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16. 주일설교(마27:17~24.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십자가의 사건하면 떠오르는 인물 중 빌라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신경에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번의 판단실수로 인류의 역사가 있는 한, 죄인이 된 빌라도의 문제는 무엇인지를 살피며 주시는 말씀 중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8절을 읽습니다.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
1. 양심의 증거를 무시했습니다.
요19:4절입니다.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당시 빌라도는 본문의 증거처럼 예수님께 죄가 없지만 유대인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고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요18:29/33/19:4/9절을 보면 단호하게 판결을 하지 못하고 계속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양심과 싸우며 안절부절하는 비겁한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양심은 하나님이 신앙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로서 일반은총에 속합니다.
성령이 일하실 때, 들리는 소리와 보이는 정황도 사용하시지만 양심을 많이 사용하십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계획을 세우고 욕심이 앞서면 전략과 성취욕구로 양심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고 의도적으로 거침없이 강제하면서 비양심적인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양심을 존귀하게 여기시기 축복합니다. 아주 작은 느낌일지라도 세미하게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거기 바른 길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소리는 때로 들릴 듯 말듯해도 양심을 무시하고 추진한 모든 일은 언제나 나쁜 결과를 불러옵니다. 처음에는 제법 좋아 보일 수도 있지만 양심을 저버린 모든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은 항상 이웃은 물론 자신을 망쳐 버립니다.
우리는 가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일은 양심상 차마...” 이럴 때 그 양심보다 더 좋은 길은 없다는 것과 혹시 유혹에 끌려 다른 선택을 하면 필경 댓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는 우리 모두이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물, 양심을 따라 주님 뜻을 세우는 복된 몸이어야 합니다. 19절입니다.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2. 아내의 충고를 무시했습니다.
성경에는 아내의 말을 들어서 망한 사람과 아내의 말을 안 들어서 망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내 말을 들어 망한 사람의 지구대표가 누굽니까? 아담입니다. 그러면 아내의 말을 안 들어 영원한 죄인의 대명사가 된 사람은 누굽니까? 예, 본문의 빌라도입니다.
빌라도의 아내 "클라우디아 프로큘라"는 역사책에 기록된 티베리우스황제의 셋째 아내인 클라우디아의 딸이며, 아우구스도(아우구스투수)의 손녀입니다. 아내 프로큘라는 황실 측근이라는 점에서도 빌라도는 그의 아내의 충고를 경청해야 할 입장입니다. 그러나 다분히 정치적인 빌라도는 그 충고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군중의 뜻을 따랐습니다. 빌라도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아내의 꿈이 아닙니다. 그의 아내가 꾼 꿈은 분명한 영몽입니다. 메시야로 오신 주님을 처형하는 현장에서 판결을 해야 할 남편으로 인해 아내는 상당한 부담을 가졌습니다. 본문에서처럼 빌라도의 아내는 예수님에게 전혀 잘못된 게 없는 걸 믿었고 그런 귀한 인물이 자칫 죄수로 몰려 죽는다면 그 죄책을 어찌 감당할까 하는 부담이 늘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터에 범상치 않은 꿈을 꾸고는 더 마음이 무거워 판결을 하러 출근하는 남편에게 단단히 이릅니다.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세요.” 어리석고 악한 군중의 범죄에 말려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의 머리는 역시 정치적 계산으로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습니다. 황제숭배로 인한 유대인들의 폭동에 과다한 세금징수로 인한 불만을 달래야하는 빌라도는 정황상 예수처형을 적극 말릴 수 없었습니다.
22절을 보면 빌라도는 책임있는 자로서 단호한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군중에게 끌려가기 시작합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23~24절을 함께 읽습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상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3. 여론에 끌려 진리를 무시했습니다.
그는 재판관으로서 직무를 무시하고 한사람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되는데도 재판권을 군중들에게 넘겨줍니다. 그리고 책임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손까지 씻었습니다. 손을 씻었다고 죄가 씻깁니까? 그는 비겁하고 무책임하게도 책임 없음을 선언하였습니다.
분명히 옳은데도 그릇된 판단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판결권을 넘겨주는 일은 사실상의 부조리며 회피요, 범죄입니다. 판결권을 받은 자가 확고한 소신으로 결정한 일은 자신에게 불리해도 판결봉을 두드려 확정한 뒤에 선포해서 기준을 만들어야 합니다. 혹시 힘든 일을 당할까 두려워 악한 다수와 적당히 타협해 처리한다면 그는 반드시 그 잘못된 선례에 의해 자신과 자신의 후손이 후회할 것입니다. 우린 오늘 빌라도를 성토하는 게 아닙니다.
빌라도의 면면을 성경에 드러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봐야 합니다.
결코 빌라도처럼 살지 않도록 말씀으로 찾아주셔서 우리의 양심을 깨우시고 오직 말씀을 따라 살기를 결단하도록 촉구하시며, 또 그렇게 사는 이들을 위로하는 주님을 찬송합니다.
사랑하는 예배자 여러분. 주변상황과 서로 부딪치는 생각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까? 건강하고 생산적인 생각은 양심을 거스르지 않습니다. 양심이 주는 느낌과 성령이 주시는 느낌은 언제나 충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분명 성경적 결정이라는 확신이 믿음가운데 평온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했다면 먼저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제나 진리를 따라 생각하고 진리를 따라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기도합니다. “최고의 선물 양심을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성령이 말씀하실 때 감동으로 일어나는 양심으로 만복을 여시는 주님 앞에 온 생애와 육체를 바칩니다. 작은 고통에 두려워 불의와 야합하지 않게 하시며 어리석고 악한 다수의 힘에 눌려 바른 길을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무엇보다 빌라도의 아내와 같은 총명한 자로 관계의 진을 두르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말씀 앞에 즉시 엎드리는 겸손의 복을 항상 열어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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