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16.주일예배<시2:7~12.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하나님은 모든 세상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신 뒤 기쁨이 넘치는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인격을 주시고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선택,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도 주셨습니다.
에덴동산에 있던 선악과는 단순히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은 아니었습니다. 동산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생명과와 함께 하나님이 두신 두 개의 중요한 나무였는데 하나는 먹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영생나무요, 하나는 먹으면 선악을 알게 되는 선악과였습니다. 선악과는 절대 먹지 말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고 먹게 되면 정녕 죽는다고 엄중히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꾀임에 넘어간 하와가 먹고 아담에게 권해 아담도 먹고 타락했습니다. 이후 인간은 타락한 죄의 근성을 지니고 태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히브리라는 한 민족을 택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인류에게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인류역사는 선민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구원이란 무엇인가를 보이는데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시편은 선민 이스라엘의 왕정 초기에 하나님마음에 합한 다윗의 언약 즉 삼하7장에 나오는 다윗가문에 선포된 하나님의 약속을 주제로 한 노래입니다. 메시야의 시라고 부르는 본문 2편을 당시의 역사정황에 맞춰 메시야 출현으로 즐겨 애송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이 세계 인류의 구원과 늘 맞물려 풀리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인류와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은 본보기일 뿐 그들의 역사는 열방 모든 나라들의 역사와 결코 무관치 않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 안에 우리들의 불순종이 들어 있어 그 결과를 경고하고 있고 이스라엘의 충성에 우리들을 향한 도전과 축복의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본문 2편의 중요한 테마는 제목이 들어 있는 12절의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는 것입니다. 그의 아들이란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하나님의 아들을 말합니다. 아들은 양자를 포함한 유산상속자를 말하는데 성경에서는 유업자라고 기록합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 유업자란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가고 그의 통치를 기뻐하며 그의 인도를 따라 땅 끝까지 주의 나라를 확산시켜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는 오늘 설교제목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말하지만 하나님의 성경말씀은 시대를 넘어선 예언적 능력으로 장차 오실 그리스도, 세상 끝날 오실 재림주 예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인류에게 창조주 하나님이 이 땅에 인간의 가장 큰 문제 곧 죄와 사망을 해결하러 직접 사람의 옷을 입고 오셨다는 소식보다 더 크고 기쁜 소식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출현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해서 복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존재자체가 복된 소식입니다. 복음으로 오신 주님은 우리의 새 생명이요, 소망이요, 기쁨입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본문 7절의 이 말씀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는 첫 시작입니다. 하나님이 낳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안에 오늘 우리가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말씀을 믿어드리는 순간, 말씀은 능력이 되어 우리 안에 신앙이 되고 신앙은 예수그리스도의 증인된 자격을 인정받는 삶을 살게 합니다.
롬8:15절을 함께 읽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아들의 영을 받은 믿음의 사람들에겐 신앙의 기준과 삶의 표준이 예수님과 그 입으로 나온 복음이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영혼은 복음이 기쁨인 것을 압니다. 복음이 아니었다면 음부에서 죄의 부스러기를 핥아먹는 비참한 세상의 삶이요, 지옥이 뭔지도 모르고 거길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가여운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분노의 칼 앞에 온 가족과 함께 참혹한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야곱은 하나님의 간섭으로 마음을 돌이킨 형 에서와 눈물로 만나게 됩니다. 그 순간, 동생 야곱에게 에서의 얼굴은 하나님의 얼굴이었습니다. 생명을 구하는 순간 무엇을 더 원하겠습니까?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죽음에서 생명을 구하는 순간 야곱은, 용서하는 형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본 것입니다. 복음은 생명이요, 생명을 살리는 소식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살아있는 한, 생명의 소식이신 예수그리스도를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8절을 함께 읽습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기쁨으로 그의 아들에게 입맞춤하는 것은 이방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놀라운 그리스도의 충만입니다. 그것은 골고다에서 공개된 하나님의 비밀로서 이방인의 구원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해결된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양질의 믿음을 소유한 성도들은 그리스도께 입맞춤으로 헌신한 뒤에 많은 불신자들을 구원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울타리를 삼는 기쁨을 허락받을 줄 믿습니다. 그의 아들에 입 맞추는 것 두 번째는,
2.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로 충만한 것입니다.
2-3절을 함께 읽습니다.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지 하는도다.”세상은 나라나 개인이나 모든 무리들이 어찌하든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고자 갖은 꾀를 다 부립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죄가 당연히 행하는 일들입니다. 하나님과 교회는 그래서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합니다. 세상이 죄악풍성일 때로서 하나님의 유업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은 예수그리스도로 충만해야 합니다. 예수의 충만은 성령의 충만이며 이는 영혼과 인격과 건강의 기본을 흔드는 악한 모든 요인들을 원인부터 근절하게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로 충만치 못하면 인생은 근본부터 하나님을 등진 삶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만의 유익과 명예와 쾌락과 기쁨을 구하려고 합니다. 보통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하면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높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와 화목하고 그의 영 성령에 입맞춤한 사람들은 결코 자신을 자신의 목표로 삼지 않게 됩니다. 자신의 목표가 자신일 경우 그 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복음을 듣고 이미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충만인 사람,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열정아래 살기를 기뻐합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예수를 기뻐함이 땅끝까지 이를 것이고 그 기뻐하는 자들에게 풍성한 나라와 소유로 만족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12절입니다.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복이 있도다.”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는 것 세 번째는,
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엡5:18절입니다.“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예수안에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의 영은 거룩한 영, 성령이십니다. 성령충만은 예수충만이며 이는 성령의 주장을 따라 경건과 거룩을 향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자신을 죄에 물들지 않도록 날마다 고뇌하며 죄로 향하려는 자신의 몸을 적절히 통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금방 읽은 성경은 성령충만과 술취하는 것을 정반대의 일로 규정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은 갈5:22절에서 밝히듯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인데 이같은 것을 금지할 어떤 법도 없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예수충만으로 살아간다는 것, 예수그리스도께 달려가 말씀에 입을 맞추는 삶은 그 어떤 법으로도 가로막지 못한다고 함으로 결국 그의 아들에게 입을 맞추는 것은 세상에서 최고의 자유를 얻는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으로 빚어지는 아홉가지 일들은 어디서 누구에게나 환영받을 만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술 취해 방탕한 것은 어디서 누구에게나 해로움을 주고 덕이 되지 못해 각종 악과 죄가 됩니다.
잠언에서는 술을 이렇게 말합니다. 술에 잠긴 자에게는 재앙과 근심과 까닭없는 상처와 붉은 눈과 구부러진 말과 분쟁과 원망과 가난과 거만함과 떠들어댐과 온갖 수치와 더러움과 파멸이 있다고 했습니다. 파타고라스는 만취를 일종의 발광이라고 정의했고 루즈벨트는 “가난한 사람들을 연구해보면 술만큼 큰 원인을 찾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우리주변에는 술과 같이 우리들의 영혼과 삶을 송두리째 혼미케 하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돈이면 다 될 것 같은 악한 사회구조가 관계조차 경제의 함수로 풀려는 안타까운 현실을 봅니다. 그러나 돈으로도 안되는 행복의 원천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평화와 풍성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은 모든 회복의 시작입니다. 본문 11절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경외함이라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은 떨며 찬양함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분명 즐거운 것이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기쁨을 날마다 맛보며 세상이길 힘을 말씀의 능력에서 구한 증표입니다.
1981년 흑인가운데 최고령자 찰리스미스가 1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에게 130년의 세월은 고통의 전시장과도 같았습니다. 노예로 태어나 애기 때부터 고통 속에서 살아 매맞고 모욕당하며, 굶주리고 병들어 죽을 고비를 스무 번도 넘게 경험했습니다. 130년 간 고생만 하다가 죽은 스미스씨는 임종하기 며칠 전 자신을 방문한 목사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흑인으로 태어난 것 감사합니다. 고통스런 노동생활도 감사하고 인간취급 못 받은 것도 감사합니다. 130년간 언제나 내 곁에 계셔주신 하나님, 늘 함께 계셔서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교회에서 말하는 복을 다시한번 살펴보면 흑인 챨리스미스가 말하는 복인 줄 믿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잘먹고 잘사는 게 아니라 험하고 서러운 날이어도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욥기22:21절에서는 복받기 위해서 하나님과 평안히 화목하기를 권고합니다. 본문 12절 끝에서는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의 아들에게 입을 맞추고 그를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충만으로 증거되어 만복의 근원이신 예수충만으로 나타납니다. 세속을 멀리하고 쾌락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면서 신앙을 훼방하는 모든 것들을 적대시하면서 애를 쓴다면 우리들의 삶은 놀라울 정도로 변화할 것입니다.
술취하는 것을 예로 들었을 때 중요한 것은 술취해서 그 결과로 인생이 파멸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술취한 것을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눈앞에 책망과 그 결과, 황폐해지는 삶입니다. 술로 인한 하나님과의 관계단절이 술을 마셔서 당하는 수치보다 훨씬 더 중차대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평생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에게 입을 맞추는 것이라면 그것은 험하고 힘겨운 세상에서 십자가 그늘에 피하고 하나님의 아들에게 올인하시기 바랍니다. 그에게 입맞추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그를 기뻐하면서 그의 법을 즐겨 지켜 행하면 말씀의 불기둥과 찬송과 기도의 구름기둥이 우리모두와 교회를 지켜줄 것이고 예수 안에서 기쁨과 능력과 평강의 길을 가게 하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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