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09. 주일낮예배<민8:1-4. 성소의 등잔대와 등잔불.>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등잔대설치와 등잔대 앞을 비추도록 하라는 등잔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늘 일러드리지만 성경말씀은 시공을 넘어선 영적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본문말씀을 듣는 가운데 오늘 우리가 들어야 할 주님의 음성을 찾기로 합니다. 먼저 1~3절을 함께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에게 말하여 이르라. 등불을 곁때에는 일곱 등잔을 등잔대 앞으로 비추게 할지니라 하시매 아론이 그리하여 등불을 등잔대 앞으로 비추도록 켰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더라.”
1. 등잔대 앞을 비추는 일곱 등잔입니다.
1) 일곱 개의 등잔입니다.
일곱이란 수는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만족과 성취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일곱의 수를 우리는 계시록에서 일곱 촛대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시아의 일곱교회를 말하던 계1:20절의 일곱 촛대 사이를 주님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띤 채 요한에게 많은 물소리 같은 음성으로 장차 속히 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언급한 일곱 개의 등잔은 오늘 날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교회를 말하며 촛대나 등잔의 목적은 어두운 곳을 비추는 것입니다. 자신을 불태워 어두움을 비춰 깨어나게 하는 겁니다. 죽은 듯 잠자는 영혼을 빛으로 깨워 생명을 일으키는 일은 우리 주님이 먼저 십자가에서 명쾌하게 이루신 위대한 일입니다. 그렇게 모든 빛의 근원이신 주님께서 우리 인생과 만물의 등대가 되시고 빛이 되셨습니다.
일곱 개의 등잔은 하나님이 흡족해 하시는 교회들입니다. 이 땅에 있는 교회들은 다 이루지 못한 하나님의 명령을 붙들고 악한 영과 싸우는 전투교회요, 아직도 육을 완전히 벗지 못해 불완전한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교회를 매우 기뻐하십니다.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모릅니다. 우릴 향한 그분의 애정을 다소나마 우리가 알 수 있다면 우린 아마도 그 감격으로 모든 것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건 그렇게도 우릴 위해 일하시는 주를 멀리하고 스스로 뭔가 해내려는 어리석은 자아집착으로 인류의 크고 작은 불행의 역사는 모두 그렇게 늘 고달픈 길을 힘을 다해 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등잔과 전등은 시대가 다를 뿐 같은 사명은 같습니다. 우리는 등잔일 뿐, 빛은 아닙니다. 전등과 전구이긴 하지만 빛 자체는 아닙니다. 즉 우리는 빛을 전하는 도구라는 것입니다. 도구는 그 본질인 구동력이 없으면 처리조차 곤란한 애물단지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계가 있어도 그것을 움직일만한 능력과 힘이 없으면 쓸모없는 쓰레기라는 것입니다.
현대조선소는 세계 최대의 규모와 선박제조능력을 자랑하는 조선소입니다. 거기에 골리앗이라는 초대형 크레인이 있는데 그것은 본래 스웨덴 코컴스사(社)의 말뫼라는 이름의 초대형 크레인이었습니다. 코컴스사(社)의 도산으로 12년간 방치되었다가 간신히 현대조선에게 인수되었습니다. 재미난 건 이 큰 물건을 단돈 1달러에 인계받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관계자들은 앓던 이를 뽑듯 반가워했다고 합니다. 능력이 사라진 도구는 그 규모가 크면 클수록 거대한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도구들입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 주의 능력과 은사의 공급이 날마다 그치지 않고 있습니까? 불꺼진 전등, 기름떨어진 등잔은 속히 기름을 넣고 끊어진 전선을 이어야 합니다.
현대조선의 골리앗 크레인은 단돈 1달러에 받았습니다. 그러나 울산항까지 운반하는데 2개월 걸려 2002년 9월 당시 3000만불, 즉 무려 360억 이상이나 들었습니다. 여러분.우리는 버려진 폐품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쓰시기로 작정하시고 막대한 수리비와 신분과 주소이전비용으로 자신의 생명인 피를 값으로 지불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주님 공급하신 온갖 복된 은총의 기름이 넘치는 일곱 개의 등잔이 되길 축복합니다. 등잔 안에 주님의 보혈이 가득차기 원합니다. 주의 새생명이 넘치는 주님의 몸된 성전, 그리하여 이 어둡고 부끄러운 세상을 환하게 비추시기 바랍니다.
2) 등잔대의 앞을 비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등잔의 빛은 등대의 앞 떡상을 향해 앞을 비추라고 합니다. 우리는 뒤로 돌아가거나 롯의 아내처럼 떠나온 허탄한 세상 부끄럽던 과거를 쳐다보지 않는 자들입니다. 앞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길 바랍니다. 언젠가 설교를 마치고 나오는데 제게 어떤 분이 하소연을 했습니다. 요즘은 살맛도 나지 않고 기도도 되지 않고 심술만 생기며 웬일인지 신나는 일이 하나도 없으니 어쩌면 좋겠냐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성도님. 등잔을 켜서 어디다 둡니까? 밝은 데에 둡니까? 그 분 대답, 아니요. 어두운 곳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래요. 어두운 곳에 쓰려고 성도님을 등잔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기름이 떨어졌군요. 기름을 부어달라고 하세요. 그 분은 순간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뭔가 가슴에 가득차는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 모두는 어두운 곳에 높이 매달아두는 등잔불입니다.
등잔대 앞 떡상을 향하는 진리의 등잔은 진리로 오신 예수님을 향합니다. 우리의 모든 목적은 예수시요, 과정도 예수그리스도의 진리인줄 믿습니다. 그렇게 능력있는 등잔불로 외로운 섬에 등대가 되어 길 잃은 작은 배들을 안전한 포구로 불러들이는 생명의 신호등이 돼야 합니다. 이는 얼마나 보람된 사명입니까? 죽은 자를 살려내고 아픈 자를 치유하며 슬픈 자를 위로하는 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 성도의 사명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음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등잔대의 제작법은 이러하니 곧 금을 쳐서 만든 것인데 밑판에서 그 꽃까지 쳐서 만든 것이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보이신 식양을 따라 이 등잔대를 만들었더라.”
2. 금을 쳐서 모세에게 보이신 대로 만든 등잔대입니다.
1) 금을 쳤습니다.
금은 열이나 볕에도 변하지 않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빛과 몸에 이로운 성분으로 인류에게 부의 상징으로 또는 사랑의 언약이라는 의미로 매우 사랑받는 광석입니다. 변하지 않는 불변의 특성은 불신과 죄악의 세상에서 흠모할만한 보화로 금은 인기가 좋습니다. 금은 불에 연단할수록 그 색이 더욱 고와집니다. 미세한 불순물이 불에 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는 욥기의 말씀은 그래서 믿음의 연단을 금으로 비유합니다. “내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우리가 죄악된 세상을 비추는 등잔으로 부름을 받았다면 그 부름은 금과 같은 불변의 계획과 약속 안에서 이뤄진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금같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변하지 않는 약속이십니다. 영원히 존재하시는 영생이십니다.
그리고 최고의 선이시며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이 주님이 우리교회의 주인이십니다. 여러분 가정에 호주되십니다. 할렐루야. 이번엔 제가 4절 앞부분을 읽겠습니다.
“이 등잔대의 제작법은 이러하니 곧 금을 쳐서 만든 것인데 밑판에서 그 꽃까지 쳐서 만든 것이라.” 만들되 쳐서 만들었습니다. 친다는 것은 뭔가 수정을 위해 가격하는 것을 말합니다. 악한 의도로 치는 것, 즉 때리는 것은 부러뜨리고 터뜨려서 고통을 주고 상처를 입히지만 선한 의도로 치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그러지고 흉한 형태를 바로 잡아 아름답고 정상적인 기능을 찾게 하는 회복의 교정작업입니다. 무형의 금을 쳐서 원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등대를 만들고 그 아래 꽃의 형상을 만듭니다.
의미없는 덩어리 금이 변하여 금등잔대와 금등잔이 되고 금꽃과 금잎이 되어 새롭게 태어납니다. 이 새 창조에 두드리고 치는 작업이 피할 수 없는 필수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끝으로 4절 뒷부분을 제가 다시 읽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보이신 식양을 따라 이 등잔대를 만들었더라.”
2) 보이신 식양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세가 등대를 만들 때에 자신의 생각대로 디자인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 모양과 방식을 이미 선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대로 등잔대를 만들었습니다.
세상만물을 창조하실 때 이미 하나님께선 스스로의 소원대로 모든 만물의 모양과 특성과 목적을 정하시고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의도하신대로 만들어졌고 그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매우 흡족해 하셨습니다. 이제 택한 민족을 이끌어내신 후 제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시하시는데 그 모양과 방식도 모세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모세는 보여주신 그대로 만들도록 아론에게 지시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빚어지는 우리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만 가야 합니다. 그것이 정도이며 정답입니다. 가장 효율적이고 손실을 없애는 길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이 원하시고 보여주신 그 길이 무엇인지 속히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현대는 모세에게처럼 친히 말씀하시고 친히 보여주시는 신비현상은 드문 때입니다. 그만큼 인생들이 영리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도 주님은 말씀하시고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눈과 귀가 의심과 죄의 안개로 막혀 있어서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할 뿐입니다. 그 죄의 안개가 성령의 바람으로 깨끗하게 사라지면 주님의 음성과 환상은 좀더 뚜렷하게 우리 앞에 드러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여전히 우릴 등잔으로 불러주신 주님께서 기름을 들고 부어주시기 원하고 계십니다. 부르신 분이 공급하십니다. 주앞에 오직 순종으로 세워져 있어서 무슨 일을 맡기실지 모르는 오늘이라는 한날한날을 겸손한 믿음과 기도로 승리하시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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