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10.주일설교<요15:13, 사랑과 희생의 십자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으로서 온 인류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유일한 본보기입니다. 짧은 평생 가장 귀하고 가치있게 살아가는 길을 하나님은 친히 복음이 되셔서 복음이신 그리스도 자신으로 제시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메시아 대망사상으로 어떤 민족적 역경도 헤쳐갈 힘을 얻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정작 메시아가 나타났으나 믿지 않고 반역으로 몰아 십자가로 처형하는 실수를 하고 맙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의 범죄 이후 인류역사상 최대의 범죄가 골고다에서 이뤄진 것이고 또한 골고다에서 인류역사상 가장 큰 복인 대신속죄와 더불어 구원이 이뤄진 것입니다. 죄가 있어서 용서란 말이 생겼고 우리들의 죄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골고다에 세워졌습니다. 구약은 택한 민족을 이스라엘로 한정했지만 골고다 이후 이스라엘은 믿는 모든 백성이란 의미로 확대되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과 겨뤄 이겼다는 뜻입니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는데 사랑이신 하나님은 그 사랑 때문에 자녀된 우리에게 져주신 게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막무가내 자녀에게 져주신 뒤 그게 사랑임을 알고 믿으라는 게 복음의 요지입니다. 십자가 이후 온 인류는 골고다 오른 편과 왼 편으로 갈라졌습니다. 그것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고 불신과 신앙이고 이스라엘과 반이스라엘입니다. 38선 이남과 이북으로 갈라져 한쪽은 인간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한쪽은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나라로 갈라지듯 확연하게 구별됩니다.
비상식과 상식이 싸우고 아직도 세상은 빛과 어둠이 범벅이 되어 힘을 겨루며 세월이란 바퀴를 돌려가고 있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게 마련입니다. 인생의 여정, 인류의 여정은 그 시작도 끝도 하나님이십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인생들을 찾아오셔서 당신의 무한영생 안으로 초청하시는 복음이 우리 삶의 소망이 되길 바랍니다. 백번 말해도 부족한 것은 하나님은 시작도 끝도 없으신 영원한 단 한분이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의 어떠한 성현군자도 자신을 가리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일컬어 스스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이셨기에 그러한 선포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하는 모든 삶은 진리이며 생명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은 무엇을 말합니까?
1. 새 계명,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명령은 너무나 방대하여 한마디로 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경은 사랑을 결코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을 봅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않으며 사랑은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히 행하지 않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내지 않으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않으며 불의를 미워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희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몸을 드려 피흘려 생명으로 많은 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희생제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길이라면 우리도 그 희생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분의 십자가를 우리도 우리의 분깃만큼은 질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요15:13절에서 주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고 하셨고 그런 사람은 주님의 친구라고 했습니다.
희생은 손해를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본다면 그건 결코 손해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입니다. 그만한 투자, 세상에는 없습니다. 희생의 고난이 장차 받을 기쁨의 면류관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게 바울의 고백입니다. 희생은 비록 힘겨워도 분명히 다시 살아나는 생명의 길인 줄 우리가 믿고 압니다.
2. 순종은 하나님이 겸손과 감사와 함께 기뻐하시는 성도의 덕목입니다.
손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을 사무엘선지자가 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면서도 성도들에겐 많은 갈등이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면 과연 놀라운 길이 열릴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하고자 하나 세상이 우리들을 쉽게 놔주지도 않습니다. 여러 가지 제약이 교회에 충실치 못하도록 유혹하며 위협하고 있는 곳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주님께서는 우리 연약한 성도들이 힘든 세상에서 순종할 수 있도록 늘 돕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깊은 중심(삼상16:7)을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힘이 부족하여도 순종하고자 애를 쓰면 그때 지체없이 달려오셔서 도우시는 성령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3. 순종할 때 미래를 보장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습니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인생입니다. 특히 미래에 관한 것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무능하고 무지한 가운데 다가오는 미래 앞에 불안하게 서 있는 것이 나약한 인생입니다. 풍족하거나 가난하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것은 물질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장래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해도 틀리지 않는 예언은 뭡니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죽음이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피할 수 없는 손님입니다. 죽음 이후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아마도 인간에게는 가장 큰 불안의 요소일 겁니다. 이 모든 불안은 자신의 생명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산 자와 죽은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님께선 천국과 지옥의 열쇠를 한 손에 쥐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 분께 순종하는 일은 미래에 대한 가장 확실한 보장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살 때에 많은 위험과 불안이 도사리고 있지만 오직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예수님을 길로 삼고 그 말씀이 인생의 지침서가 된다면 저와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이제 겨울도 지나고 봄이 옵니다. 또 한해 금방 지날 겁니다. 남은 날들도 오직 예수님의 방법으로 노력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넓은 믿음의 지경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믿고 따르는 자들의 모든 결과는 주님의 것이라는 불변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제사에서 하나님의 불을 쓰지 않고 자신들의 방법을 따라 불을 지폈던 나답과 아비후처럼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방법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모두가 되시기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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