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05. 주일낮예배<계16:15. 그날에 깨어 있으라.>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언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들이 더 이상 타락하여 범죄치 말고 돌이켜 하나님을 찾아 받을 재앙을 피하라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결국 예언서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밧모섬의 요한을 찾아오신 주님도 로마의 박해로부터 심한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과 교회를 위로하시려고 곧 일어날 악한 자들의 심판과 멸망에 이어 교회의 큰 승리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하신 모든 말씀과 보여주신 신비한 환상의 장면들은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고 했습니다. 본 계시록은 당시 아시아의 일곱교회였지만 오늘 날에 있어서는 주님의 모든 교회에 선포되는 복음중 복음인 것입니다.
정 많으신 아버지가 문제를 일으키고 집을 나간 아들에게 집에 속히 돌아와 사죄하고 제 자리를 지켜 아들 된 도리를 하라고 말합니다. 이때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향해 아버지는 끝까지 기대를 버리지 않고 손가락을 접어가며 수를 세기 시작합니다. “하나, 두울, 세엣” 일곱까지만 세면 아들은 이제 무서운 벌과 버림을 받기로 돼 있습니다. 아들은 아직도 민적거리고 있습니다. 이 때 아버지의 사랑은 여섯 다음의 수를 일곱으로 하지 않고 “여섯하나, 여섯둘”로 다시 시작합니다. 더 많은 시간을 주어서 아들 돌아오길 바라고 있는 겁니다. 계시록은 “ 여섯 다섯 여섯 여섯, 다음에 여섯 여섯에 하나, 여섯 여섯에 둘”로 손가락을 접어가는 인내하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사랑이 가득담긴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일곱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재앙입니다. 첫 번 일곱인의 마지막 인은 일곱 나팔의 첫 시작이며 일곱 나팔의 마지막 나팔은 일곱 대접의 시작입니다.
본 16장은 마지막 count down으로서 세 번의 일곱재앙 중 끝에 나타난 심히 큰(16:21) 진노의 일곱 대접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일곱천사가 차례로 나와서 일곱 개 진노의 대접을 쏟을 때마다 가공할 진노의 장면이 나타납니다.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숭배하던 자들에게는 악하고 독한 종기가 발생하는 첫 대접이요, 둘 째 대접은 바다에 쏟아 피처럼 되니 바다의 모든 생물이 죽더라고 합니다.
연이어 쏟아지는 진노의 대접은 강과 물의 근원을 피로 만들고 해가 불로 사람을 태우며 나라마다 어두워지고 고통으로 혀를 깨물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유프라테스강에 쏟아진 여섯 번째 대접의 재앙은 거의 마지막 진노의 계시로 동방의 왕들이 마른 유프라테스강을 통해 동방으로부터 오며 개구리같은 더러운 영 셋을 소개합니다. 그것은 각각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더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날에 있을 추하고 악하며 개구리처럼 마구 떠들며 혼란하고 속이는 영들이 마귀의 3위1체로 나타나 마지막 발악적 전쟁을 예고합니다. 그 후에 오늘 설교의 본문이 나타납니다. 마지막 악한 적그리스도들의 발악에 대하여 성도들이 의의 두루마기를 입고 믿음으로 무장하여 부끄러움을 당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저들은 어떤 방법을 써서든지 성도들의 타락과 배교를 유도하여 하나님을 대항하게 하려 할 것입니다. 이때 성도들이 취할 믿음의 견고한 자세를 본문이 말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잊지 않아야 할 사실 두 가지를 본문에 근거하여 살펴 새깁니다.
Ⅰ.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단장한 신부를 찾는 주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예고없이 여러분의 집을 방문할텐데 그 때 졸고 있거나 잠들어 있는 저와 여러분이 아닌 줄 믿습니다. 늘 깨어있어 찬송이 끊이지 않고 기도의 잔이 넘쳐 말씀이 생명의 강처럼 흘러나는 주의 성소에서 주님을 기다리기 바랍니다. 주의 성소는 어딥니까? 어디든 주를 앙모하는 곳이 성소입니다.
일곱의 세 번이 겹친 가공할 진노의 잔이 쏟아져도 성도의 삶은 늘 주의 그날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 재림하시는 그날은 일상사에서도 늘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잘 준비돼 있는 이는 어떤 일이 있어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깨어 있는 자는 늘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잠들어 있는 영혼은 시절을 알지 못합니다. 무엇을 어찌해야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밖은 난리가 터져서 제각기 피난처를 찾아 뛰는데 쿨쿨 잠만 자는 영혼은 필경 적군에 사로잡혀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
Ⅱ. 그 날은 도적같이 임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 10절에서는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합니다. 이 말은 그 시와 때를 아무도 알 수 없도록 하심으로 늘 주앞에서 그 날을 예비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언제 임할지 모르는 주의 날”이라함은 반드시 속히 올 언약과 함께 비록 견디기 힘든 박해의 현실이지만 오직 신실하신 주의 재림과 그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잘 인내하기 바라는 주님의 격려가 깃든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현실이 하나님을 따르는 일에 많은 방해를 하며 어렵게 한다하지만 도적같이 임할 주의 날을 기대하는 벅찬 소망을 저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때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징후를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분명히 계시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처처에 지진가 기근과 전쟁과 거짓그리스도가 나타나면 그날이 가까운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험한 재난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뻐하는 선택된 소수의 복받은 무리들입니다. 그러므로 신랑예수께서 정결함으로 단장한 신부를 찾으실 때 마땅히 입고 나갈 준비된 예복, 곧 성령으로 무장된 아름답고 견실한 믿음의 옷을 입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옷입니다.
Ⅲ. 믿음의 옷을 입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엔 많은 옷이 있습니다. 명예의 옷, 부자라는 부요의 옷, 지식의 옷, 권세의 옷, 쾌락과 안일만을 평생 추구한 육체의 옷, 도적같이 주님이 오실 때 우리 무슨 옷을 입고 있을 건가? 더럽고 초라한 세상의 옷일까? 아니면 주님께서 믿음으로 인하여 입혀주시는 성결의 흰 옷, 깨끗하고 거룩한 믿음의 옷일까? 우린 그러한 옷을 입을 자격도 없고 능력도 없지만 좋으신 주님은 당신의 피를 흘려 값을 치루셔서 우리에게 죄용서와 더불어 믿음의 옷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러 그 옷을 입기만 하면 됩니다. 어린양 보혈에 빨아 희게 된 거룩의 옷 세마포를 입고 주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반드시 머지않아 다가올 그 날 거기서 옷을 입어 부끄러움을 당치 않도록 늘 믿음의 세마포 옷을 입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다시오실 예수님의 실존을 늘 믿는 믿음과 소망의 옷을 잠시도 벗지 말아 그날 진노의 잔 앞에 그리고 사단의 고발 앞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말라는 주님의 당부입니다.
사랑하는 예배자 여러분. 당신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언젠가 반드시 속히 이루실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이 땅에 느닷없이 오십니다. 그날 우리 모두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졸고 있는 믿음이 있습니까? 깨어나야 합니다. 때가 속히 이를 것입니다. 잠자고 있는 믿음이 있습니까? 속히 잠깨어 주님의 음성을 듣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의 옷을 입기 바랍니다. 그날 찾아오실 주님 앞에 벌거벗은 자는 수치를 당할 터인데 우리교회에 그런 어리석은 자 한 사람도 없을 줄 믿습니다. 이미 생명의 답이 있는데 답을 몰라 슬피우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두 그날 “난 이럴 줄 알았지..내 이날을 기다렸지”하며 즉시 일어나 달려나가 앞에 서신 주님 발 앞에 엎드려 입 맞추고 그 품에 안겨 기뻐뛰는 저와 여러분되시기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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