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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4.04.20. 부활절예배<고전15:50-58. 사망을 이긴 부활>

by 설렘심목 2014. 4. 26.

2014.04.20. 부활절예배<고전15:50-58. 사망을 이긴 부활>

 

할렐루야. 부활예수님을 찬송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부활절 찬양예배를 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우리교회의 주인이시고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는 우리 주님은 부활주님이십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에서 일어나신 주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셔서 피로 값주고 산 우리들의 생명, 천하보다 소중한 생명들이 이제 생명의 근원이신 우리 예수님을 함께 찬송하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오늘 찬송과 말씀선포가운데 죽었던 영들이 살아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지친 영혼이 새 힘을 얻을 줄 믿습니다.

 

2차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용케도 살아남은 유대인작가 엘리비젤이 ‘흑야’라는 작품에 이런 광경이 나옵니다. 어느 날 나치들은 유대인포로들을 길들이기 위해 무고한 유대청년 세명을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서 목을 매답니다. 잠시 버둥거리다가 이내 잠잠해지는 광경앞에 군중들은 분노와 충격과 무력감과 절망에 잠겨 고요합니다. 그 때 누군가 소리쳤습니다. “하나님은 어디 있는가?” 분노의 절규였습니다. 한동안 죽음의 침묵이 흐르는데 누군가 외쳤습니다. “하나님은 저기 저렇게 매달려 죽어가고 있다.”

 

인생의 꽃이 피기도 전에 이유도 모른 채 참혹한 현장에서 고통과 불안 속에 죽어가는 아들딸들을 보면서 우린 머리를 흔듭니다. “하나님은 이 때 뭐하시나? 이런 황당한 일에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어제 이런 말로 여객선사건을 말했던 게 기억납니다.

말로 다 못할 참혹한 일, 인생의 해석할 수 없는 불행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비는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허우적여야 하는지?

 

주님의 자비는 육체 이후에도 계속된다는 사실이 전제되지 않는 한 삶은 부조리 그 자체일 수밖에 없는 미스테리, 그러나 믿음 안에서 모든 것은 다 해석되고도 남을 만한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이야기들 아닌가?

 

천국을 믿고 알기까지는 인생은 어쩔 수없는 불평등과 부조리와 모순덩어리. 그리고 비참한 이야기들, 예컨대 자식잃은 부모의 암담한 슬픔은 죽음보다 힘들지만 이 역시 육체가 있어서 겪는 아픔들, 육체는 잠시지만 영혼은 영원한 하나님의 집을 향하는 존재들이란 사실은 어떤 정황도 스치는 사건들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슬픔으로 드러나는 모든 불행은 그러므로 육체에 속한 사건들이고 그 육체의 비극은 영혼이 타락한 후에 시작된 태생적 인류의 문제들, 따라서 인생은 영혼을 구원하시고, 육체를 버린 후 시작되는 영생의 예수그리스도 안에서만 비로소 소망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때 육체의 질고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지난주 말씀 중, 오직 믿음 하나 붙잡고 들어가는 죽음의 요단강 건너 저편에 있는 영원한 주님의 나라에서 이곳을 보기 전까지 이 땅은 변함없는 슬픔과 모순의 전쟁터라는 사실입니다. 누구나 한번은 건너야 할 요단강, 그리고 시작되는 약속의 땅 가나안 복지의 영원한 삶은 믿는 자에게만 펼쳐지는 파라다이스입니다. 이 땅의 부조리는 거기서 바라봐야만 비로소 바른 해석이 열리는 것 즉 불행과 죽음을 이기는 것은 믿음으로 열린 천국에서 확실하게 해결되는 줄 믿기 바랍니다.

 

먼저 찬송한곡 올려드리기 원합니다. 찬미예수600번곡집 중 74번곡 ‘주 찬양합니다.’

<♬주 찬양합니다. 내마음을 다해. 주가 하신 놀라운 일들을 세상에 모두 말하리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피를 주고 사망권세에서 풀림받게 하셔서 이제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에 합쳐진 자들입니다. 이 소식보다 더 큰 기쁜소식은 없습니다. 이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이는 참으로 주님이 하신 놀라운 일입니다. 이 놀라운 복음을 우리만 알고 우리만 받아서는 아니 됩니다. 이웃에게, 세상에 나아가 모두 말해야 합니다. 이 구원의 복음은 나눌 때 더욱 풍성해 집니다. 악한 세상이 차지한 땅을 한평이라도 빼앗아 주님께 되돌려드리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50절을 함께 봉독합니다.

오늘 본문 50절에선 혈과 육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 썩은 것으론 썩지 않을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이땅에 사는 동안 육과 영은 서로 늘 갈등하지만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영과 육이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매우 효과적인 사명감당이 가능합니다. 이 조화란 영이 육을 지배하고 주도할 때 비로소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냅니다. 반대로 육이 강해서 영의 행동반경을 위축시키고 방해하면 육신에 속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는 언제나 피곤하며 짜증나며 한탄하며 살게 됩니다. 이러한 육과 혈기의 삶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본문은 증거합니다. 썩는 것으로 썩지 않을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육체와 혈기는 반드시 썩어 없어질 것이며 그것으로는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을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내가 나를 이기는 사람은 매우 강한 사람입니다.

 

능력은 오직 죽음마저 이기신 주님께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혈과 육을 이기기 위해 부단히 주님을 모셔 들여야만 합니다. 찬양한곡 부릅니다.

찬미예수 600번 중 56번입니다. <♬ 내 안에 사는 이 예수그리스도니 나의 죽음도 유익함이라. 나의 왕 내노래 내생명 또 내기쁨. 나의 힘 나의 검 내평화 나의 주..>

 

여러분 안에 누가 살고 있습니까? 아직도 여러분이 여러분을 주장하고 자신 뜻대로 행하며 결정합니까? 아직도 그렇게 고달픈 삶은 고집하고만 있는 삶이 이 예배로 끝날지어다.

 

난 여러분 안에 다시 사신 부활예수그리스도께서 사시길 축복 기원합니다. 할렐루야.

사시되 이왕이면 흔쾌히 영접한 여러분의 믿음 때문에 그분의 간섭이 구석구석 안 미치는 곳이 없길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 어딜 봐도 예수님의 흔적이 선명하게 묻어나기 바랍니다. 주님은 치유의 주님이시며 회복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이 함께 하신다면 분명 그분은 당신의 동행을 스스로 증거하실 것입니다. 51절, 52절을 봅니다.

마지막나팔에 구원받은 우리는 모두 순식간에 썩지 않을 것으로 변화합니다.

53절, 54절을 봅니다.

썩을 것이 썩지 않게 되며 죽을 것이 죽지 않게 되는 이 일은 주님의 부활을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 나팔소리와 함께 변화받은 우리를 주께서 영접하여 하늘나라에서 찬송과 기쁨의 삶을 영원히 그분과 함께 살게 됩니다.

우리가 잠시 육신의 이 땅에서 그분께 얼마나 순종된 삶으로 영광을 돌렸는가를 아시니 주님도 그날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실 것입니다.

 

찬송하나 불러올리기 원합니다. 찬송가 180장입니다.

<♬ 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진동할 때에 예수영광중에 구름타시고>

 

정녕 하늘의 나팔소리가 주의 명령따라 크게 울릴 때 나와 여러분의 이름이 크게 호명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자자손손 대대로 그 이름이 불리어지기 원합니다.

 

55절에는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묻고는 다시 56절에서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며 그 율법을 예수님으로 인하여 이겼노라고 57절에서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망을 이기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메시아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우리들의 왕이 되신 겁니다. 우리들의 아빠, 아버지가 되신 것입니다.

 

사망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유도하며 그 죄의 권능은 거저주신 구원 앞에 율법으로 등장하여 뭔가 사람으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현혹합니다. 너같은 죄인이 어찌 천국에 가겠냐고 조롱합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거저받은 선물입니다. 이 선물조차 율법의 두려움으로 받지 못하는 많은 불행한 사람들을 향하여 이제 우리는 담대하고 명쾌한 진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지막 58절입니다. 이러한 만고불변의 구원진리와 엄연한 역사적 사실 앞에 어떤 일이 있어도 여러분은 곁단코 흔들리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을 종이 간절히 당부하는 바입니다.

그리하여 더욱 주의 일에 힘을 다해 기쁨의 믿음을 성취하기 축복합니다. 끝으로 성경말씀은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다고 격려합니다.

 

누가 보아주는 이 한사람도 없어도 외롭지 않아야 하는 것이 교회사역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서럽거나 억울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교회봉사이고 성도의 활동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셨고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한결같이 주님과 가까이 하고 싶고 천국인의 증거자로 살기 원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방해하는 것을 보고 종종 좌절합니다.

 

1. 혈과 육으로는 하나님나라의 임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나를 부인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사모하고 그 아래 복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육과 혈을 죽이는 싸움에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를 체험하시기 축원합니다.

 

2. 마지막 나팔소리에 우리 모두 홀연히 일어납니다. 할렐루야.

 

이 마지막날의 화려한 변신을 생각하면 세상 어떤 어려움도 모두 이길 수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3. 사망을 이기신 주님 안에서 더욱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기 바랍니다.

 

승리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다만 굳게 믿고 의뢰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능력가운데 믿음에 힘써서 끝까지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되시기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으로 찬송 한곡 더 부르며 설교를 마칩니다.

 

찬미예수 600곡집 중에서 212번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오른손을 들고 후렴으로 시작합니다. <♬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근심 전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