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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4.09.07.추석주일예배<고전10:20~21. 뛰어남이 아니라 절개로.>

by 설렘심목 2014. 9. 7.

2014.09.07.추석주일예배<고전10:20~21. 뛰어남이 아니라 절개로.>

 

우리가 얼마나 복된 나라에 사는지 모르고 불평할 때 지구촌 구석구석에서는 상상조차 힘든 참혹한 일들이 쉬지 않고 일어납니다.

영국 국민 6천만 중 약 10%가 무슬림인데 2013년도 신생아들의 이름 인기 1순위가 무함마드라는 것입니다. 2000년도부터 유입된 무슬림의 자녀출산율은 자국민의 8배나 돼서 이대로 가면 2040년도엔 영국국민 절반이 무슬림이 된다고 합니다. 이들이 범죄하면 영국법정에 서질 않고 샤리아(이슬람율법)법정에 서며 판결효과는 동일하게 처리됩니다. 이런 엉터리법과 제도는 결국 유권자의 표를 염두에 둔 영악한 정치인들에 의해 이뤄진 제살깎기였습니다. 영국에서 교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부흥의 불이 꺼지면서 시작된 일입니다.

 

아프리카 최대인구에 최대산유국인 나이지리아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서구식 교육은 죄악)은 지난 8월 6일 기독교인이 대부분인 북부의 구오자마을에서 100 여명을 살해하고 또 며칠 후 다시 인근에서 28명을 살해하고 다시 100명을 납치해 버스에 싣고 가다가 차드군에 의해 저지, 살해당했는데 이들의 목적은 샤리아국가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지난 4월 북부 치복시(市) 여학생기숙사에 침입해 276명을 납치해 지금 탈출한 60명 외 216명은 아직 돌아오지 못해 부모들의 마음을 태우고 있습니다. 보코하람의 대표는 알라께서 소녀들을 데려와 무슬림과 결혼시키고 또 시장에 내다 노예로 팔라고 말씀하셨다고 공식발언을 해서 세상의 분노를 샀습니다.

 

제 2의 알카에다로 불리는 수니파반군 IS는 아지디부족마을에 침입해 남자 80명을 살해하고 여성들은 모두 잡아갔는데 모두 무슬림들의 아내가 되든지 노예로 팔리든지 둘 중 하나라고 합니다. 이들은 알라숭배 외에는 모두 악마숭배라고 해서 어떻게 살해해도 죄가 아니라고 굳게 믿으며 어떻게 해도 알라를 위한 것이면 다 무죄이고 천국에 갈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은 성전, 곧 지하드에서 생명을 바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청년들은 한사코 지하디스트가 되려고 지원하고 자살테러, 요인암살, 참수 등 무서운 테러관련 교육도 기꺼이 합니다.

 

이슬람의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분쟁으로 온 세계가 몸살을 합니다. 이라크의 알 말라키총리는 시아파인데 시아파와 수니파와 쿠르드계를 간신히 추슬러 3선에 당선됐으나 결국 수니파반군 IS(샤리아이슬람국가)의 저항으로 최근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2011년 이라크철군을 주요외교업적으로 삼은 오바마 미대통령은 이번 미국기자 참수사건으로 중동에서 발을 빼려는 정책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뼈저리게 깨달은 것입니다.

 

신사의 나라 영국에 이젠 툭하면 이슬람폭도들의 무차별총기난사로 떼죽음을 합니다. 문제는 유럽 어지간한 나라들 안에 자국민 무슬림이 번져간다는 것입니다. 이번 미국기자의 목에 칼을 대고 무썰듯 잔혹하게 참수한 자도 아랍인이 아닌 영국인 무슬림이라고 합니다. 영국이 하루아침에 이런 나라가 된 건 아닙니다. 교회가 무너져 예배당건물이 나이트클럽에 팔리고 그나마 소수의 몇 교회는 노인 몇이 예배하면서 시작된 국가적 무서운 재난입니다.

방송에선 러브인아시아 등 다문화가정을 품자고 하는데 영으로 깨어 있는 이들은 그 속에 교묘히 숨어 잠잠히 때를 기다리는 이슬람의 악한 영을 봅니다. 지금 한남동에 있는 이슬람사원에는 무슬림이 되려는 한국남녀청년들로 붐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 후손이 어떤 환경에서 살게 될지 아무도 보장 못합니다.

20절을 함께 읽습니다.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1. 하나님께 예배하는 성도는 귀신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영적세계인 것을 우리는 잘 알지만 육신으로 맺어진 친지들을 때마다 보게 됩니다. 겸손하되 단호한 신앙절개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친지들은 우리들의 행동과 말에서 그리스도의 흔적을 좀이라도 보려할 것입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주께 의뢰하고 기도했다면 염려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 깊은 영으로 동행하고 있다면 마땅한 처신과 할 말을 주님이 일러 주실 겁니다.

 

2. 영적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은 귀신에게 절하여 복을 기원합니다.

 

구약성경의 대부분을 차지한 내용은 다름아닌 이스라엘, 곧 믿는 자의 부패입니다. 그 부패란 하나님을 등진 영적무지로 인한 총체적인 부패인데 온 인류를 멍들게 하는 귀신, 곧 마귀가 가장 기뻐하며 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소수의 택한 성도들 외 무수한 많은 자들은 마귀에게 사로잡혀 살면서 마귀의 노예가 돼 마귀에게 충성하면서 한평생 지옥을 향해 열심히 달려갑니다. 특히 사랑하는 집안에 이런 자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끔찍한 일입니다. 잠시 여기서 살을 맞대고 살긴 하지만 머지않아 전혀 남남이 될 영혼들과 가문가속이 되어 함께 갑니다. 전도가 되질 않아 아파하는 마음, 주님이 보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적극적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가문가족전도를 위해 생명걸고 기도 해본 기억도 없고 그냥 그렇게 그럭저럭 부끄러운 세월만 갑니다.

이 땅이 비록 힘겹고 부조리해도 한번 밖에 없는 귀한 육신의 날들인데 그렇게 갑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영원히 되돌아오지 않는 오늘이라는 귀한 한 날입니다. 전도가 안되면 기도라도 해야 합니다.

 

사단이 와서 사단대장에게 보고합니다. “어지간한 것들은 잘 넘어가는데 목사, 장로, 권사들, 또 열심있는 자들이 힘듭니다.” “그래? 그러면 좋은 일거리를 많이 줘서 바쁘게 하거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바빠서 기도할 틈을 얻지 못했다면 그 바쁜 게 우리의 영을 해치고 있는 것입니다. 지옥으로 갈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겟세마네 깊은 기도를 했는가 돌아봐야 합니다. 기도는 꼭 긴시간 소리치며 울부짖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가문가족전도를 위해 진실로 원없이 기도했다면 지금 이 말씀듣는 순간 기도가 반드시 응답됐다는 평안함을 풍성하게 받기 바랍니다. 평강할지어다. 그러나 후회도 미련도 없이 기도해본 기억이 없다면 이 시간 돌이켜 회개하는 마음으로 결단하시기 주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3. 친절하되 단호한 신앙절개를 지켜야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계1:3절에서 이르는 복있는 자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록된 대로 주님은 불언간 반드시 속히 오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기록된 말씀대로 살고자 최선을 다할 때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라고 했으니 목숨조차 바치는 신앙의 절개가 있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문 21절을 함께 읽습니다.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우리 가운데 주님도 좋고 세상도 좋은 사람, 없는 줄 믿습니다. “주도 한분이시오, 세례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시고 중보자도 주님 한분이신”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어떠함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걸 압니다. 우리의 공로나 우리의 성실이나 우리의 뛰어남에 그 원인이 없을뿐더러 우리의 비참함이나 겸손에도 구원의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우릴 구원하신 우리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우리가 오로지 하나님만 바로 바라봐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아무 일도 없는 일에서 생명을 구하되 영원한 생명이요, 빌 바를 찾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마귀를 쫓을 막강한 이름, 주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이름도 받았습니다.

주님말씀하십니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귀신 쫓을 권세보다 더 기쁜 것이 하늘에 기록된 저와 여러분의 이름입니다. 육체로 태어나 하늘시민권을 받은 것 이상 더 큰 영광은 세상에 없는 줄 압니다.

 

그래도 저와 여러분, 우리 육신은 꾸준하게 힘겨운 길을 가야만 합니다. 왜 꼭 그렇게 힘들어야 할까? 창3장에선 인간의 타락에 관해 여자와 남자와 뱀이 받아야 할 죄의 결과를 밝힙니다. 책망의 순서는 뱀, 여자, 아담의 순서인데 뱀은 “저주가운데 더욱 저주”란 단어를 사용했고 하와는 고통과 수고란 말이 쓰였고 하와에겐 평생에 수고를 해야는데 그 이유가 아담의 범죄로 땅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뱀 곧 마귀는 평생을 배로 기어다니고 즉, 바닥에 배를 붙여 흙(죄성)과 연합한 삶이되 살아있는 한 흙을 먹어야 하는, 이를테면 사람의 육체와 육성을 필요로 하는 악한 활동이 이른 바, 귀신의 정체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확인해봅니다. 이 천하만국 눈에 뵈는 모든 권위와 영광은 예수님 오시기 전 누구의 것이었습니까? 눅4:6절에 사단이 말합니다. “이 모든 권위와 영광을 내기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자기에게 굴복하면 천하만국의 모든 것을 주겠노라고 주님을 시험합니다. 지금도 보이는 천하만국의 영광과 권세를 손에 넣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들이 마귀에게 절을 하고 있습니까? 들리는 바에 의하면 WCC에 가입하면 개척교회 그렇게 힘들게 살지 않도록 해준다는 겁니다. 마귀에게 굴복하면 일단 눈에 뵈는 고통이 사라지는 듯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망의 덫이고 지옥의 미끼입니다. 미끼는 실제 먹이보다 더 달콤한 법입니다. 자칫 정신줄 놓으면 마귀의 먹이가 되는 게 우리들 육체입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전이고 거룩한 영의 처소로 이미 예수님이 피값을 주고 마귀로부터 완전히 접수했습니다. 우리 몸과 삶이 다시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이런 기초적이고 확실한 이유로 우리 몸을 하나님 외에 어디에도 굽히거나 고개를 돌려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사방팔방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방해하며 유혹하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어디 명절에 맞닥뜨리는 제사뿐이겠습니까? 힘든 일 앞에서 하나님 외 다른 길을 찾고 고개숙이고 부탁하고 아부하는 것, 자기 신랑놔두고 옆집 남의 남편에게 가서 아양떨며 부탁하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이런 아내 영적으로 이미 사형감입니다.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고전10:21) 양다리 걸치는 사람 정말 기분 나쁜데 적보다 더 기분 나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세상 앞이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버젓이 내세울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늘 잊지 않아서 허물많고 부족한 이 몸, 그래서 아무 것도 당당할 게 없는 히브리인들, 매정한 무한경쟁의 시대에 경쟁으로는 너무 힘겨운 우리들, 다만 하나 주님만 바라겠다는 일념, 결사의 각오 절개를 다짐하며 불변하는 한 마음으로 예수 외엔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고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늘 친절하고 겸손하되, 신앙의 절개만은 생명걸고 단호하게 지켜내는 저와 여러분이길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