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14 주일오후예배<창30:22-24. 라헬의 수치>
라헬은 용모가 빼어나게 예쁘고 총명한 여인입니다. 야곱이 한눈에 반했던 처녀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성간의 매혹이 그 아름다운 외모에도 불구하고 유효기간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고대동양뿐 아니라 고대중동의 가문들도 그 부와 권력의 구조가 아들들을 따라 이어졌고 따라서 여인들의 입지는 든든한 아들들을 얼마나 많이 두냐에 달려 있습니다. 라헬은 야곱에게 그 아름다운 외모와 매력으로 제일가는 여인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라헬은 네명의 아내 중에 유일한 불임여성으로서 참으로 불행스런 삶을 살게 됩니다.
긴 세월 자녀가 없는 고통과 수치는 남편의 극진한 사랑으로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세 아내로부터 열명의 아들을 볼 때까지 라헬에겐 자녀가 없었습니다. 이는 모세가 40년씩이나 처가살이 양치기를 한 것과 같습니다. 예쁘고 총명한 라헬의 자신감과 교만을 낮추셔서 겸손으로 바꾸는 성화의 기간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고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겠습니까? 즉 자신만을 빼놓고 세명의 다른 아내들이 열명의 아들을 출산하는 기간은 라헬의 자존심을 무참하게 죽이는 참으로 귀한 세월이었습니다. 남편에게는 으뜸가는 아내의 기쁨이 있었지만 자녀없는 서러움이 그것을 덮어 라헬의 기쁨은 언제나 해만뜨면 사라지는 이슬같은 것이었습니다. 라헬의 긴 세월 타는듯한 심경을 누가 압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보고 들으셨습니다. 이어 하나님은 라헬을 구하시기로 하셨고 그 일은 그렇게도 소원인 아들의 임신입니다. 태를 열어 주셨습니다. 23절을 읽습니다.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1. 부끄러운 인생(라헬)입니다.
다들 예쁘다, 부럽다, 참 좋겠네 하며 선망의 눈으로 바라봐도 자신 안에 있는 수치감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부끄러운 구석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부끄럼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씻어지지 않습니다. 부끄러운 바로 그것을 덮고 부족한 데를 채워주는 위로와 공급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그 덮음이 넘칠 줄 믿습니다.
라헬은 자녀없는 게 부끄러웠고 요셉을 출산하고서야 비로소 그 부끄러움이 씻어졌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부끄러움은 무엇입니까? 아직도 남모르는 부끄럼이 여러분을 괴롭힙니까? 그 수치로 인해 얻을 성숙과 성장과 풍성이 보이지 않습니까?
성도란 약속을 기억하며 먼저 아멘함으로 그 소망을 믿음으로 간직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 치욕과 배신 앞에서 무엇을 기억했습니까? 히12:3절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다시 살릴 아버지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의지했습니다. 수치는 수치 자체에 의미가 있지 않습니다. 그 수치를 통해 드러날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고 바뀌어야 할 우리들의 연약과 허물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수치는 우리에게 더 나은 것을 제시하기 위한 한 도전의 과정일 뿐입니다. “너 이래도 그렇게 계속 그럴 것인가?” “이런 수치에도 그대로 갈 건가?”수치로 인해 잘못된 방법과 관계와 습관과 생각과 믿음과 전반적인 삶이 고침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우리주님이 우리의 수치와 허물과 죄를 담당했습니다. 그래서 시103:12절 고백처럼“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신”하나님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치러야 할 많은 죄값을 우리주님이 한번에 치르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후 우리에겐 남아있는 죄악과 수치와 허물의 찌끼가 사실상 없습니다.
환한 빛, 주의 날이 시작된 것입니다. 주의 날은 소망의 날이요, 주의 날은 죄악으로 잃었던 모든 걸 다시 찾은 날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날은 회복이며 풍성이요, 영광이며 기쁨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겐 육체가 있어 끊임없는 죄의 뿌리들이 순간마다 꿈틀댑니다. 그것은 우리 허물과 수치와 죄를 씻어주신 주님에게 다시한번 십자가의 보혈을 바라보는 이유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주의 보혈이 필요합니다. 다만 주님의 보혈이 헛되지 않으려면 수치와 허물이 도리어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다가서는 믿음의 성장요인이 되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즉 수치와 허물은 회개와 각성과 결단을 통해 주께서 열어주시는 신앙성장의 귀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한 주간의 허물과 수치를 주 앞에 올리고 그 수치를 발판으로 주 앞에 다가서는 생명의 축제 주의 날, 주일은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기쁨으로 노래하며 주 앞에 뛰노는 잔치여야 합니다. 이는 범죄로 무너진 에덴이 재건되는 회복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 365일 하루같이 주일이길 축복합니다. 본문 22절을 함께 읽습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신고로”
2.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셨다는 것은 라헬을 잊지 않고 또 버려두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라헬의 고통과 수치를 돌아보시고 기억하셨다는 것인데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기억 속에 저와 여러분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잠시도 잊지 말길 바랍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만난 것 우연이 아니라 주님의 계획 속에 있는 일입니다.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24절을 함께 읽습니다.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3. 소망하는 인생(라헬)입니다.
4명의 아내, 그리고 12명의 아들과 1명의 딸 중에서 마지막 끝으로 요셉과 베냐민을 낳아 아내된 자, 여인의 부끄러움을 씻은 라헬입니다. 인물로 말하자면 라헬을 따를 자가 없었지만 라헬은 긴 세월 절망스러운 수치의 날들을 힘겹게 견디어야 했습니다. 긴 세월을 견디면서 라헬이 철저하게 받은 교훈은 인생의 대소사가 사람의 힘과 소원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뜻에 달려있음을 알았습니다. 라헬은 낮아졌고 낮아진 라헬은 엎드리기 시작합니다. 거기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엎드리자 돌아보시고 들으셨습니다. 요셉이 태어납니다. 그러나 인생은 시이소오게임. 그 요셉으로 인해 야곱부부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당합니다. 아버지 야곱의 편애로 요셉은 채색 옷을 입고 형들의 미움을 받습니다. 결국 야곱은 편애로 요셉을 잃고 긴세월 통곡하는 실수를 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실수가 없습니다.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에게 맨 끝으로 아들을 주신 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었습니다.
늦은 임신과 출산을 통한 부끄러운 인생, 라헬의 수치를 씻어주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보았습니다. 길게 기다려 요셉을 얻는 라헬도 보았습니다. 라헬은 오랫동안 수치를 품고 기다려서 무엇으로도 구할 수 없는 생명, 요셉을 얻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우리 좋으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여 믿고 무던한 마음으로 기다린다면 우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무엇인들 아끼겠습니까?
저와 여러분. 하나님의 권능과 그 절대주권을 인정해드리고 주님을 바라보며 그 인자하심을 기다릴 때 주님은 계획하셨던 것들을 이루십니다. 긴 세월에도 라헬은 끝내 잘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을 진정 신뢰한다면 우리는 잘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들의 시간표는 믿을 수 없지만 하나님의 시간표는 너무나 정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쁜 소원이 우릴 두고 계획하셨고 우릴 통해 실현하시고 우릴 통해 영광으로 받으십니다. 최선과 성실로 바른 예배자되어 주님이 우리를 향해 정하신 모든 아름다운 일들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과 일터에 차고 넘치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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