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18. 금요.
오늘은 좀 앞당겨 오른쪽 눈물관 시술 마무리로 관확장을 위해 넣어두었던
가는 루프선을 제거하러 김안과에 간다.
둘러보면 거저얻은 귀한 선물 아닌 게 없다.
생명과 몸과 가정과 신앙과 바른 가치관과 글을 좋아하는 것 외에 허물까지도
교회와 자신의 유익으로 그리고
영광은 주께로 돌리게 하시는 각성이며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들로 주변은 풍성하다.
다만 그 풍요를 어떻게 어디에 잘 사용하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의 숙제로 남게 된다.
그러므로 인생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사용하는 자신으로부터 행불행이 갈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인생이 불행해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시기(애3:33) 때문이다.
세상은 온통 난지도(註 : 여의도 옆 마포나루터에 마련된 쓰레기 하치장,
계속 토적처리로 이젠 작은 산이 되었다.)에서 들려오는
밀양아리랑(날좀보소, 날좀보서, 날좀보소, 동지섣달 꽃본듯이 날좀보소)으로 법적댄다.
부패한 가스가 숨을 죄여오는 이 땅에서 모두들 날 좀 봐달라는 것이다.
관심 좀 가지라는 것이다. 내가 이뤄논 일 내 소망, 내 그리움과 아픔을 좀 봐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녹녹치 않아 쇼윈도에 비친 나를 보는 것은 나 자신뿐이라는 걸 쉽게 알지 못한다.
최선을 다해 꾸미고 나가지만 그걸 가장 많이 봐주고 관심하는 사람은
허망하게도 자신 외에는 거의 없다.
그냥 내가 내게 취해 있는 것뿐이다. 그래서 외롭지 않으려면 남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게 결국 나를 아끼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웃을 살피고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면서 기억해주면 그는 반드시 나를 기억해낸다.
그 역시 자신을 위해 그리하는 것이다.
아침 예배당가는 길의 잡초를 몇 개 뽑으면서 생각했다.
잡초는 비가 온 후에 뽑아야 부드럽게 따라 나온다.
그러면 지저분한 밭이 말끔하게 정리된다.
궂은 날이 지날 때 누구든 아우성치며 신음하지만
그 날이 지난 후에 회개할 여러 가지가 상당부분 뽑혀나가게 되는 것을 알게 된다.
마음밭이 개운해 지는 것은 신음할 때 주님이 찾아주셨고
그 순간 마음의 제초작업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통은 잡초를 없애는 귀한 삶의 자산이다.
십자가를 통과한다는 것, 보혈로 채워진 생수의 강을 건넌다는 것,
그것은 불평등한 곳에서 평등의 장으로 나오는 것이고
부조리한 세상에서 가장 합리적인 곳으로 나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불평과 투정이 변하여 감사와 노래가 되고
아픔과 수치가 변하여 즐거움과 자랑이 되는 유일한 지름길이기도 하다.
공짜는 없다. 고통 없는 성장은 결코 없다.
바울사도께서 고백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십자가를 묵상한 후
자신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불결과 부단히 싸워 어떤 아픔도 마땅한 것으로 여겨
다소 그리스도의 대속고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한다면
그것은 주의 영광을 다시한번 경험하는 일이다.
예레미아 애가3:27절에서도 “사람이 젊었을 때 멍에를 메는 것이 좋다.”고 일렀다.
어떤 답도 쉽지 않은 세상에서 환히 보이는 정답으로의 출발이 십자가통과,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