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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3.03.03.고려신학주일설교<왕상17:8~16. 사르밧 과부의 순종>

by 설렘심목 2013. 3. 6.

 

2013.03.03.고려신학주일설교<왕상17:8~16. 사르밧 과부의 순종>

 

고려신학교주일을 맞이해 사르밧 과부의 순종이란 제목으로 사르밧과부와 엘리야선지자를 통해 함께 은혜나누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사르밧과부는 엘리야선지자의 예언을 따라 기업도 없는 가난한 과부 처지에 수년간의 가뭄까지 겪어야 할 위기에 놓인 사람입니다. 거기 하나님의 사람을 대접함으로 아들과 함께 가뭄의 위기를 모면해 복받는 사르밧과부는 우리가 어찌해야 메마른 이 땅의 위기에 대처해야 하는 가를 알게 합니다. 4절과 9절을 각각 읽습니다.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1. 필요를 아시고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일하는 소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말씀은 먹을 것을 주고 일을 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본문 두 절에선 까마귀와 사르밧과부에게 각각 명령하여 엘리야를 굶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들은 믿음이 깊어질수록 더 깊은 충성과 신앙활동을 원하게 됩니다. 요6:29절에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건지 묻는 회중에게 주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고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는 건데 오늘 다시한번 그 질문을 진지하게 상고해야 할 줄 압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열심히 믿을 건가? 무엇이 충성인가? 믿음이란 믿은 바를 몸으로 행하는 것까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믿음의 주체시고 대상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활화하는 것이라고 크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곧 말씀의 생활화인데 범위가 넓어서 전생애에 거쳐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원리요약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운동은 구원을 이루는 첫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운동은 선교와 전도와 교육으로 이뤄지는데 그 마지막 열매는 설교라는 도구로 집약됩니다. 그래서 성도나 목회자는 무엇보다 성경을 잘 이해하고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 모두가 성경에 전문이 되긴 어렵습니다. 생업에 종사해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선지자와 레위인을 보내셨고 이젠 신학교와 목회자와 전문인사역자를 보내시고 계십니다. 크게 보아 우리 믿는 이들은 모두 하늘에서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 사실보다 더 기쁜 일은 없습니다. 본문의 엘리야처럼 사명이 있는 자에겐 반드시 필요를 채우시는 주님을 믿고 찬양합니다. 누구를 움직이시든 어떤 명령을 하시든 일을 맡은 자에게 우리 하나님은 주리거나 아쉽지 않게 인도하십니다. 성도의 필요를 성도보다 더 잘 아시는 주님을 늘 찬송하기 소원합니다. 본문 15~16절입니다.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한지라.”

 

2. 순종으로 섬기면 그때 모든 게 열립니다.

 

12절 말씀처럼 마지막 양식을 아들과 함께 먹고 죽으려 했던 가여운 과부와 아들, 엘리야의 말에 순종하여 수년간의 혹독한 가뭄을 무사히 지냅니다.

마지막양식 한 웅큼을 먹고는 죽으려 했던 과부에게 엘리야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래. 그럼 그리 먹고 죽는 건 네 생각대로 하고 일단 너는 먼저 나를 위하여 떡을 만들어 가져오고 그 후에 네 아들과 네가 먹으라.”고 합니다. 비양심, 비윤리입니다.

 

성도여러분. 순종은 내 사정과 기준에 맞춰서 하는 게 아닙니다. 순종은 조건을 안봅니다. 무조건 순종입니다. 명령 앞에 조건을 걸면 그건 순종이 아니라 타협입니다. 황당한 선지자의 명령에 사르밧과부는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가뭄에서 생명을 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막같은 세상을 지날 때 자손들과 함께 함지박이 마르지 않게 사는 길은 오직 복음에 순종하는 일인 줄 믿기 주님 앞에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는 고려신학교주일로 지킵니다.

 

목회자는 여러분의 영혼을 간수하라고 하나님이 보내신 주의 종입니다. 그 목회자를 키워내는 곳이 신학교입니다. 바른 신학과 교리로 목회자를 바로 잘 양성해야 바른 설교가 탄생하고 바른 설교라야 성도들이 바른 신앙을 갖게 됩니다. 가정의 미래가 자녀라면 교단의 미래는 신학생이며 그래서 후원을 해야 하는 곳이 신학교입니다. 시대가 자꾸 기울어갑니다. 혹간에는 말세가 가까웠다고 합니다. 바른 말세관은 시점이 아니라 말세를 살고 있다는 성도들의 신앙고백이어야 합니다. 말세엔 바른 신학과 교리가 흔들려 각종 인본사상이 교리를 앞설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어떤 이유로든 사람이 앉으면 세상은 끝이고 그 끝 시대에는 특별히 말씀에 헌신된 소수의 무리들이 필요합니다.

 

우리교단 고려신학교는 대쪽같은 신앙고백으로 세류와 결코 타협하지 않아서 교단소속교회와 신학생의 수가 타 교단보다 매우 적습니다. 그러나 일당백을 감당할 만한 그리스도의 골수군단입니다. 우리 예장 고려교단의 강직한 색깔은 이미 대한민국교계가 잘 알고 있습니다. 천주교를 이단이라고 공개선포한지 이미 오래고 WCC도 국내 최초로 반대했습니다. 세계기독교연합회는 모든 기독교파를 하나로 연합통일하자는 그럴싸한 이름아래 사실은 모든 종교는 그 본질과 진리가 같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모든 종교에 나름 다 구원이 있으니 서로 비판 말고 화목하자며 법당 예배를 드리고 예배당에서 설법을 합니다. 여기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반기를 들고 문제단체로 규정한 게 바로 우리 교단입니다. 반공을 공개적으로 가르치는 교단은 우리교단을 비롯해 극소수의 교회들입니다. 세상이 혼탁해질수록 바른 소리를 내는 주님의 교회가 절실한데 그럴수록 교회는 옹색해집니다.

 

천주교, WCC나 반공, 이단사이비는 교인들이 싫어하는 주제입니다. 위로와 축복과 소망의 메시지만을 찾아 지쳐 헤매는 철새들이 늘어납니다. 올곧은 신앙고백으로 고려신학교가 반듯하게 서가길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우리교단과 고려신학교가 하나되어 힘차게 신학생을 배출하도록 그래서 주의 나라 귀한 사명자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는데 우리 기도부터 힘을 모아 주님 앞에 칭찬받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