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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4.02.09.주일낮예배(렘9:23~24. 허탄한 인생의 자랑거리)

by 설렘심목 2014. 2. 8.

2014.02.09.주일낮예배(렘9:23~24. 허탄한 인생의 자랑거리)

 

산다는 건 거저받은 선물이고 죽음은 삶 가운데 가장 복된 사건인 줄 믿습니다. 살아있는 게 은총인 것은 그 삶이 끝이 있고 죽을 수 있다는 것인데 그 죽음이 위대한 이유는 죽음 뒤에 창조주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제목은 “허탄한 인생의 자랑거리”입니다. 한 사람의 인격과 삶을 보려면 그가 평소 무엇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가를 보면 간단히 알게 됩니다. 살펴보면 자랑이지만 알고보면 사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것들입니다. 오늘 우리 한꺼풀 부끄럼의 옷을 벗고 입혀주시는 능력의 말씀으로 건강한 자존감의 옷을 입기 원합니다.

 

 

1.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살다보니 자녀가 생기지만 이 역시 자신의 의도와 능력이 아닙니다. 눈을 뜨고 보니 의도하지 않은 육체로 살고 있었고 사지백체 오장육부는 완벽하게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말 그대로 누군가 창조를 해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인간의 자존심은 창조주의 실체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신의 생명을 어찌할 수 없다는 무능입니다. 어디서부터 온 줄도 모르는 생명을 받아 간섭하지 않아도 이어지는 호흡과 맥박 속에서 창조의 하나님께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게 바로 신비입니다.

 

생명이 신비라면 그 생명을 주신 이는 더욱 신비입니다. 온통 신비 속에서 우리가 갑니다.

 

계시록4장에서 24장로들의 신앙고백입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인간이 피조물이란 엄숙한 사실 앞에 우리는 창조주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는 우리 자신을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분이신지와 우리 인간이 얼마나 작고 허물 가득한 존재인지를 아는 것 이것은 실로 우리의 영혼이 진정한 자유를 얻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롬9:21에 자신에게 좌절한 인간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인생의 출발이 전적으로 창조하신 하나님께 있으니 자신이 왜 이 모양으로 세상에 나왔는가를 따져 묻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신 삶이 어떤 모양이든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 피조물의 권한은 없는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으로 인해 육체의 열등감으로부터 참자유가 있을지어다. 인간이 피조물임이 분명할진대 인간의 의미는 하나님으로부터만 찾을 수 있는 것, 상식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2. 창조주를 빼고는 어떤 의미도 없는 인생입니다.

 

 

병사 한사람이 밤잠을 못자고 일어나 초소에서 적의 동태를 살피는 동안 후방에 있는 국민들은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병사 한명을 거기 세우기까지 수많은 조직적이고도 유기적 국가의 방어시스템이 활동해야 합니다. 국방부가 주관해서 장정들을 불러내 군인으로서의 적합여부를 판정하고 훈련시킨 뒤 각종 무기와 보급품을 지급해 적절한 곳에 배치합니다. 그렇게 국방력이 가동할 때 비로소 나라가 건재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국방부의 방어시스템이 없는 군사력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한명의 보초가 초소에서 적군의 동태를 살피는 건강한 국방의 기초는 이렇게 국민의 하나된 뜻이 모인 증거이고 기초적 방위활동입니다. 군인이 이렇게 태어나듯 성도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태어납니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을 주님은 자신의 생명과 맞바꿔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생명은 그 자체로서 감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 생명주시고 육체와 영혼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기초근본이신 동시에 목표가 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셨고 부족가운데서도 살게 하십니다. 살뿐 아니라 한시적인 육체위에 영원한 생명을 부어주셨고 천국의 소망을 예수그리스도로 확고하게 하셨습니다.

 

 

인생이 아침에 돋았다가 저녁에 시드는 풀과 같다고 시편(90:5~6)기자는 노래합니다. 반짝인다고 모두 보석이 아니듯 숨쉰다고 다 살아있는 게 아닙니다. 의미없는 생명은 죽은 것이고 그건 움직이는 아메바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생명의 의미는 그 생명을 부으시고 열어주신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성도라면 당연히 그리스도의 흔적이 삶에서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복음을 빼면 한낱 숨쉬는 육체일 뿐인 성도에게 복된 소식, 생명의 소식 예수그리스도는 일생일대 최고의 기쁨이 되어 늘 우리들을 찾아주십니다.

 

 

3. 존재의 원인, 창조주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본문 렘9:23~2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지혜와 용맹과 부요가 인간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이 말씀이 와 닿습니다. 인생을 자랑하기보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자랑해야 하는 이유 첫째는 생명없는 지혜와 용맹과 부요는 헛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단한 지혜자도 죽으면 썩어가는 흙 한줌입니다. 아무리 용감해도 죽으면 그만입니다. 엄청난 재산도 죽으면 그와 무관합니다. 그래서 생명이 그것들보다 소중하고 생명은 생명을 주신 하나님보다 소중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예배자여러분, 우리에게 과연 자랑할 것이 있습니까? 그걸 자랑하기 전에 먼저 그게 어디서 왔나를 알게 되면 금방 자랑의 주제가 달라집니다.

 

 

태어날 때부터 노래를 잘하는 이가 있고 태어나면서 그림을 잘 그리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별 재주 없어도 대단한 노력으로 승리하는 이가 있는데 모두들 칭찬하고 격려하며 부러워합니다. 칭찬과 격려는 창의력을 일으키고 자존감을 세워서 개인과 사회를 발전하게 합니다. 칭찬과 격려가 타인으로부터 오는 것이면 자랑은 스스로 입을 여는 칭찬인데 권위가 그렇듯이 이건 곤란합니다. 여기서 간단한 공식하나를 우린 보게 됩니다. 즉 무릇 좋은 것은 밖으로부터 온 것이고 부끄러운 것은 모두 나로부터 시작됐다는 깨달음은 보물의 원석과도 같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깨달음을 갈고 닦아 모양을 만들면 얼굴이 생겨 보석이 되는데 그건 그 진리의 원류가 하나님이란 사실을 알면서 완성됩니다. 다시한번 기억해봅니다. 문제는 땅에서 아지랑이처럼 끊임없이 올라오고 답은 항상 비처럼 하늘에서 내립니다. 인간은 문제제기요, 답은 하나님이십니다. 복음이신 그리스도십니다.

 

 

성도여러분,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 오직 하나님만 자랑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만천하에 자랑하십니다. 내 자랑을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이 하셔야하고 칭찬과 격려와 권위는 내 입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입과 뜻이 모아져야 제자리에 확고하게 섭니다. 내 스스로 세운 권세권위와 칭찬은 결국 허망하게 무너지고 그 무너진 수치의 돌에 자신이 깔려 신음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을 알게 된 것에도 하나님을 자랑하세요. 모든 일에 자랑거리를 주신 하나님을 자랑하세요. 그리고 이웃을 칭찬하세요. 격려와 위로의 도구가 되기를 기꺼이 하세요. 그리고 칭찬 앞에 바짝 엎드려 낮아지세요. 물은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겸손히 엎드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흘러 넘칠 줄 믿습니다.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