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13. 주일예배설교<히5:1-10. 친히 제물이 되신 대제사장>
오늘부터 한주간 교회들은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고난주간으로 지내게 됩니다. 오늘 말씀으로 주님의 고난이 나그네길 우리들의 버거운 삶에 무슨 의미를 갖는지 살펴봅니다.
-1절입니다.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임으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사람 중에 뽑힌 대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데 예물과 희생제물 드리는 일을 맡습니다.
-2절입니다.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그런데 그 역시 죄앞에 늘 연약한 인간이라서 미련하고 무지한 사람들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3절입니다. “그러므로 백성을 위한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래서 백성들처럼 대제사장도 자신의 죄를 위해 희생제물을 드리게 됩니다.
-4절“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그런데 이 대제사장직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임명이 됩니다.
-5절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하셨고” 시편 2:7에서 하신 것처럼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고 하심으로 우리들의 주님되신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되신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뜻이었습니다.
-6절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하셨으니” 또 시편 110편 4절에서는 우리주님 예수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멜기세덱의 반열에 속하는 제사장이라고 증거합니다.
-7절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으로 계실 때 심하게 절규하는 신음으로 간구하였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들어주셨습니다. 다만 그 응답은 고난의 잔이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뤄지는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죽음을 능히 이기실 예수시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8~9절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순종함으로 모진 고통을 감수하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믿는 자에게 영원한 구원이 되시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시는 과정이었습니다.
-10절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율법시대의 대제사장인 아론의 후계가 아닌 아비도 어미도 족보도 없이 영의 족보로 온 멜기세댁, 곧 의의 왕, 평강의 왕으로 오신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셨습니다.
1. 육신으로 오신 주님은 우리 육신의 연약과 아픔을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꼭 같은 몸을 입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약을 잘 아십니다. 아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분께 의뢰하고 온전히 맡겨드리면 위로와 평강이 하늘로부터 옵니다. 어떤 고통에서도 주님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이 이 땅에 잠시 육체로 오신 이유가 바로 우리들을 고통과 죽음에서 구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론 극심한 고난 속에서 주님이 안 뵌다고 불평하는 그 현장 그 신음가운데서도 주님은 함께 하고 계신 것을 믿기 축복합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고요할까? 불평대신 찬미를 올려드리기 바랍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대속십자가의 명령 앞에 죽음조차 이기신 분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당신 닮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도 고통 앞에 찬미예수해야 합니다. 알고 믿는 것은 깊은 믿음이 아닙니다. 찬미의 이유를 확인하고 찬미하는 게 아니라 찬미하라는 분을 신뢰하고 찬미부터 올리는 그가 성도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중의 찬미, 옥중에서 찬미한 바울과 실라처럼 찬미의 고백을 이루시는 이는 주님이십니다.
2. 그리스도의 존귀와 영광은 위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대제사장직을 비롯한 영적인 권위와 직임은 사람이 원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뤄지는 일입니다. 부족하면 고쳐서 사용하시고 불순종하거나 실수하면 대가를 치르게 하셔서라도 끝내 선하게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도답게 목회자는 목회자답게 집사는 집사답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인생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직분이 결코 사람의 생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이 있고 감당하면 영광이 되는 주님의 소원이 있어서 주신 직분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주님은 순종으로 따를 자와 따르는 자들의 구원과 본이 되셨습니다.
너무나도 험하고 고통스러웠지만 믿음의 본이요, 구원의 길이 되기 위해 순종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결코 사람이 감당할 수 힘든 일을 치르셨습니다. 사람이시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이신 주님이 친히 계획하시고 친히 내려오셔서 모든 불순종과 죄악과 고통과 죽음을 몸으로 감당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순종이라는 본을 고통으로 감내하심으로 우리의 길이 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순종하심<빌2:8>으로 하나님께 받은 보상은 무엇입니까?
1) 만물을 발아래 두셔서 복종케 하셨습니다.<히2:8>
우리가 고통을 불평대신 주님 앞에 감사찬미로 대응한다면 주님이 십자가 후에 만물을 발아래 두신 것처럼 세상과 육체가 우리를 어찌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의 환경이 오히려 우리에게 무릎꿇을 겁니다.
2) 죽음을 이기시고 마귀를 없애는 권세를 받으셨습니다.<히2:14>
자기 힘으로는 마귀와 싸워 이길 자가 없지만 주님의 권세가 우리가운데 가득하면 우리와 함께 계신 주의 이름 앞에 마귀가 무릎꿇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믿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 우편에 앉아 만물을 통치하는 권세를 받으셨습니다.<히1:8>
주님이 온 세상과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완전한 통치가 우리 눈에 안뵈는 것은 여기가 아직도 세상이고 주님나라가 아직 다 이르지 않았다는 것의 증거일 뿐 주님은 모든 것을 계획하셨고 이끌어 가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고통과 순종은 힘들지만 고통과 순종 후에 주시는 상급을 우리는 소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악된 세상을 끊임없이 고쳐가고 계십니다. 일꾼이 필요하신 주님은 사람을 찾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많아도 쓸만한 사람이 귀한 이 마지막 시대에 저와 여러분 순종을 체질화해서 부활은 십자가 뒤에 숨겨진 보화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얼굴은 하나님이 주셨지만 표정은 누가 만듭니까?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귀는 그분이 주셨지만 기울여 듣고 순종하는 건 우리의 몫입니다. 기울어진 내시의 목이 되십시다.
성도여러분. 고통은 주님이 주신 게 아니라 악한 세상에서 땅을 딛고 가는 한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 이 죄악의 길에서 진정한 천국의 길이신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요긴히 사용하시는 복된 인생, 복된 가정으로 승리의 길을 가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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