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10. 주일낮예배<민3:44-51. 맏이를 대신한 레위인 2 (헌금편)>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을 빠져나올 때 열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장자의 죽음 사건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를 보호하셨을 뿐 아니라 그 가축의 첫태생까지도 모두 보존하셨습니다. 따라서 유월절 사건 이후 모든 이스라엘의 초태생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하나님의 소유임을 선언하셨습니다. 여기서 대속의 원리에 따라 모든 레위인과 레위인의 첫 짐승들을 하나님의 소유로 돌리셨습니다. 그런데 모든 이스라엘장자의 숫자대신 하나님께 드려야 할 레위인의 숫자가 273명이나 부족했습니다. 이 레위인이 부족한 수의 장자들은 한 사람당 5세겔씩 속전을 드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45절부터 한절한절 함께 읽어가며 말씀을 듣기로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에 레위인을 취하고 또 그들의 가축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취하라. 레위인은 내 것이라. 나는 여호와니라.”
즉, 이스라엘 민족의 모든 장자는 하나님의 소유인데 그 장자를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의 일을 전담케 하는 대신 레위인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레위인은 모든 장자들 대신 하나님께 바쳐진 자들이라고 이미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레위인이 바쳐졌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원합니다. 한 가문의 장자를 대신하여 레위인 한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에 바쳐져서 성막 일을 하면서 평생을 봉사합니다. 그 레위인은 가축이나 농토가 없습니다. 성막봉사가 주된 업무입니다. 성막이 옮길 때 채에 꿰어 모든 기구를 어깨에 메어 옮기며 머물 때 성막을 치고 제사업무를 돌봅니다. 이러한 레위인 한 사람은 곧 한 가문의 장자의 몫을 대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이스라엘 가문과 가정들은 혈속당 한 사람의 레위인을 장자처럼 섬기게 됩니다. 이는 레위인의 생활이 유지되도록 헌물을 드림으로 보장함으로 각가정의 제사헌신을 온전하게 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보통 한 가문의 장자라면 장자를 포함해서 다른 형제들을 계수하면 오늘 날의 십일조를 비롯한 우리들의 통상적인 헌금생활과 비슷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다만 형제들이 많으면 장자 한 사람을 보전하는데 좀 가벼울 것이고 형제가 적은 가정은 부담이 좀 더 늘어날 것입니다.
이것이 훗날에 성전세로 바뀌어서 헌물은 일상화된 중심의 신앙고백으로 바뀝니다.
47절을 함께 읽습니다. “한사람에 다섯세겔씩 받되 성소의 세겔대로 받으라. 한 세겔은 20 게라니라.”은 1세겔이 노동자 4일 품값이니 5세겔이면 20일분의 노동자 임금으로 환산하면 비슷합니다. 20일의 노동자임금이라면 하루를 5만원씩으로 하면 100만원이 되고 7만원씩 셈하면 140만원입니다. 한 사람의 생명, 그것도 당시로서는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는 장자의 생명속전이 100 여만원이라면 인간의 가치를 너무 낮게 본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장자들의 생명값을 환산한 것이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상징이었습니다. 다만 5세겔이라는 20일분의 임금정도는 그것을 드림으로 유월절의 감동을 잊지 않고 기념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우리의 헌금생활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정하는 일이 있어야 할 겁니다. 예물드림은 어느 헌신보다 중차대한 것은 장자의 생명을 담보로 시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애굽의 노예로부터의 해방은 장자의 죽음을 마지막 재앙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유일한 구원방법이었습니다. 그 구원의 유월절에서 장자를 보호받은 모든 이스라엘이 영구히 지켜야 하는 레위인과 그 속전이 모든 예물생활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즉 죄와 사망이라는 애굽에서 우리가 구원받을 때 이미 우리는 우리 삶의 장자권을 레위인에게 의탁한 바 된 것입니다. 장자권이라 함은 제사권, 곧 예배드릴 자격을 말합니다. 좀더 살피면 예배는 감사, 회개, 죄용서와 그 반응인 찬양으로 하나님과 화목하는 생명의 예식입니다. 그래서 모든 레위인들의 제사대행권은 하나님께서 이미 골고다의 어린양 보혈의 제사로 완성하셨습니다. 그 골고다의 십자가제사가 우리의 사망 줄을 끊어버리고 허락된 영생의 근거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대속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된 것은 오늘 날 예배라는 은혜로운 절차로 구약의 제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중심으로 드리는 헌금생활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생명을 살리신 속전의 마땅한 상징을 기쁨으로 기념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들의 모든 예물은 죽을 자를 살려주신 생명의 속전을 드리는 것인데 이는 생명의 값을 마땅한 준가로 치르는 것이 아니라 다만 상징적으로 치름으로 우리의 중심을 하나님께 향하도록 하나님의 배려에 따르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축원합니다.
49절입니다. “모세가 레위인으로 대속한 이외의 사람에게서 속전을 받았으니”레위인과 대제사장은 적어도 나라와 온 백성들의 흥망성쇠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영적으로 지켜가야 하는 중요한 영적일꾼으로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속전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와 성직자는 세금을 물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가 종교의 형평성을 주장하다보니 도나 개나 걸이나 모두 종교라는 이름을 뒤집어쓰고 문화부에 신고만하면 세금을 면제받는 타락한 세상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약의 모든 율법에 따른 명령들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상당부분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본질적 의미는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오히려 신약의 예수님말씀과 명령안에서 부드럽게 인격적으로 자율적으로 폭넓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오늘 레위인을 대신한 속전 5세겔이 약 100만원에서 140만원정도임을 우리가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장자의 생명을 대신하되 은혜로 계산한 거저받은 선물의 상징일 뿐 진정한 장자의 가치는 아님도 알았습니다. 우리들이 구원받은 새 생명의 값은 십자가에서 장자이시며 흠과 티가 없는 대속제물되신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계산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리스도의 보혈을 무엇으로 환산합니까?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셔서 대신 죽으신 그 피값을 무엇으로 말할 수 있습니까? 세상 어떠한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높은 가치입니다. 그러나 우리 좋으신 하나님께선 값을 묻지 않고 중심을 원하십니다. 생명살리신 값을 우리들의 중심으로 갚으시라는 오늘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중심의 진정된 표현은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시간과 중심과 물질인줄 믿고 아멘하시기 축복합니다. 시간과 중심과 물질을 감동에 따라 성실히 하나님께 드리기 바랍니다.
나하나 바로 하나님 앞에 드림으로 나와 내 가정과 특별히 후손이 보장받는 이 일에 앞 다투어 열심을 내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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