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20.주일예배<갈6:4~5. 자랑할 그것으로 자기의 짐을 지라.>
본 설교제목은 설교주제를 한마디로 줄였고 거기엔 자랑과 짐이라는 두 개의 단어가 나옵니다. 즉 자랑거리는 짐이고 짐은 자랑거리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갈라디아교회를 비롯해 자신이 눈물로 세운 개척교회들이 율법의 옭죄임과 복음의 자유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이는 바울의 분명한 교훈에도 불구하고 살며시 들어온 거짓교사들의 농간 때문이었습니다. 저들은 사단의 꼬임에 넘어가 어찌하든 교회를 흔드는 것을 목적으로 율법폐기론을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의 방해자가 됐던 것입니다. 나아가 그들은 복음이 주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에 방종을 불어넣고 한편 율법주의에는 오직 믿음이 아니라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이교도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는데 거기에 이교도예식도 경건하게 보이는 건 참고하도록 했습니다. 오늘은 사도바울의 많은 교훈 중 자랑과 짐이라는 두 개의 테마가, 모든 분야에 눈부시게 발전한 현대 문명시대 영특한 인생들에게 과연 어떤 의미인지 살피며 은혜를 나눌까 합니다. 본문 4절 앞부분만 함께 읽습니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1. 살펴보라고 합니다.
살핀다는 것은 모든 일의 기초행위입니다. 병든 몸을 살펴 바른 진단이 나오면 치료가 시작됩니다. 무너진 경제를 바로 살피면 회생하는 길이 보입니다. 감옥에 간 자를 살펴보면 감옥에 가지 않고 건전하게 사는 길이 보입니다. 본문의 말씀대로 자신을 살펴보면 자신의 소망과 길이 보이고 지나온 허물이 보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살필 때 어떤 렌즈로 즉 어떤 마음으로 살피느냐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됩니다. 주의 이름으로 권합니다. 어떤 잣대도 다 부러뜨리고 복음의 잣대로 스스로를 살피시기 축복합니다. 복음의 눈으로 살피면 가장 탁월한 객관성을 갖게 되고 가장 훌륭한 교사의 눈이 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버지의 눈으로 자신을 품게 됩니다. 냉혹하지만 부드러운 용서의 눈으로 자신을 보면 가장 정확한 길이 동시에 보입니다. 여기서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는 말의 각각 다른 특색을 지닌 사람에게 하는 일상적인 말인데 “각각”은 다양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예배자 여러분. 우린 모두가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습니다. 수박이 아무리 시원하고 달아도 참외의 맛을 흉내조차 내질 못합니다. 참외가 아무리 맛있어도 오이의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흉내내지 못합니다. 노래 잘해서 가수가 된 이에게 어떻게 그리 노래를 잘 하냐고 묻는 것은 사실 질문이 아닙니다. 이는 각각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불행은 비교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지혜로운 이는 남의 장점을 축복하고 기쁨을 어디서 찾습니까? 자신만이 갖고 있는 좋은 부분에서 늘 감사하는 버릇을 갖고 그 부분을 장려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찌 사용할 것인가를 고심하며 기도합니다.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2. 자기에게만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렇게 노래 잘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노래는 못해도 그림 잘 그리는 이가 있고 공부머리는 아닌데 공을 잘 차 부자되고 예쁜 색씨 얻는 이도 있고 별 사람이 다 모여서 세상을 이뤄갑니다. 다양성은 너와 네가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입니다. 이 다른 것이 모여서 하나의 큰 사회를 이루고 합하여 세상을 이룹니다.
바울사도는 이 은사론에 대하여 고전12장 전체를 통해 자세히 언급합니다. (29~30절)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만일 꼭같은 얼굴에 꼭같이 착하고 어진 마음을 가진 인간들이 사는 동네가 있다면 거긴 사람 사는 데가 아니라 로보트마을입니다. 사람사는 곳은 언제나 다양한 성품과 특징들이 어루어져 문제를 일으키고 문제를 다뤄가게 됩니다. 은사계발이 멀리 있지 않습니다. 몇 번 다루면 금방 익숙해지는 것이 있다면 그게 은사입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자기에겐 금방 익숙해져서 자랑거리가 되는데 남에게는 그렇지 않아 끝내 서투른 게 있다고 합니다. 타고난 천부적인 은사입니다. 복습입니다. 은혜는 기뻐하라고 주신 거고 은사는 교회와 이웃을 위해 사용하라고 주신 겁니다. 오늘은 은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대부분 은사를 보면 타고나면서 잘 하는 겁니다. 노력을 해서 된 것도 있지만 보통 은사에 노력이 곁들여 더욱 빛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은사는 사실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같은 노력에 두배로 잘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그런 가문에서 태어나게 하시고 그걸 말씀으로 알게 되는 믿음주신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칭찬 앞에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이는 예수그리스도를 태운 어린 나귀의 기쁨입니다. 대통령 곁에 바짝 붙어 경호하는 경호원의 멋진 폼이고 자랑이며 기쁨입니다. 이를 확실하게 분별하면 탁월한 일에 더욱 겸손해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특별히 주님 앞에 칭찬을 얻습니다.
본문 4절을 함께 읽습니다.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3. 살펴보아 장점이 있거든 그 것으로 자기의 짐을 지라고 합니다.
말씀했듯이 자기의 자랑거리는 사실상의 자기 짐입니다. 인생은 모두 짐지고 수고하며 지친 나그네들입니다. 본문에 의하면 그 짐이 바로 자신의 자랑거리요, 또 자랑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자기 짐이 아닌 남의 짐을 지고 헛고생과 헛수고를 붙잡고 씨름하다가 결국 팽개치는 이들도 있습니다. 노래도 못하는데 아버지가 장군이라 강제로 라디오에 계속 돌려주니 금방 가수왕까지 오르는 걸 봤습니다. 결국 그는 가수의 자리에서 사라지고 세간에선 “대한민국에 ***보다 노래 못하는 인간 있냐.” 악평이 돌았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주신 건지 욕심으로 내가 붙잡은 건지를 분별해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택한 것 내가 책임지고 주님이 주신 건 주님이 인도하셔서 주님의 계획을 이뤄 가십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거저 받은 것, 거기에 자신의 피나는 노력을 더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그것을 주신 하나님 앞에 최선이고 성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사를 주신 하나님을 더욱 높이 올려드릴 때 그 은사는 뭇사람들에게 칭송받고 더 계발돼 많은 이들을 돕는 귀한 일이 될 줄 압니다. 이제 자랑거리가 왜 짐인지 어렴풋 보입니다. 자랑할 만한 은사는 부단히 노력하는 십자가여야 하며 그것이 행복한 짐이 되게 해야 합니다. 자랑할 만한 것을 방치하고 노력도 없이 칭찬받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면 그 은사를 주신 하나님이 칭찬하실 리 없습니다. 그 은사는 금방 소멸되거나 엉뚱한 곳에 쓰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은사는 분명 거저받은 귀한 선물이고 또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행불행이 결코 은사자체에 있진 않습니다. 은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갈라집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와 공익을 위해서 쓰겠다는 결단이 있다면 그는 그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영광아래 살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8~30)
서로 모양과 내용은 달라도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몇가지의 자랑거리를 주셨습니다. 비교해 열등감을 갖거나 반대로 우월감에 취하는 어리석음 대신 그 자랑거리가 수고해야 할 짐인 줄 알아 그 짐을 지고 주를 따라 갈 때에 지치고 낙심되면 오직 그 자랑거리를 주신 주님만 바라보는, 신앙의 승리가 삶의 승리되시길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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