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20. 주일낮예배<창23:14~20. 사라의 매장지, 막벨라 굴>
생노병사 앞에 만인이 공평합니다. 누구든 늙고 병들어 죽습니다. 건강한 죽음도 진단서의 병명은 노인성 폐렴입니다. 목젓이 약해져서 미세한 음식물들이 계속 폐쪽으로 넘어가 염증으로 호흡이 꺼져간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한번은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죽음, 이 죽음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따른 관점이 한 평생을 좌우한다고 해도 옳은 말입니다. 육신 이후를 몰라 육신의 끝을 완전한 끝으로 알고 있다면, 그는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 모든 좋은 것들을 차지하려고 발버둥치게 됩니다. 눈에 안뵈는 것엔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불러주시고 택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한 세계에 더 큰 관심을 갖고 또 그 존재를 확신하며 살아갑니다. 무엇보다 그러한 영적인 사람의 특징은 눈에 뵈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 존재에 의해 분명히 주장되는 것을 믿고 또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미래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확신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사라가 죽어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아내가 떠나자 아브라함은 아내를 매장하기 위하여 묘터를 구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 중 매장지를 구하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행동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는지 함께 살피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본서 창23:4절 앞부분에 아브라함의 말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1. 본향을 향하는 나그네의 고백입니다.
아브라함의 고백처럼 믿음의 백성들, 하나님을 소망하며 이 땅을 지나가는 우리들은 세상가운데 나그네입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불신세상 한가운데 나그네라는 표현은 우리가 잠시 후 돌아가 영원히 살아갈 우리들의 본향. 천국에서는 정착민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택함받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나그네라는 말로 종종 고백합니다. 창47:9절에서 야곱은 나이를 묻는 바로왕 앞에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라고 말합니다. 나그네가 정착민과 구분되는 분명한 것은 먼저,
1) 떠나온 곳이 있다는 것이며
2)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과
3) 따라서, 늘 그리움 속에 소망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세상에서 네 종류의 불행한 사람이 있는데 이 중에 누가 제일 가여운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 날 저물어 갈 곳 없는 사람.
2) 열심히 뛰면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사람.
3) 사방 둘러봐도 어디고 마음 둘 곳 없는 사람.
4) 죽어 갈 곳 모르는 사람.
이 중에 제일 가여운 사람은 마지막 죽어 갈 곳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지금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분명히 알고 또 함께 믿어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생의 가장 정확한 본질을 말하고 있습니다. 롬11:36절을 그래서 우리 모두 외워둬야 할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우리들의 생명과 삼라만상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또 하나님의 손에서 움직이며 끝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간다는 게 성경의 증거입니다.
떠나온 곳과 가야 할 곳이 분명한 생애는 얼마나 복된 것이며 높은 가치를 갖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밝히 알게 된 것은 예수께서 대신 죄값을 치르심으로 인한 죽은 영의 회복과 갱생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딜 가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고 다만 죽지 않았으니 버티되 이왕 시작했으니 남보다 더 차지하고 더 달려가야 한다고 믿고 이정표도 없이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들, 예수없이 살아온 저와 여러분들의 과거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우리의 발길이 방황자도 아니요, 방랑자도 아니요, 분명한 목적지가 있어서 어떠한 고난도 우리가 도착할 거기 끝이 없는 기쁜 날들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이기되 넉넉히 이기는 것이 믿음의 실체입니다. 믿음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삶의 능력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성숙을 위해 제가 날마다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저의 믿음을 위해 기도해주시기 당부합니다. 어느 선물보다 최고의 선물이 하나님충만, 예수충만, 성령충만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기도입니다. 본문 7절을 함께 읽습니다.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거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두 번째, 나그네 된 마음으로 살았던 아브라함은,.. 그래서 겸손했습니다.
2. 겸손으로 존경받는 삶입니다.
힛타이트족은 철병기와 기마군을 주변에서 가장 먼저 사용한 강력한 민족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아브라함이 그들과 친절하게 지내는 모습은 여러 가지를 생각나게 합니다. 믿는 자의 동행과 그 능력, 6절 서두에 보니 아브라함은 이미 헷 족속사이에서 하나님의 방백으로 인정받는 자였습니다.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하나님을 잘 믿는 한 민족의 최고지도자란 뜻입니다. 그러한 어른이 부인이 죽자 부인을 묻게 땅 한자락을 팔라며 몸을 굽혔습니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겸손이 최고의 능력입니다. 겸손한 자는 가장 강한 사람입니다. 아무도 그를 어찌하지 못합니다. 헷족속 사람들은 그냥 드릴테니 아무 묘실에나 장사를 치르라고 친절히 말합니다. 그러나 몸을 굽혀가면서 아브라함은 값을 치를테니 팔라고 합니다. 11절에서 헷족속은 다시 밭과 묘실과 함께 그냥 값없이 드릴테니 받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끝내 아브라함은 제값을 치르고 땅을 사들입니다. 몸을 굽혔다는 말씀이 7절과 12절에 두 번이나 나옵니다. 지체높은 어른이 굳이 거저 쓰시라는데 공손하게 절하며 값을 톡톡히 치른 이유는 무엇일까?
창15장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6~7절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늙어 자식없는 아브람에게 하늘의 별처럼 무수한 후손을 주시겠다하는데 그 약속을 믿어 의를 이룬 아브람에게 큰 땅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아브라함은 아내가 죽자 그 약속의 땅 한 가운데에 아내를 묻고자 한 겁니다.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합니까?
3. 하나님의 언약을 준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가 살아가는 모든 방식은 하나님께로 집중돼 있습니다. 헷사람 에브론이 “우리 사이에 어찌 땅값을 계산하겠습니까?”라며 땅값을 사양했지만 아브라함은 끝내 값을 주고 밭과 묘터를 사들입니다.
성도여러분. 값을 치른 것만이 확실한 내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혹시나 훗날 변개할 수 있는 매매행위를 분명히 하는 데에도 게으르지 않아 훌륭한 조상의 임무를 다합니다.
아브라함이 굳이 아내의 묘를 이유로 가나안 땅 한 곳을 사고야 만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창49:31-32절을 찾아 함께 읽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야곱이 그렇게 말하고 자신도 죽어 막벨라 묘지에 눕게 됩니다. 그들의 풍속은 한 집안 식구들이 한 곳에 묻혀서 훗날 부활할 때 모두 함께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제 값을 확실하게 치르고 사들인 밭과 묘실이 장차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복의 시작,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의 중심이 될 줄 믿고 있었습니다. 막벨라 땅은 자녀들이 따라서 장사될 곳이고 거기는 후손들에게 선조가 묻힌 마음의 고향이 될 것입니다. 후손들의 가슴에 헤브론은 누가 뭐래도 우리 조상이 묻힌 안식처로서 마땅히 저들의 고향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대대로 헤브론은 언젠가 돌아가야 할 가나안으로 믿게 합니다. 즉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후손들에게 이뤄지는 일을 의도적으로 준비한 뜻깊은 신앙의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순례의 행렬이 그치지 않는 것을 보면 메시아대망사상의 구심점으로서 막벨라 조상의 묘실은 대단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기업분배를 보면 헤브론 땅은 결국 유다지파가 차지하게 됩니다. 유다지파는 르우벤, 시므온. 레위 세 형을 제치고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 이스라엘의 영적 맏아들입니다. 결국 조상이 묻힌 막벨라묘실을 후손 맏아들이 차지하게 됩니다.
거듭 전하거니와 값을 치른 것만이 진정 내 것이 된다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제값을 주고 사들인 막벨라굴은 훗날 하나님의 언약을 준비하는 신앙의 구심점이 됐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멀리 바라보기 원합니다. 적어도 우리들의 후손을 어떻게 예수 잘 믿게 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기 바랍니다. 거기 오늘 주신 말씀을 따라 우리는 언제나 돌아갈 본향에 모든 소망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나그네 된 자들은 나그네답게 마음을 비워 청결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가장 두려운 우리 삶의 감독은 다름아닌 우리들의 자녀들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나그네의 겸손은 모든 정착민, 곧 세상 사람들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친절을 나누며 복음전할 기회를 더 할 것입니다. 몸을 그렇게 굽히는 나그네는 언제나 미래를 준비합니다.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후손의 믿음을 준비합니다.
아브라함은 몸을 굽혀서 뛰어난 겸손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준비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몸을 굽혀 엎드려서 기도하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주면 존경받는 부모님이 될 줄 믿습니다.
가장 확실한 유업, 최고의 유산은 예수그리스도 한 분이심을 선포하고 몸으로 증거하는 복된 날들이 그치지 않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일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11.03. 주일낮예배<민3:12-13. 맏아들을 대신한 레위인 1 (제직편)> (0) | 2013.11.02 |
---|---|
2013.10.26.주일낮예배(마태복음 14:22-33. 물 위로 걸어오신 그리스도) (0) | 2013.10.27 |
2013.10.13. 주일낮예배<민1:1~4. 싸움에 나갈 만한 자, 20세> (0) | 2013.10.13 |
2013.10.06. 주일낮예배<계22:7~20(봉독7~12.) 내가 속히 오리라.> (0) | 2013.10.10 |
2013.09.15. 주일예배<출35:30-35.하나님이 지으시는 성전 > (0) | 2013.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