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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4.09.21.주일예배<민9:9-14. 쓴 나물을 먹는 유월절>

by 설렘심목 2014. 9. 24.

2014.09.21.주일예배<민9:9-14. 쓴 나물을 먹는 유월절>


본문 11절을 함께 읽습니다. “2월 14일 해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 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어울러 먹을 것이요.” 세 가지의 먹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린 양과 무교병과 쓴 나물입니다. 이 세가지 유월절 음식의 규례가 오늘 날 교회와 성도에게 전하려는 교훈은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로 합니다.


1. 어린 양입니다. (대속제물 어린 양입니다.)


교회가 가는 길은 구원의 천국길이지만 세상이 가는 길은 멸망의 지옥길입니다. 세상이 가는 지옥길은 그 길이 쾌락과 방탕과 우상숭배와 탐심 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 지옥은 저절로 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가는 천국의 길은 오직 길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천국길은 어린양 보혈로 덮여 있는 길입니다. 어린양이 죽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것이 천국의 길입니다. 우리들의 죄를 대신해서 어린양이 뼈를 꺾지 않은 채 죽어서 우리가 살 길을 얻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지시고 죽으시되 무릎을 꺾지 않은 채 죽으셨습니다. 그 피는 이제 우리들 마음속에 들어와 새 생명이 됐습니다. 그래서 유월절 장자가 죽던 날 저녁엔 어린양을 잡아서 피를 문설주에 바른 뒤 고기는 서서 허리에 띠를 띠고 지팡이를 집은 채, 신을 신고 먹어야 했습니다. 중요한 건 어린양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살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즉, 성도들이 먹었다는 것입니다.

요6:54-58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을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리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읽은 요한복음 말씀처럼 어린양의 살을 먹는 거룩한 예식은 주님 오실 그 날까지 이어져야 하는 성찬식으로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질적인 삶에 있어서 성찬식이 영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것은 믿지만 성찬식에 이어 지속적으로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원합니다. 성찬식의 떡은 예수님의 몸을 대변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영의 양식이 풍성하고 주님과 동거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주의 말씀, 곧 성경의 말씀이 우리 영생의 양식이 되어야 합니다. 진리를 먹는다 함은 진리가 우리 안에 들어와 침투하여 몸이 된다는 의미이며 몸이 된다함은 곧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줄이면 예수님, 어린양의 살을 먹는 것은 예수님의 진리를 먹어 교회와 성도가 예수를 꼭 빼어 닮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닮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2. 무교병입니다. (부풀리지 말라는 무교병입니다.)


발효되지 않은 채 구운 떡을 말합니다. 요즘의 빵 종류의 부푼 건 유교병이고 떡종류나 빈대떡은 무교병입니다. 부풀릴 시간도 없이 즉시 구워먹고 속히 애굽을 뛰쳐나와야 하는 당시 긴박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급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풀리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출13:7절입니다.“칠일동안에는 무교병을 먹고 유교병을 너희 곳에 있게 하지 말며 네 지경안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도 말게 하며”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신 것은 누룩이었습니다. 장자의 죽음을 면하고 신속하게 애굽을 탈출하기 위해 하루정도 걸리는 발효를 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여기엔 신속함과 진실함이라는 두개의 주제가 있습니다. “네 지경 안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도 말게 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유월절 기념일에는 누룩을 일체 없앰으로 부풀림이 없는 진실함과 부풀릴 시간조차 없는 구원의 긴박함을 기억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일에 머뭇거림이 없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양식은 부풀려서 먹는 것이 아니라 주실 때 속히 취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은 부풀림이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진실, 그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고 그것이 죄인을 향한 구원의 계획이었음을 진실로 믿는 믿음이 누룩없는 떡처럼 부풀림없는 진실로 우리가운데 다가오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구원은 사랑에서 비롯되었고 그 일은 하나님이 만족하실 때까지 그침이 없을 것입니다. 믿기를 축원합니다.


3. 쓴 나물입니다. (잊지 말라는 쓴 나물입니다.)


어린 양의 고기와 무교병과 함께 먹어야 하는 것이 쓴 나물입니다. 몸에는 유익해도 먹기 힘든 게 쓴 나물입니다. 그런데 이 쓴 나물을 억지로 먹게 하신 겁니다. 보통 나물이라고 하면 봄을 생각하게 합니다. 살짝 데쳐서 갖은 양념에 묻혀서 입에 넣으면 그 독특한 향과 맛이 먹는 즐거움을 한껏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유월절 기념의 나물은 입에서 거부하는 쓴 나물입니다. 여기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쓴나물같은 애굽의 노예시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430년간 애굽의 노예로 살던 쓰디쓴 기억을 결코 잊어선 안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죽어가며 하나님의 구원만 소망하던 그들이 드디어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메시아 대망사상으로 가득한 백성에게 유월절의 사건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민족적 기념일이며 쓴나물을 씹으면서라도 새롭게 해야 할 기억입니다. 그 핍절하던 고통과 수치의 시절을 잊고 방심한다면 그들은 새로운 고통과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쓴나물을 씹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신8:14a에는 그래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오왕 합려의 패전사망에 이은 태자의 복수결심 : 섶 위에서 자며 신하들에게 지시한 말..

“부차야. 월왕 구천이 네 아비를 죽였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예, 결코”- 와신. 월왕 구천의 선제공격은 실패, 회계산의 수치를 잊지 않기 위해 쓸개를 씹으면서 - 상담.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란 누구입니까? 주님을 십자가에 내어주고 창으로 찌른 유대인이나 로마병사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진정 슬프고 아프게 하는 건 , 한번 구원받고 복된 삶을 살아가던 중 풍성해진 삶으로 더 이상 주님이 아쉽지 않아 종종 주님 찾기를 멈추는 겁입니다. 후히 대접했더니 배가 불러 초심을 잃은 자들입니다.

우리 가운데 그런 사람없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모든 장자가 죽던 날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유월절 기념은 출애굽의 열 번째 재앙인 장자의 죽음이 그 절정을 이룹니다. 세상 살면서 크고 작은 고통은 끊임없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맏아들의 죽음이란 고통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사건일 것입니다. 그런데 열가지 재앙의 마무리를 장자의 죽음으로 처리한 하나님의 사건을 백성들에게 쓴나물을 씹으며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 살아남은 이스라엘의 모든 맏아들 곧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영적 이스라엘들은 죽음에서 하나님이 건지신 하나님의 소유임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새로운 결단을 쓴나물을 씹을 때마다 새롭게 해야 할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지나온 인생살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을 쓴나물을 씹는 기념일을 명령하셔서 기억을 새롭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험한 일을 당하지 않는 방법은 그 험한 일을 되새겨 보는 일입니다. 쓴나물은 그렇게 우리 인생의 양약이 될 것입니다.

3)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출13:3절을 비롯해 신명기 여러 곳에서 꼭 같은 말씀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애굽땅에서 종되었던 집에서 너희를 인도하신 나 여호와..”라고 표현한 부분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과 저와 여러분의 지금모습이 아니라 본래 애굽땅 종되었던 집에서 노예로 비천한 삶으로 연명하던 모습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너희를 구원해 낸 나 여호와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과거의 우리모습과 영원한 주님의 실존을 동시에 잊지 않는다면 우리 믿음은 실로 큰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렇게 죄와 사망길에 있던 과거와 거기서 구해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은 우리의 영에 평생토록 지극히 유익한 일인 것입니다. 낮고 낮은 나와 높고도 높은 예수그리스도의 간격은 구원의 감동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의 주요주제는 어린양과 쓴나물과 무교병입니다. 우리 삶에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교훈들이 있습니다. 이미 적지않은 대가를 치른 교훈을 가슴에 새겨 잊지 않는 모두이길 바랍니다. 부풀리지 않는 구원의 복음,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의 새생명을 붙잡기 바랍니다. 오직 믿어서 거저받은 구원, 이 놀라운 일을 언제든지, 어디서든 잊지 않아 겸손과 충성으로 풍요롭고 복된 삶을 사시기 예수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