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4. 주일설교(전11:1~2. 씨를 뿌려 시작되는 풍요)
약국이 없어서 아픈 건 아닙니다. 세상에 명의가 없어서 죽는 것도 아닙니다. 최고의 병원을 옆에 두고도 죽을 사람은 죽습니다. 최고의 스승이 있어도 바른 길로 안가고 형무소로 갑니다. 세상에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고 우리 안에 악마와 천사가 함께 뒤엉켜 늘 다툽니다. 분명 세상과 인생을 구해서 지옥길을 면하게 하고 비참한 죽음과도 같은 인생을 환한 빛으로 인도하는 복음이 있어도 세상은 여전히 어지럽고 어둡고 아픕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늘의 감동으로 말씀을 받는 모든 분들이 다 선한 부자가 되어서 가여운 이웃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돕고 살피는 은사가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문 1절을 함께 읽습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1. 베풀되 아낌없이 베풀어야 합니다.
본문은 흐르는 물 위에 떡을 던지라고 합니다. 히브리원어와 영문을 보면 흐르는 물은 “물들”이라는 복수이고 “던지라”는 친절한 마음으로 아낌없이 주라고 돼 있습니다.
첫째, 아까운 마음으로 주면 받는 사람이 먼저 압니다. 받아도 무거운 마음으로 받습니다. 아쉽거나 또는 체면상 받으면 속상해서 얼른 갚아버리고 싶은데 이는 선물이 아닙니다.
다음, “물들”이라는 복수입니다. 2절 말씀처럼 한둘이 아니라 일곱이나 여덟에게 나눠주라는 겁니다. 현대인의 성경에는 “네 재물을 여럿에게 아낌없이 나눠줘라. 그리하면 훗날 네가 곤경에 처했을 때 구원을 얻으리라.”고 돼 있습니다.
말씀을 잘 살펴보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던지라는 것도 아니고 쓸개 하나를 떼어 주라는 것도 아니고 큰 재물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흔하고 쉬운 떡입니다. 작은 것을 배려해주고 베풀라는 것입니다. 떡은 생명유지에 가장 기초적이고 작은 것 그러나 일상에서 늘 필요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거창하고 대단한 게 아니라 작은 겁니다. 일상을 후하게 나누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실패는 작은 것에서 옵니다. 작은 것을 소홀히 했을 때 큰 것이 무너집니다. 여객기가 떨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횡사한 뒤 원인을 보면 뜻밖에도 호스불량, 센서불량 등이라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도 보면 작은 돈에 그 귀한 영혼을 잃고 주변을 서운하게해서 결국 외로워지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늘 듣는 말씀이지만 우리가 쥐고 있는 양쪽 손은 균형의 손입니다. 알뜰한 것과 인색함을 구별해야 합니다. 베푸는 것과 소비벽, 낭비는 다릅니다. 줄 사람 안 줄 사람에게 물쓰듯 주는 사람은 결국 물질에도, 관계에서도 실패합니다. 반면 소소한 것에 쩔쩔매고 인색한 사람도 결국 외롭게 되고 가난을 면치 못합니다.
2. 여러 날 후에 되찾게 된다는 부메랑의 원리입니다.
1) 여러 날 후입니다. 인생은 기껏해야 100년 안에서 재단합니다. 거기서 이뤄지면 이뤄지는 것이고 거기서 안뵈면 아니라고 생각하는 비좁은 소견 속에 우리가 갑니다. 그래서 성경을 바로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복음이신 그리스도의 눈은 영원에 맞닿아 있고 그것은 하나님의 구도와 계획안에서 시작된 일입니다. 어찌 피조물이 감히 창조주이신 그분의 깊고 오묘한 생각을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이 감동시킨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먹어 영의 양식을 삼는 생명의 밥입니다. 밥을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여러 날 후 흐르는 물에 던진 떡을 되찾는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장하신 복의 원리가 되는 귀한 말씀입니다.
여러 날이란 첫째 하나님의 시간표에서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여러 날과 하나님의 여러 날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여러 날을 우리 생각에 갇혀 해석하면 하나님과 부딪치게 됩니다. 내 생각의 여러 날 안에 하나님의 여러 날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절대로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아이가 부모님의 깊은 뜻과 계획을 몰라 투정하며 골을 내봤자 서로 괴롬만 더할 뿐 얻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믿고 기다리면 가장 좋은 때 풍성히 되돌려주시는 주님은 그 때를 영생의 때로 미루신다 해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가장 좋은 때라는 것도 믿어 들이기를 축복합니다.
2) 되찾게 된다는 엄연한 사실은 진리이며 약속입니다. 내 손에서 선한 마음으로 떠난 베푼 물질이나 마음은 결코 내게로 돌아온다는 말씀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돌려받되 더 풍성하고 놀라운 것들이 되어 돌아옵니다. 끝까지 계산하고 끝까지 옹졸하면 결국 궁색한 살림살이와 관계를 면치 못하게 되는 건 우리 주변에 흔하게 펼쳐진 증거이기도 합니다.
옛말에 은혜는 바위에 새기고 원수는 물위에 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이나 사람 앞이나 드리고 주되 기억하지 않고 받은 것은 잊질 않아 늘 감사하는 성도되시길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말씀처럼 여러 날 후엔 모든 것 되찾되 베풀고 드린 것 이상으로 후히 주시는 주님 앞에서 벅찬 감동과 복을 나누는 분들이 되실 것입니다. 이 말씀 바로 받아서 마음으로 새롭고 몸으로 행하면 반드시 우리 가운데 증거되는 복음인 줄 우리가 믿습니다. 그래서 이 설교의 제목이 떡이 아니라 씨를 뿌려 시작되는 풍요입니다. 돌아봅니다. 진실로 나는 아낌없이 베풀었는가? 상대방을 가엽게 여기면서 베풀었는가? 나보다 여유있는 이라고 무심하진 않았는가? 내가 가장 불쌍하고 내가 가장 힘드니 나는 베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는가? 알뜰함이 지나쳐서 모든 관계를 망가뜨리고 있진 않나? 추수의 계절, 다른 교회들 오늘이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씨를 뿌리지 않고 또 가꾸지도 않고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는 자는 절도요, 강도입니다.
흐르는 물에 씨를 던지는 마음, 다시는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이 떡을 베푸는 선행, 끝내 인색함없이 베풀어 나와 내 가문과 생업에 소망을 기뻐하는 성도는 먼저 주님 앞에 드리기를 기뻐합니다. 주님 앞에 드리는 것은 어떤 베품과 선행과 투자보다도 가장 확실한 보장성을 갖습니다. 사라질 인생이 아니라 영원히 우리를 지켜주시고 함께 하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이 주님이 종종 주변의 이웃을 통해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를 망각하는 이의 특징은 뭡니까? 열심히 기도하고 울부짖습니다. 그러나 사람 앞에선 전혀 다른 정서를 갖습니다. 인생은 더럽고 하나님은 성결하다는 선입견을 못 버립니다. 잊지 마세요. 거룩하신 하나님은 천한 육신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지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흔하디 흔한 이웃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종종 찾아오십니다. 깊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의 실체는 하나님의 모습과 동행을 피조물 가운데 역력히 보는 그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믿음이란 하나님의 형상을 신비에서만 찾는 믿음입니다.
우리 가운데 늘 계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지체 안에 동행하시는 주님을 후덕한 마음, 아끼지 않는 마음, 섬기는 마음으로 베푼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평생을 통해 기쁜 경험을 기대합니다. 성경은 약속이고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어김이 없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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