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17. 주일설교<엡4:17-24. 옛사람과 새사람>
인도네시아 쟈바 섬 해안에는 때만 되면 거북이가 산란을 위해 줄지어 올라오는데 들개들이 기다렸다는 듯 계속 잡아먹어도 끊임없이 줄을 지어 올라옵니다. 마치 죽으러 올라오듯 합니다. 쇼펜하우어는 이 장면을 보면서 깊은 상념에 잠겼고 이윽고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떠올린 후 염세철학자가 되어 세상을 비관하는 모든 이론을 추려 내기 시작합니다. 생태계는 먹이사슬로 돌아가는데 먹이사슬은 죽기 위한 사슬이 아니라 적절한 숫자가 함께 생존하는 훌륭한 자연계의 조절방법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것은 위로부터 온 총명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옛사람과 새사람인데 그 부제는 총명입니다. 여기서 뭣이 떠오릅니까? 시각과 관점이라는 것입니다. 총명은 시각과 관점이 사람의 그것을 떠나 하나님께 붙잡히면서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이 만들어진 후 하나님은 그의 몸된 교회의 손을 놓으신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나라의 특성들을 부족하나마 이 땅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직은 다 이루지 못한 것들을 품고(빌3:12) 죄와 세상을 상대로 부단히 다투며 달려갈 길을 달려가는 것이 지상의 전투교회이고 저와 여러분을 통해 그러한 불완전한 가운데 주님은 그 구원의 목적을 이루어 가고 계신 것입니다.
본문은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길에 우리가 마땅히 이뤄야 할 옛사람으로부터의 떠남과 새사람을 덧입는 것에 관한 바울사도의 권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명과 헌신을 바로 감당하려면 먼저 교회가 교회다워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려면 교회의 기초구성원인 성도 한사람한사람이 과연 교회가 요구하는 성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깊은 성찰과 함께 끊임없이 연약한 자신을 아파하는 노력이 계속돼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성도의 바른 정체성과 그 삶에 있어서 저와 여러분, 반드시 이뤄갈 몇 가지를 함께 도전받고자 합니다. 먼저 썩어져가는 구습에 매어 새사람을 덧입지 못하는 안타까운 성도들의 공통된 특성을 살피며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구습에 묶인 자들은, 18절입니다. “그들의 총명이 어둬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이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 하나님을 떠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제 뜻대로 살다가 하나님없는 채로 심판대에 서서 지옥으로 향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떠난 자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떠난 자는 어떠한 모습의 사람들입니까?
1) 허망한 것을 행합니다. 본문 17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행하지 말라.”고 합니다. 허망한 것으로 행한다는 것은 아무 소망이 없는 것을 바라보고 온 힘을 다하는 어리석은 행위를 말합니다. 이는 세상의 마지막 소망이신 예수를 알지 못한 채 진리와 생명없이 열심히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물질만능사상와 명예를 따라가는 것과 아름다워 보이나 세속과 인본으로 가득한 문화와 정서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들로 세상은 차고 넘칩니다. 눈에 보기엔 그럴싸하지만 그것들은 믿음으로 영원한 나라에서 볼 때 얼마나 허망한 것들입니까?
2) 총명이 어두워져 무지합니다. 18절 상반절을 함께 읽습니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총명이란 말의 어원적 의미는 “이해, 터득하다, 통찰력, 사고력, 지각” 등의 뜻입니다. 정리한다면 내면, 속사람의 형통을 말합니다. 속마음의 세계가 하나님을 향하여 환하게 열려있고 잘 통한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저와 여러분, 하나님과 환하게 통하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을 만나 깊은 교제가 이뤄지면 통찰력이 밝아지는데 사람들이 사과 속에서 씨앗을 볼 때 총명이란 씨앗 속에서 사과농장을 보는 눈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사람보기에 총명한 듯해도 실로 미련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29:14절에는 하나님이 기이한 일을 행하시면 지혜자의 지혜와 명철자의 총명이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보시기에 사람의 총명과 지각은 실로 사소한 것입니다. 고전1:25절에는 또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셔서 우리 머리털 까지도 세고 계시며 세포까지도 헤아리십니다. 그리고 평생을 한눈에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차라리 아는 게 없다고 시인하는 게 겸손입니다. 그것이 무지한 인생의 진정한 깨달음입니다. 그 겸허한 깨달음과 통찰력을 하나님이 보실 것이고 그가 택한 백성이라면 그는 하나님의 발 앞에 엎드리게 될 겁니다. 이게 본문에서 말하는 총명입니다.
본문 18절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총명을 잃어 무지한 가운데 있다고 증거합니다. 인간의 행불행은 환경이나 조건이 아닙니다. 알 것을 모르고 몰라도 될 것을 열심히 배우고 익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망이 텅 빈 허망입니다. 불신자들은 총명을 잃은 이방인들입니다. 영적무지는 끝내 총체적인 무지로 현실이 되어 자신앞에 나타납니다. 무지하면 어떻게 됩니까? 엉뚱한 곳에 엉뚱한 일로 치르지 않아도 될 비싼 값을 치릅니다.
3
) 마음이 굳어집니다. 본문 18절과 19절에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굳은 마음은 이미 생명력을 잃은 돌밭같은 심령입니다. 말씀의 씨가 심겨지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영혼은 말씀의 공급이 멈추면 곧 시들기 시작합니다. 딱딱한 심령에 어떤 명설교나 말씀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굳은 마음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기 때문에 영적 불감증에 걸려 있습니다. 불감증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악인지도 모르게 해서 졸지간 인생을 심각하게 만들어 불신앙조차 두렵지도 않고 마냥 편안하게 해서 결국 목앞에 사망이 왔을 때 비로소 알고 후회하게 하는 주범입니다. 이쯤되면 사단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계속 조여 옵니다.
톨스토이는 [나의 회심]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5년 전 나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나의 전생애가 변했다. 이전에 바라던 것을 바라지 않게 되고 오히려 이전에 구하지 않던 것들을 갈구하게 되었다. 이전에 좋게 보이던 것이 좋지 않게 보이고 대수롭지 않게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소중한 것으로 다가왔다. 나는 소위 행운의 무지개를 따라 살았는데 그 허무함을 알게 되었다. 거짓으로 나를 꾸미는 것이나 여인들과의 타락한 생활이나 술취해 기분 좋은 게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할 수는 없었다. 예수를 만나 목적있는 새인생을 출발..."
19절을 함께 읽습니다. “저희가 감각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사단은 무감각해진 우리들의 영혼에게 말하기를 “자. 이제 얼마나 편안한가? 주중에 계속 일하고 좀 편히 누워 쉬어야지. 교회 뭐 꼭 가야하나? 만날 사람도 많고 갈 곳도 많고 볼 것도 많고 얼마나 재미난 일이 많은 세상인데” 방종하여 세월을 탕진하게 합니다. 이번엔 엡5:16-17절을 보기 바랍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을 함부로 방탕에 풀어놓은 자에게 세월이 악하다고 충고합니다. 참 세월이 악하고 빠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이토록 부족하고 연약한 중에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오늘 주님은 말씀을 통해 배운대로만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21절입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아멘.
하나님의 생명을 떠나 총명을 잃고 마음이 굳어지고 어두워져서 허망한 것과 방탕한 것에 자신을 방임(放任), 조심하지 않고 맡기는 것은 그리스도의 교훈에서 떠난 것이며 성도가 길은 주안에서 받은 가르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안에서 받은 교훈은 무엇입니까? 22절을 함께 읽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2. 그리스도를 따라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새사람을 입으려면 먼저 우리 안에 교묘히 숨어있는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시간 우리들안에 숨어있는 옛사람의 정체를 밝힐 때 주의 영이 함께 하셔서 옛자아를 꾸짖고 쫓아내어 신령하고 능력된 새사람을 덧입혀 주실 줄 믿습니다.
1) 쫓겨나가야 할 구습의 옛사람입니다. 성경에서 지금 말하는 구습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못된 옛 습관을 말합니다. 그것들은 오랫동안 우리들을 지배해 왔고 사람들은 매우 익숙하게 길들여져 있습니다. 익숙한 건 편합니다. 변하려면 틀을 깨야는데 대부분 그 수고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썩어가는 구습은 반드시 깨어져야 합니다. 밖이 낯설고 춥다고 병아리가 계란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새로운 삶은 시작되지 않고 거기서 썩어버릴 뿐입니다. 껍질을 깨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2) 심령으로 새롭게 되는 새사람입니다. 본문 24절에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합니다. 새롭게 된다는 건 먼저 심령이 거듭나야 한다고 성경은 지적합니다. 하나님을 따라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심으로 구습에 매인 우리들의 영이 새롭게 되면 그 새사람은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진정 저와 여러분. 하나님의 의와 진리와 거룩하심으로 거듭나길 소원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붙잡힘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길이요, 오직 성경 안에서만 살고자 함이 진리요, 세상 헛된 것을 물리치는 건 거룩입니다. 그러한 영의 사람에게 세상이 무슨 힘을 쓰겠습니까?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해 인생을 병들게 하고 총체적으로 상하게 하는 악한 영이 멀리 달아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하나님의 새사람을 덧입어 과연 능력있고 권세가 넘치되 늘 찬미예수로 살아가는 기쁜 우리모두 되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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