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11. 주일낮예배<창29:21-30. 아침에 보니 레아였더라.>
야곱은 형에게 장자권을 팟죽 한그릇에 훔치다시피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비겁한 자입니다. 속이는 사람 야곱이 이번에는 인생에서 매우 중차대한 인륜지대사라고 하는 결혼문제에 있어서 속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선 야곱의 인생을 고달프게 하는 라반의 속임수가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은 속이는 자가 속는 장면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정의 달에 무엇을 교훈하시는 지 함께 듣기로 합니다.
25절을 함께 읽습니다.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 됨이니이까?”
1. 아침에 보니 레아였더라.
그렇게도 그리던 아리따운 라헬인줄 알고 밤새 행복했는데 아침에 보니 기절할만한 일이 눈앞에 벌어진 겁니다. 이런 경우 차라리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 했던 야곱입니다. 요즘처럼 밝은 조명이 없었고 당시 보통 신랑들은 독한 술에 취하게 되는데 신부는 어둑한 신방에서 너울을 쓴 채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감쪽같이 속을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또 신부를 바꿔 넣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참으로 기상천외한 라반의 술수였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면 속이는 자는 야곱과 라반뿐이 아닙니다. 처음 만날 때 오늘처럼 이럴 줄 알았다면, 아니 요즘 보는 이런 인간인 줄 알았다면 아마도 결혼할 사람 이 세상 하나도 없을 겁니다. 또 오늘 이런 직장인 줄 알았다면 굳이 이거 배우러 따라다니고 이 자격증 따려고 노력할 사람 하나도 없을 겁니다.
“아침에 보니 레아였더라.” 사랑하는 여러분. 어두운 죄악 길을 아무 가책 없이 제멋대로 살아가다가 진리의 빛으로 심령의 아침을 맞고 보니 형편없는 자신의 영적인 몰골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 구원의 현장이 떠오릅니다.
등하나 없는 어두운 세상의 죄악된 길을 밤새도록 쾌락과 정욕 속에서 미래없이 지내다가 구원의 아침을 맞아 밝은 진리의 등불 아래 자신을 발견한 인생들을 야곱을 통해 보는 것입니다.
“아침에 보니 레아였더라.”참 황당한 일은 밤새 술에 취해 자다 새벽 일어나보니 엉뚱한 집에 들어가 남의 아내 곁에 알몸이 되어 누운 자신을 보는 기분, 밤사이에 원하지도 않은 레아의 남편이 된 겁니다.
한편 레아의 입장은 그야말로 눈물겹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혹해하며 실망하는 야곱의 얼굴에서 느껴야하는 열등감과 낙오감은 한없이 서글픈 것입니다. 그야말로 서러운 레아입니다. 세상에 못나고 싶은 사람 없고 예쁘고 싶지 않은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아침에 보니 레아였던 야곱의 실망처럼 태어나고 보니 이렇게 생긴 사람인데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야곱과 라헬의 밤은 어차피 지났고 모든 게 밝혀진 아침은 오고 말았습니다. 잉태의 밤이 지나가 우린 이렇게 태어난 겁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과거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미래는 얼마든지 새로운 계획으로 새 마음 새 결단과 다짐과 노력으로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날씨는 바꿀 수 없지만 우산을 준비할 순 있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주어진 길에서 우리가 할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간에게는 야곱의 신혼초야처럼 사람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 시간 잠시 우리가운데 있는 야곱의 아침같은 일들을 짚어봅니다.
1) 저질러진 실수,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김가 이가 남자 여자, 자신의 성을 바꿀 수 없습니다.
2) 진리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냥 진리는 태고 전부터 거기 진리로 서 있습니다. 역사 이래 많은 철학과 술수가 인생들 앞에 다가왔다간 다 사라졌습니다. 복음이요, 진리이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운데 오직예수사상이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3) 진리 안에서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지난 날 아픈 일들을 들어서 오히려 귀한 일에 사용하시는 분은 우리주님 한분 외엔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증인들이 저와 여러분이라면 아멘하시기 축원합니다.
야곱은 라헬인 줄 알고 레아를 위해서 7년을 속은 후에, 라헬을 위해서 다시 7년을 라반의 집에 봉사합니다. 오늘 주인공은 외삼촌 라반에게 속는 야곱입니다. 그러나 우린 그 야곱에 가려서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레아의 서러움을 살펴보고 함께 나누기를 바랍니다. 야곱의 좌절이나 레아의 슬픔, 우리 인생들 가운데 늘 일어나는 흔한 일들입니다. 야곱의 14년 봉사는 두 아내를 얻는 값이라기보다는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형을 기만한 대가로 보는 것이 오히려 적절합니다. 이삭을 속이지만 않았어도 사랑하는 엄마를 떠나 먼 곳에 와서 외삼촌에게 속아 14년씩 머슴살이할 이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연약과 부족을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신실한 약속을 지켜가십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너무나 가난했고 자녀가 없던 아브라함, 창12:2절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야곱 뿐 아니라 오늘 영적인 이스라엘들 우리 안에서도 신실한 하나님에 의해 조금도 어긋남없이 지켜져 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20절을 함께 읽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지난 7년을 라헬 하나 바라보면서 기대감과 설렘으로 힘든 줄 모르고 일을 했는데 속았습니다. 엉뚱한 언니를 품에 안고 밤새 기뻤지만 아침 실망합니다. 야곱은 다시 어여쁜 라헬을 얻기 위해 또 7년을 견디어야 합니다. 이제 7년은 속을 일 없이 정말 라헬을 얻는 수고이니 이 역시 며칠처럼 여겼을 겁니다. 한마디로 7년은 속으면서 설레고 7년은 제대로 설레고 그렇게 14년 설레면서 사실은 속았으나 싫지 않은 세월을 보낸 야곱입니다.
2. 설레는 소망은 역경을 이기게 합니다.
만일 야곱에게 라헬에 대한 그리움과 설렘이 없었다면 14년은 거의 포로수용소의 지루하고 혹독한 시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며칠처럼 여기던 7년에 이어 다시 7년조차 무리없이 잘 지냅니다. 세상이란 파도가 험해도 영생이란 구원의 소망이 있는 한 우리는 믿음 붙잡고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소망과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 환경 속에서도 무엇을 생각하며 바라보는가의 문제가 한 인생을 이끌어가게 됩니다. 환경을 바꾸려 할 게 아니라 우리 마음자세를 믿음에 묶어 그리스도의 계획 가운데 데려가기 원합니다. 그리고 라헬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천국을 설레며 소망한다면 우리들의 삶과 얼굴표정은 끝내 다른 모습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배자 여러분. 우리들의 허약과 비굴함과 옹졸함과 온갖 무능까지도 주님의 구원프로젝트 안에 이미 들어 있다는 사실 앞에 기쁨으로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있는 모습 그대로 구하시기로 작정하신 좋으신 우리주님을 찬송합니다. 머잖아 주님의 나라에 도착할 우리네 인생, 거기 놀라운 기쁨과 평화와 풍성은 어렴풋한 게 아니라 확실한 사실, Fact입니다. 그리고 믿음만 분명하면 우리가 설레면서 이 땅을 지나야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천국을 소망함으로 설레는 자와 소망없이 여기가 전부인양 가는 인생길,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만을 위해 짧은 평생 기탄없이 한몸 드릴 때 확실한 믿음으로 천국을 설레며 소망하여 온전한 헌신을 결단하는 가정과 개인과 교회되시기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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