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07. 주일낮예배<욥1:20-22. 욥의 적신신앙>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지금은 고인이 된 천상병시인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노래했습니다. 전 좀 비관적입니다. “눈떠보니 여길세..잠시 다니러 왔지. 이 험한 길을..”젊은 날 새벽이슬이 바짓가랑이를 적시는 논길을 저는 종종 많이 걸었던 게 기억납니다. 그리고 어딘가 아주 아름다운 곳이 있을 거란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글로 말로 전할 수 없는 소름끼치는 아름다운 곳이 분명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서러울 때마다 그곳을 상상하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 위로는 내가 언젠가는 반드시 거기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가득 쌓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육신으로도 넉넉히 누릴 수 있는 믿음의 나라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빈손으로 온 게 인생입니다. 벌거벗고 핏덩어리로 온 겁니다. 그리고 또 빈손으로 갑니다. 간신히 베옷 한 벌 얻어 입고 갑니다. 백만장자도 베옷 한 벌이요, 가난한 자도 베옷 한 벌입니다.“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것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9)
오늘 설교제목이 적신신앙입니다. 적신이란 붉은 몸, 곧 벌거벗은 알몸이라는 뜻입니다. 알몸으로 고백되어지는 신앙은 그 깊이가 얼마나 오묘한지 모릅니다. 실제로 내가 지금 소유한 것은 목숨하나뿐이라는 데까지 내려가 보지 않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신앙고백이 바로 알몸신앙고백입니다. 이 적신에 비하면 빈손이라는 백수는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 모릅니다. 혹 백수의 경험과 고백은 더러 있지만 알몸의 경험은 매우 드물고 그래서 귀합니다. 단지 드물어서 귀한 게 아니고 적신만이 맛보는 인생의 깊이와 폭이 오묘하고 놀랍기 때문입니다.
본문 1장21-22절을 읽겠습니다.“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읽으면서 우리는 욥의 중요한 고백 몇가지를 알았습니다.
①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습니다. ②알몸이 다시 그리(흙)로 돌아갑니다.③하나님(우리를 구원하시고 섭리하시고 영원히 그 나라를 통치하시는)이 찬송을 받으십니다. ④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1. 세상에 올 때 적신(알몸:핏덩이,붉은 몸)으로 왔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그렇습니다.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 하나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저사람은 세겹옷에 색동옷을 입었는데 나는 간신히 한겹 누더기를 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마음이 울적해졌습니다. 그러다가 또 다른 이를 보니 그나마 한 벌 옷도 없어서 절쩔매고 있습니다. 갑자가 부자가 된 기분으로 살맛이 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합니다. 왜 비교합니까? 비교는 시기와 질투의 죄성에서 시작되는 것인 줄 믿기 바랍니다.
이 비교는 내가 적신으로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잊고 살까요? 남들보다 더 잘 살고 더 잘 해야하고 더 많이 모아야한다는 욕심이 적신으로 왔다는 것을 까맣게 잊게 하는 것입니다.
잊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많이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빠지게 합니다.
2. 세상을 떠날 때 빈손들고 흙으로 돌아갑니다.
시103:14절입니다.“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세상에 올때 알몸으로 왔다는 사실 못지않게 중요한 건 돌아갈 때 빈손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나올 때 다 잡아 보겠다던 야곱의 움켜쥔 손들이 세상 떠날 때는 길게 편 채 텅빈 손으로 갑니다.
본문 욥기 1:16,17,18절의 시작은 꼭 같이“아직 말 할 때에”라고 함으로서 한가지 재난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재난이 다가와서 욥을 무너뜨리는 걸 봅니다. 세상의 재난은 사람으로 인한 것과 하늘로 오는 것으로 구분됩니다. 사람으로 비롯된 인재이든 하늘로부터 비롯된 천재이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기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욥의 재난을 통하여 인재와 천재로 구분해 살핍니다.
1) 인재(人災)입니다. 스바사람이 와서 물건을 탈취하고 종을 죽였습니다(15절). 갈대아사람들이 와서 칼로 사람을 죽이고 짐승을 빼앗았습니다(17절). 밤길 가다가 제일 무서운 건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겁니다. 재난 중에 사람이 죽는 것은 큰 재앙입니다. 종이 그 일을 보고하는 중에 또 일이 일어납니다.
2) 천재(天災)입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양과 사람을 태웠습니다(16절). 태풍이 불어 집이 무너지고 소년들이 깔려 죽었습니다(19절). 천재지변 앞에 인간은 할 일이 없습니다. 흔히 재해대책본부라는 말은 사실 재해수습본부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물론 준비는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사건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입니다.
심한 가뭄. 지진. 해일. 홍수. 벼락. 원인도 알 수 없는 괴질...우리가 아는 것은 무엇이며 또 할 수 있는 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일입니다. 찬양입니다. 경배입니다. 선포입니다.
그 모든 것을 피할 길은 오직 하나님의 품 외엔 없다는 것을 아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난을 두려워 할 게 아니라 재난을 멈추게도 하시며 보내시기도 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앞에 어떻게 서 있느냐? 그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 험한 인생 광야길을 가는 중요한 과제입니다.
3. 영광과 기쁨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본문 욥1:20절입니다. 함께 읽습니다.“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겉옷을 찢었습니다. 자녀가 죽었습니다. 가축을 빼앗기고 종들도 죽었습니다. 자녀의 죽음은 부모에게 더 이상의 고통이 없는 가장 큰 고통입니다. 욥은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그 슬픔과 아픔은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의 통곡을 기억하십니까?“내아들 압살롬아. 내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압살롬 내아들아. 내아들아 하였더라.”(삼하18:33) 이 아비의 절규를 자식이 어찌 알겠습니까? 압살롬은 아비를 죽이고 자신이 나라를 차지하려고 했던 불효막심한 아들입니다. 그 아들로 목숨을 잃을 뻔 했던 다윗이지만 아들이 죽자 차라리 자신이 죽었더라면..하면서 통곡합니다. 이것이 부모입니다.
욥은 지금 열명의 자녀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태풍이 불어 무너지는 집에 모두 깔려 죽었습니다. 욥은 이렇게 엄청난 불행을 당할만한 아무 근거를 자신 안에서 찾을 수 없어 더욱 괴로웠습니다. 그는 평안할 때 자녀들의 생일때마다 혹 자녀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하여 번제를 드렸던 사람입니다.
욥1:1-5절까지에 의하면 욥은 ①순전하고 정직했습니다. ②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입니다. ③다복한 자녀가 있습니다. ④큰 부자입니다.⑤예배하는 인생입니다. 이렇게 순전하고 신실한 믿음의 사람을 우리는 쉽게 찾지 못합니다. 5절 하단에서 성경은“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산더미같은 고난, 큰 재앙이라는 파도 앞에 사람들은 대부분 망연자실, 넋을 잃습니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능이 마비되기도 합니다. 헛소리를 하며 헛것을 보기도 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가 됩니다. 그렇게 기능이 마비되거나 까무러치지 않으면 큰 충격앞에 인간은 더 큰 일을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정신은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하려 하거나 엉뚱한 일을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욥은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괴로워하며 견딜 수 없어하다가 결국 하나님앞에 엎드린 것인데 성경말씀은 그가 하나님앞에 범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2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이 모든 일이란 욥 자신이 전혀 해석할 수 없는 일들을 말합니다. 그 일들 앞에 범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린 범죄의 의미를 바로 알고 지나야 합니다. 범죄는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거나 의지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것을 뜻합니다. 욥은 당한 불행앞에서 불행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세상죄에 속한 자들은 불행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이것은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이 되는 현장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이 불행한 일을 지금 보고 계시며 나의 믿음을 통하여 위대한 일을 하신다는 것을 결단코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욥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보아도 욥과 같은 상황에서 원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원망은 억울해 하고 분해서 미워하며 탓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힘든 일 위에 하나님을 불신해서 일어나는 괴로움이 더해집니다. 불행한 일 자체보다 마음의 원망으로 더 괴롭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교회표어는 변함없이“지금 여기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현장감각으로 코람데오, 즉 신전사상으로 하나님과 가까운 영적 삶을 사시기 축복합니다.
욥이 큰 재난앞 에서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고 찬송할 수 있었던 건 이러한 재난이 괴롭고 힘들어도 이것이 결론이 아니라는, 믿음의 위대한 힘이었습니다.
욥의 이 믿음을 저와 여러분에게 오늘 주님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과정을 결론이라고 말함으로 범죄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고 마칠까합니다. 알몸으로 왔습니다. 빈손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고 하나님이 거두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을 높이며 찬송하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는 게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채우시는 줄 믿기 바랍니다. 적신신앙은 그러므로 늘 기뻐하는 삶입니다. 보이는 것으로부터 자유하고 벌거벗은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서서 기뻐하는 믿음,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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