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17. 주일 낮예배(딤후4:1-8. 바울사도의 마지막 교훈과 증거)
사도바울은 주께서 육신을 입고 생존해 있을 때 유대교의 충성스런 청년 사울의 신분으로 신흥종교 그리스도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이어서 스데반이 돌에 맞아죽을 때에 동의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에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일대 혁명이 일어납니다. 온전히 그리스도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그리스도의 사도 성자가 됩니다. 본문은 그가 늙어 마지막 생을 그리스도께 바치기 직전에 사랑하는 제자에게 쓴 편지로서 디모데 뿐 아니라 모든 교회와 성도가 받아야 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하나님의 말씀 딤후4:1-8절은 전도인의 사명과 성도의 끝 날에 준비된 의의 면류관에 대한 증거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능선에서 이 노종의 충고와 고백 앞에 우리는 참으로 숙연해집니다. 바울사도의 뒷모습에서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의 뒷모습에서 영적거장의 당당한 모습은 온갖 풍요로움이 넘치는 이 시대, 저와 여러분에게 감동적인 도전을 던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진정한 불행은 무엇입니까? 빈곤과 외로움이 아니라 물질적 풍요에 찌든 안일함의 추구에 따른 이기심과 나약함과 비굴함입니다.
고전4:15절의 말씀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않아”그런 것입니다. 가르치는 자는 많으나 솔선수범하는 자, 곧 앞서서 몸으로 먼저 바로 행하는 자가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시대의 불행, 풍요속의 진정한 빈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은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께서 친히 불러주시고 세워주신 우리들의 사도입니다. 그는 성령의 감동으로 복음을 전달한 선각자였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서신을 통해 우리에게 간곡히 명령하시고 당부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본문 2절을 함께 읽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1.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영의 아들 디모데에게 복음전파의 사명을 일깨우며 자신의 명령이 단순한 교훈의 차원이 아니라 살아계신 그리스도 예수의 소관임을 증거합니다. 1절과 2절 앞을 함께 읽습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즉 그의 명령은 자신의 의지나 감정이나 지식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앞에서 발령하는 엄숙한 명령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복음전파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국을 두고 하는 명령입니다. 이는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사명일진대 이것이 결코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았으며 엄위하신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의 명령임을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떨리는 심정으로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생사화복을 쥐고 계신 하나님과 우리의 구원이 되신 예수님의 재림과 그의 나라를 두고 맹세하듯 엄하게 명령하는 이 말씀은 곧 반드시 지켜야 하는 두렵고 떨리는 명령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두렵고 떨립니까? 생사화복과 만유를 주재하사고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하면 좋고 안 해도 어쩔 수 없는 그런 명령이 아니라 생사화복을 걸고, 즉 생명을 담보하고 수행해야만 하는 명령입니다. 그래서 이 종이 떨리는 심정으로 전한다고 밝혔습니다.
다음, 복음전파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바울사도는 영에 속한 하늘의 사람이었습니다. 영에 속한 사람들은 사람을 보면 그 속을 훤히 읽게 됩니다. 인간내면의 수치와 더러운 죄가 보입니다. 일을 하려는 사람은 이유가 없습니다. 이유가 있어도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게으른 자, 일을 피하려는 자는 모든 것이 다 이유가 됩니다. 바울은 인간의 죄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 전하기에 힘을 쓰라고 했습니다. 이는 어떠한 환경이나 조건도 복음전파에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성령께서 밝히 증거하시고 명령하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 명령하시는 것을 믿고 믿으시면 아멘으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으시기 축복합니다.
아멘하는 자마다 하늘의 신령한 은사가 임할지어다. 전도의 능력이 임할지어다. 전도를 결단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릴지어다. 그 오른 손의 복이 전도로 헌신하는 전도자에게 돌아갈지어다.
끝으로, 복음전도는 전도 후의 양육까지를 포함합니다.
2절 후반부를 눈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읽습니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도하여 믿음을 갖기 시작하면 이후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갖고 양육에 힘을 써야 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복음전도자의 모습입니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는 것은 성경을 가르치되 즉시 교정되지 않는 성화의 부분에 있어서 기다려줄 줄 아는 인내가 요구되는 것을 말합니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기까지는 아무리 열심히 먹어도 시간이 필요하듯이 영적성숙에도 시간이 요구됩니다. 그리고 그 양육은 기다려주되 경책과 경계와 권면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3절과 4절에 자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3-4절을 함께 읽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인간은 끝내 타락하도록 조정돼있는 진노받을 악한 육체들이요, 그래서 책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비참한 존재들입니다. 본문은 그러므로 양육의 요건으로 교훈과 책망과 경계와 권면을 들고 있습니다. 가르치고 나무라며 조심시키고 권하고 이때에 시간이 필요하니 기다리라고 합니다. 5절을 함께 읽습니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2. 전도인의 일을 할 때 모든 일에 근신과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자 여러분. 여러분의 삶이 주 앞에서 풍성해지는 순서 중에 반드시 치러야 할 영적인 중노동이 있습니다. 하나는 전도요, 하나는 기도입니다.
기도없는 전도는 무임승차입니다. 능력이 없습니다. 열매가 없습니다. 또한 전도 안하는 기도자는 입술만 헌신된 부끄러운 헌신자입니다. 우리 모두 기도하는 전도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전도자는 기도할 때 주어지는 영적인 능력으로 고난을 고난으로 보지 않습니다. 영적인 능력자는 고난을 주를 위한 십자가로 받아 기꺼이 짊어질 수 있게 됩니다. 십자가에는 고통 뿐 아니라 반드시 영광과 기쁨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인격의 성숙으로, 근신하는 겸손이 관계의 평강으로 나타납니다. 기도를 멈추지 않는 사람은 모든 이들과 더불어 화평을 유지하게 됩니다. 복음전도는 관계화목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늘 겸손한 자세로 모든 행동과 말에 조심하고 삼가는 것은 성도의 귀중한 덕목중 하나임에도 우리들은 기도하기에 게을러서 관계에 실패합니다. 기도실패는 예배실패로 이어집니다. 예배실패는 전반적인 인생의 고달픔으로 그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우리 가운데 기도실패로 힘들게 살아가는 자가 없기를 기도합니다. 7~8절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됐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3. 최선을 다하고 믿음을 지킨 자에게 주어지는 의의 면류관입니다.
계22:12절에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우리 주님은 신실하신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사도는 자신의 생명이 멀지 않음을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머지않아 곧 순교의 제물로 드려질 것을 알고는 6절에서 “전제와 같이 내가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라고 결연한 고백을 합니다. 전제란 제사 마지막 순서에서 제물에 붓는 제사용 술을 말합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에 제물로 바쳐지리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마지막 가는 길에 부어질 고통의 잔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참혹한 십자가를 지시면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스스로 지고 오라고 하신 것처럼 바울사도 역시 자신이 피할 수 없고 피하지도 않을 십자가 앞에서 디모데와 제자들에게 담담하게 명령합니다. 5절에서 뭐라고 합니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할 때 고난을 받으라.”고 합니다. 이미 밝혔지만 가르치는 스승이 몸소 실천하지 않으면 그 교훈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스승은 아비라고 부르게 됩니다. 아비는 몸으로 먼저 아들 앞에서 본을 보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생애가 번제물이 되어 희생될 것을 각오한 뒤 디모데에게도 고난을 받으라고 기꺼이 가르친 것입니다. 장차 받을 면류관에 대한 확증, 곧 천국의 분명한 믿음이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예배자 여러분. 바울사도는 디모데에게 있어서 사도를 넘어선 아버지였습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바른 믿음과 거기에 따른 모든 희생을 먼저 자신이 몸으로 보여 따르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디모데와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파하라고 가르칩니다. 교사가 머리로 가르친다면 아비는 몸으로 가르칩니다. 오늘 바울이 그 몸으로 우리에게 가르친 말씀전파의 명령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국을 두고 하는 당부입니다. 그리하여 그 전도사역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라는 말로 전도 앞에 이유나 조건을 물리치라고 합니다. 전도에는 아울러 바울처럼 근신과 고난이 따르니 기꺼이 받으라고 결연하게 바울은 또 말합니다. 그는 곧 자신의 인생마무리가 전제의 부음처럼 번제물로 희생될 것을 알고 디모데에게 고난을 권유합니다. 뜨겁고도 감히 접근하기 어려운 영적권위와 힘이 있는 말씀입니다. 거듭 전하지만 천국에 대한 핑계할 수 없는 확신이 있다면 가능한 선포의 메시지입니다. 이는 몸으로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고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무능무력인 것 주께서 잘 아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우리 안에 찾아주셔서 우리를 주님의 거룩한 도구로 사용하기만을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정직한 기도는 역사를 바꾸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대이며 하나님의 뜻은 끝이 없는 진실과 선과 아름다움, 진선미입니다. 하나님께는 시작도 끝도 없으신 무한하신 생명이시며 창조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도 바울사도처럼 이 하나님께 온전히 사로잡혀 거룩하고 복된 삶으로 날마다 승리의 노래를 부르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일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12.01. 주일낮예배<창25:19-23.언약의 열매, 현실> (0) | 2013.11.30 |
---|---|
2013.11.24. 주일설교(전11:1~2. 씨를 뿌려 시작되는 풍요) (0) | 2013.11.24 |
2013.11.10. 주일낮예배<민3:44-51. 맏이를 대신한 레위인 2 (헌금편)> (0) | 2013.11.09 |
2013.11.03. 주일낮예배<민3:12-13. 맏아들을 대신한 레위인 1 (제직편)> (0) | 2013.11.02 |
2013.10.26.주일낮예배(마태복음 14:22-33. 물 위로 걸어오신 그리스도) (0) | 2013.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