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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4.07.06.주일설교(행17:29~31.회개로 열리는 믿음의 증거)

by 설렘심목 2014. 7. 6.

2014.07.06.주일설교(행17:29~31.회개로 열리는 믿음의 증거)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 인생들은 모두 하나같이 하나님을 모른 채 태어납니다. 출생자체가 타락한 에덴의 상태를 그대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태어남이 그렇게 천지를 분변하지 못한 채였습니다. 무엇이 하늘인지 무엇이 땅인지 뭐가 영인지 뭐가 육인지를 알 수 없는 상태로 태어난 인간들은 하나님이 열어주시기 전에는 끝내 하나님을 알 수 없고 믿을 수 없고 그래서 육체를 따라 살다가 육체를 따라 불신의 지옥을 향해 열심히 갑니다. 그럼에도 인간에게 넣어주신 본성 안에는 자신의 뿌리를 찾는 마음이 있어서 인생은 부단히 뭔가를 찾아 믿고 의지하려 합니다. 바울이 아레아바고에서 한 말입니다. “아덴시민여러분. 여러분은 범사에 종교심이 참 많습디다. 내가 곳곳에서 여기 섬기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적힌 단도 봤는데 내가 여러분이 모르고 섬기는 그 부분을 이제 내가 알려드리리다. 우주와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선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으시고” 본문 29절처럼 금이나 은이나 돌에 모양과 형상을 새겨넣고 거기에 절하고 정성을 드리는 영으로 눈먼 이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에 정성을 드리면 절대자, 천신지신이 그 안에 온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믿음은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절대 금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이후 우리에겐 너무도 명확한 증거를 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어리석은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것이 본문의 뜻입니다.

 

1. 타락한 인생은 끝내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갈4:8절입니다. “너희가 그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하나님을 알고 믿고 경배한다는 것은 영혼이 깨어 살아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죽어 감각이 없는 영은 하나님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마귀의 도구가 종종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적하고도 그게 죄인지 알지 못합니다. 본래 그렇게 죄의 종이던 우리였습니다. 함정에 빠진 자가 스스로 탈출할 수 있다면 거긴 함정이 아닙니다. 함정에 빠지면 밖에서 누군가 줄을 던져주기 전엔 구출되지 못합니다. 인생은 출생부터 죽음까지 사실 함정입니다. 태어나보니 남자이고 태어나보니 김가인 것처럼 우리는 태어나보니 죄의 함정 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함정에서 태어나 함정에서 살다가 거기서 죽으면 그곳이 함정인줄 모릅니다. 밖으로 구출되어 밝은 천지를 경험하면 비로소 그 동안 어두운 함정에서 비참하게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즉 죄의 나락에서 태어난 인생은 자신이 죄 가운데서 태어나 거기서 살고 있다는 것 자체를 깨닫지 못하니 인정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소망인 영생과 구원이 결코 우리로부터 시작된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죄의 함정이 함정인지도 모르고 살던 우리에게 빛으로 찾아주신 그리스도, 복음이신 예수님을 찬미합니다. 30절을 함께 읽습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2. 하나님의 말씀대로 회개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해 복음을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구원의 잣대에 있어서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라는 대전제가 없었습니다. 구약의 시대에 죄로부터의 구원은 피묻은 제물로 드리는 제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를 열게 된 복음은 십자가의 보혈이 그 모든 제물을 파하고 단번에 드린 어린 양 예수의 죽으심으로 흐르는 피 대신 믿음으로 가슴에 흐르는 생수의 강이 되신 예수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길이 되셨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죄로 죽어야 할 자가 죽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완벽하게 해결된 죄사함의 문제. 구원과 영생의 문제는 그러나 본문이 분명히 밝히는 바, 회개라는 눈물의 강을 지나라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이니 재론할 게 없습니다. 우리는 순간마다 회개함으로 믿음을 굳건히 다져가는 부족한 육체들입니다. 육체마다 연약과 부족이 있어 죄를 다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육체에 하나님은 붙들만한 단 하나, 구원의 이름 예수를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그 이름으로 회개할 때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우리와 화목을 이루시고 또 화목의 직분을 주십니다.

아시다시피 이스라엘이 종종 멸망의 쓴잔으로 아우성친 것은 부패로 인한 게 아니라 그것을 회개하지 않고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즉, 죄로 망하는 게 아니라 회개 안 해 망한다.

 

이 말씀 받은 우리는 저 어리석은 자들처럼 회개하기를 주저하고 머뭇거리다가 고통으로 깨달아 넘어져서 엎드리지 말고 돌이키되 즉시 돌이켜 하나님과의 화목에 신속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회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아파하는 마음, 통회하는 마음입니다. 다음엔 훤히 보신 주님 앞에 남김없이 고하는 것입니다. 회개의 정직성은 중요합니다.

 

무엇을 회개해야 하나? 우상숭배입니다. 주님보다 앞서 있는 것 모두 우상입니다. 예민하지 않으면 깨닫기 어려운 세미한 것에도 소스라쳐 놀라는 순결한 저와 여러분이길 원합니다. 다음엔 게으름입니다. 한없이 편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우리를 게으르게 합니다. 끝으로는 사랑의 부족입니다. 가장 심각하고 중차대한 회개거리입니다.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것은 그만큼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은 주님과 가깝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 받는 중에 마음과 사랑이 자랄지어다. 아멘.

 

신앙인격의 격이 자라나면 상대방 위에서 굽어살펴 봅니다. 신앙인격이 어리면 상대방 아래에서 우러러 봅니다. 높이가 같으면 경쟁자가 됩니다. 여러분은 다툼이 날 때 어느 높이에서 보고 생각하고 말합니까? 같거나 낮으면 애기처럼 보채고 투정합니다. 요구사항이 많습니다. 모든 기준이 자신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자라 깊어지면 위에서 보고 불쌍히 여깁니다. 안타까이 여깁니다. 자신의 미숙한 과거를 상대로부터 보면서 어깨를 쓸어안고 다독입니다. 성숙한 자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을 손으로 만든 어떤 우상과 같이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창조주시며 우리들의 아버지요, 생명의 구원주십니다. 하나님을 우상과 같이 여길 우리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사랑이 없고 회개가 없으면 그게 바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며 깎아 만든 우상처럼 여기는 것이 멸시입니다. 이런 사람 우리 중엔 없지만 적어도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본문31절을 읽습니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이 예수를 증거해야 합니다.

 

3. 핑계할 수 없는 분명한 증거는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1) 정하신 사람 예수십니다.

 

행4:12절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오직예수입니다. 이 복음 외 다른 걸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1:8~9에서 바울이 전한 말입니다.

 

2) 예수그리스도는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실 분입니다.

 

계1장에서 두려워하는 늙은 요한에게 주님은 오른 손을 얹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나니” 전에도 지금도 영원히 주님 앞에 드러나지 않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다 보셨고 보십니다. 그 분은 보신대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릴 위해 대신 흘리신 그 분의 피는 우리가 밟고 갈 생명의 레드카펫입니다.

 

3) 예수그리스도 우리 주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더 이상의 무슨 증거가 필요할까? 최고의 증거입니다. 거듭 선포합니다.

예수 우리 주 만복의 시작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더 이상의 복된 소식 복음은 없습니다.

그분을 증거하신 하나님의 말씀, 성경. 더 이상의 예언과 약속은 없습니다.

우릴 위해 죽으시고 다시사신 그리스도, 구원의 증거, 우리 믿음의 증거, 더 이상의 기적은 이제 필요 없습니다. 어떤 이론으로도 철학으로도 지식으로도 피할 수 없는 이 분명한 믿음의 증거는 그러나 애석하게도 열린 자에게만 들리는 신비한 생명의 소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습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 분명한 증거를 끊임없이 죽어가는 이웃에게 전해야 합니다. 증거할 만한 모든 것과 믿음을 주셨는데 우리는 게을러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용서하시기를 즐겨하시는 주님 앞에서 죄로 망하지 않습니다. 회개하는 심령으로 증거하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돌이켜 주의 품에 안기는 자를 주님은 크게 기뻐하십니다. 깨어 기도함으로 주님과 깊은 교제 속에 많은 것 깨달아 주님의 기뻐하심 가운데 깊이 들어가는 모두이길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