인한 곳입니다. 브엘세바는 이삭이 우물을 파다가 블레셋으로부터 화친을 요구받고 마지막 판 일곱 우물이란 뜻의 지명입니다. 길갈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넌 후 열두 돌기둥을 세워 애굽의 수치를 벗은 것을 기념하고 광야에서 미처 하지 못한 할례를 한 곳입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나 영적으로 깊은 의미가 담긴 곳이 훗날 백성들의 타락으로 음란한 장소가 되기도 한 곳입니다.

본문에서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곳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합니다. 어떠한 곳도 너희들에게 생명을 주거나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그곳들은 필경 사로잡히고 허무하게 되며 진노의 불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우리 인생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환경이나 물질이나 조건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손에 쥐신 사랑의 하나님 한 분이심을 믿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가는 동안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한 것을 알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월과 소유와 관계를 허비했는지 모릅니다.


억울한 일을 법원이나 국가가 풀어주지 못합니다. 빼앗긴 세월, 탕진한 날들을 아무도 돌려주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도 채워주지 못하는 근원적인 외로움이 있습니다. 눈에 뵈는 허탄한 것에 낭비한 인생을 누가 보상합니까?

“너희는 길갈로도 내려가지 말고, 벧엘을 찾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승승장구했던 승전기념비도, 아름다운 추억도, 능력있는 지인도, 자신만만한 권세도, 엄청난 재물도 하나님 판단의 잔 앞에 안개처럼 흩어져 버리는 허망한 꿈이요, 티끌입니다.


아모스선지자는 말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엉뚱한 곳으로 가서 구원을 요청하지 말고 너를 지으시고 너를 지켜주신 너희 하나님을 찾아 손을 내밀라는 것입니다. 아모스의 예언은 선포된 후 15년 만에 현실로 나타나서 이스라엘은 풍비박산이 납니다. 왕은 칼에 죽고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흩어지고 성소는 훼손됩니다. 백성들은 비로소 아모스선지자를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나 혹독하다는 것을 알고는 통곡하기 시작합니다. “Before it is too late!”


사랑하는 여러분. 너무 늦기 전에 한국교회는 여호와를 찾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여전히 진리를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지금도 교회운동을 인도해 가십니다. 믿기를 축원합니다.


2. 사망의 저녁을 생명의 아침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이 땅에 모든 어두움을 물리칠 단 하나의 방법은 하나님의 빛 예수그리스도십니다. 휘황찬란한 조명의 그늘 아래 가려진 외로운 몸부림들, 스피커가 터져라 불러대는 노래들은 노래가 아니라 차라리 절규라고 해야 합니다. 평화스럽게 보이는 정원에서 브람스에 맞춰 춤을 추며 하이네와 헷세를 읊으며 영원한 사랑을 고백해도 여전히 인생은 100년을 못 버티고 썩어 흙으로 돌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허망한 풀잎에 불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간은 누구나 항상 복과 저주의 갈림길에서 어리석은 고민과 갈등을 하게 됩니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평생 지워지지 않는 후회로 다가오기도 하고 때론 두고두고 행복한 기쁨의 샘이 되기도 합니다. 지혜자가 어디있고 분별의 명쾌함이 어디 있습니까? 지혜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니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찾아주신 복음 예수그리스도 아닙니까? 누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우리 인생들을 구합니까? 아무리 발버둥쳐도 인생은 반드시 죽게 돼 있고 가는 길 험한 일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고상하고 아름다워도 아침 해에 이슬 사라지듯 모두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마지막 답은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말씀은 죄와 사망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으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찾으면 살리라고 선포합니다. 본문8절에선 하나님은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는 분이라고 증거합니다. 시편기자는 시21:4에서 “그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그에게 주셨으니 곧 영원한 장수로소이다 .”라며 고백하고 있습니다. 살기를 구했더니 영생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요11:25-26절 하나만 더 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벧엘은 아모스선지자의 충고를 듣지 않아 결국 15년 뒤에 앗수르 디글랏빌레셋에게 멸망당합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주님이 예언한 것처럼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주후 70년에 비참하게 망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요나가 찾아가서 회개를 촉구했던 음란의 도시 니느웨를 기억합니까? 니느웨는 요나선지자의 경고를 듣고 즉시 엎드렸습니다. 왕은 조서를 내려 사람이나 짐승이나 입에 물도 대지 못하게 하여 금식을 명하여 급박한 징계를 피하기 위해 회개운동을 벌입니다. 왕은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식음을 전폐하고 회개합니다. 백성들도 울며 통회합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짐승들도 따라서 굶습니다. 욘3:8-9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불벼락으로 소돔과 고모라처럼 잿더미가 될 뻔 했던 니느웨성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하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아멘.


이런 설교를 들으면 우리는 우리에게 무슨 벧엘같은, 니느웨 같은 죄가 있을까 생각합니다. 지난주에 성도의 능력된 삶은 어디서 나온다고 했습니까? 거룩과 순결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거룩은 아무 죄가 안 보여도 자신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죄성을 아파하면서 괴로워하는 것이고 순결은 작은 범죄에도 크게 힘들어하는 것이라는 말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돌이켜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새 생명으로 환영하시는 우리 좋으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저와 여러분. 예수믿는 일보다 더 귀한 일 세상에 없습니다. 예수 믿는 일보다 더 복된 일도 세상에 없습니다. 예수 믿는 일보다 더 고상한 일도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보다 더 복받은 자가 어디 있을까 큰소리로 주를 찬양하기 바랍니다. 그럴 이유 우리 하나님이 성경통해 늘 말씀해 주십니다. 주님 안에서 정녕 힘있는 예배의 삶, 복된 삶과 영원한 생명으로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기뻐하는 남은 날들이 되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