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15.주일예배 <출14:21-31.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열가지 재앙중에도 마지막 장자의 죽음은 그야말로 애굽에게 치명타를 가했습니다. 제발 나가달라며 은,금 패물까지 주며 보내던 애굽인들과 바로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막상 떠나보내고 보니 또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성경은 이를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주장한다는 것은 곧 역사를 주장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줄 믿기 바랍니다.
요셉의 유언대로 그의 해골을 메고 나온 이스라엘백성들은(13:19) 이제 한숨돌리고 부지런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애굽군사들이 따라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약 200 여만명이 떼를 지어 행진합니다. 짐작이 쉽게 가지 않는 장면입니다. 100명단위로 1m간격으로 따라와도 200만이면 20km라는 거리의 대장정이 됩니다. 명령이나 지침하나가 전달되는데도 몇시간은 족히 걸립니다. 하나님의 인도라고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 거대한 드라마입니다.
출애굽의 여정에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와 돌보심은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출발하는 코스부터 다릅니다. 팔레스타인 땅은 가나안으로 가는 지름길이지만 그들과의 전쟁으로 행여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까봐 그리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홍해쪽 광야길로 인도하실 때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처럼 4계절 뚜렷하여 땅좋고 물좋아 복받은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몇 나라 안 됩니다. 출애굽하는 현장 거기는 일교차가 심하여 상식적으로는 이 많은 인원이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잘 곳에 대하여 대책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한낮에는 보통 섭씨 40-50도 안팎에 쩔쩔 끓는 사막지방입니다. 밤중에는 건조한 지방이라 복사냉각이 심해서 10도 미만으로 춥고 심하면 0도까지 내려가기도 한다고 합니다.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한 여름 35도 이상이면 숨이 막힙니다. 그 때 에어컨 몸에 무리가지 않게 작동시키면 외부와 5도차이로 유지합니다. 그러니까 실내온도를 28도에서 30도쯤 유지시킵니다. 강제로 25도에 맞추면 몸이 적응하지 못하고 살이 아픕니다. 냉방병은 생각보다 후유증이 심합니다. 인간의 몸이 외부온도에 견디는 보통 감각으로 약 5도에서 7도차이가 가장 시원하게 느낍니다. 그런데 사막은 40도 이상이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사막여행은 노중에서 잠자리마련에 대책이 없다면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또 낮에는 얼마나 뜨거운지 맨몸으로는 화상을 입는 온도입니다. 실제로 장비차량위에 계란을 깨어 놓으면 즉시에서 익어버리는 계란이 익는다고 합니다. 거기 200만의 이동에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잠자리, 구름기둥과 불기둥이란 말은 바로 이러한 현장감각이 있는 사람에게만 이해가 되는 절실한 대목입니다.
종종 우리가 기도할 때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되어주시는 주님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깊은 지형적, 감각적 이해가 필요한 기도내용입니다. 동일한 기도지만 얼마나 성경의 시대공간적 배경과 문화정서를 이해하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깊이를 갖게 됩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생명과 직관된 보호장치였습니다. 하루이틀이 아니라 자그마치 40년이었습니다. 낮의 구름은 그렇다해도 밤에 불기둥은 얼마나 장관을 이루었겠습니까? 보기도 놀랍지만 또 얼마나 따듯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하여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하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단순한 보호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훈련을 통한 성숙과 인내를 통한 내실을 이루고 고난을 겪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잊지 않고 바른 예배자의 정체성을 찾게 하십니다. 다시 애굽을 사용하셔서 추적하게 합니다. 애굽의 바로왕은 마치 꿈을 꾸기라도 한 사람처럼 히브리노예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갑자기 썰렁해진 현장에서 마음을 바꿉니다. 특별전차부대 600조(1200명탑승)와 다른 예하부대 전차병력을 다 동원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이 추적특별부대장이 미리암의 사위 아메노피장군이라고 합니다. 멀리 전차부대의 진격으로 먼지가 뽀얗게 보입니다. 아무 무장도 없는 순수 민간인은 마치 범앞에 토끼처럼 겁에 질렸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입니다. 대책이 없습니다. 준비나 대책이 없으면 인간은 두려움에 쌓입니다. 백성들이 두려워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모세에게 불평합니다. “애굽에 우리를 묻을 땅이 없어서 여기까지 끌고 나와 죽이려느냐? 그래서 우리가 그냥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게 더 낫다고 하지 않았냐?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애굽종살이가 낫겠다.”는 겁니다. 모세가 말합니다. 13절입니다. “너희는 두려워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사람을 또다신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입을 열어 패역한 불신의 말을 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보기만 하라는 겁니다. 1등도 말고 꼴찌도 말고 가만히만 있으면 중간은 가는데 꼭 말참견해서 망신당하는 일이 이스라엘안에 가득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앞에서 정녕 함부로 입을 열어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평은 완전무흠하시고 사랑이신 하나님앞에서 전혀 해당없는 말인줄 믿으시기 축복합니다.
19~20절입니다.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 구름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편은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편은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편이 이편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가깝게 접근한 적군이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더 이상 접근치 못하고 있습니다. 불평하던 백성들이 얼마나 민망하고 죄송했는지를 상상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이러한 불평과 구원의 기적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계속하여 반복되는 이스라엘백성들의 천박한 믿음을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저들의 얕은 믿음을 결코 나무랄 수만은 없습니다. 뙤약볕아래서 전 가족이 생존을 걸고 하나님만 바라보는데 생각보다 예민해 있다는 겁니다.
드디어 모세가 하나님께서 시킨대로 바다위로 손을 내밀었더니 밤새도록 바닷물이 물러가 바다에 길이 열립니다. 막혔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모세처럼 하나님앞에서 손을 높이 들고 부르짖으세요.
바다처럼 요동치 않던 염려와 근심거리가 둘로 갈라져 훤한 길을 내는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하시리라 확신합니다. 믿음의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는 곳에 역사는 일어납니다. 영의 눈이 열립니다. 하늘문이 열립니다. 거기 천군천사와 하늘 곳간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기도하지 않아서 받지 못하는 것들로 가득한 하나님의 곳간이 있을 겁니다.
긴 이스라엘의 행렬이 홍해를 건너자 곧 이어 애굽의 전차추격부대가 뒤따라 쏜살같이 갈라진 바다 한 가운데로 용감하게 들어옵니다. 이들은 잠시 후에 모두 수장되어 죽는다는 것을 알 리가 없습니다. 이런 걸 두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합니다.
25절을 함께 읽습니다. “그 병거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극난하게 하시니 애굽사람들이 가로되 아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사람들을 친다.”28절 끝에는 바로의 군대는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전멸입니다.
31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사람들에게 베푸신 큰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이번엔 요20:29절을 찾아 읽기로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 하시니라.”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본 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한 제자 도마에게 주님이 이르신 말씀입니다.
믿음의 실체에 대한 우리들의 깊은 성찰이 요구되는 대목입니다.
그렇게 불평하며 애굽떠난 걸 후회하던 백성들이 눈앞에서 애굽군대가 몰살당하자 그제야 하나님과 그 종 모세를 믿었습니다. 여기 ‘큰일을 보았으므로’라는 말은 조건부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시면 믿고 안 주시면 믿지 않는 매우 얄팍하고 타산적이며 이기적 믿음입니다. 물론 죽느냐 사느냐를 두고 얼마나 속이 탑니까? 그러나 불평한다고 하나님께서 계획을 바꾸시지는 않습니다.
뒤에 바짝 따라붙은 애굽의 추격대와 앞에는 바다를 두고 이제 하나님이 아니면 그대로 비참한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과연 우리라면 어떻게 했을까? 안타까운 것은 그 때까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밤낮으로 에워싸던 하나님인데 군대앞에서 그러한 사실을 까맣게 잊게 된 것입니다. 애굽군대에게 죽일 백성이라면 무슨 이유로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지금까지 인도하신 걸까하며 한번쯤은 믿음으로 밀고 나갈 법도 한데 성경 어디서고 그런 증거가 없습니다. 이런 믿음인줄 주께서 아시고 광야길 훈련이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첫 째, 믿음의 손을 들어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야고보서 4장에 보면 “너희가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지적합니다. 진정 주님의 뜻 가운데서 구하는 것이라면 분명 채우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비전가족 여러분. 믿음의 손을 들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믿는 자의 특권중 특권입니다. 불평하지 않고 믿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이에게 속히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세상의 노예된 당신의 백성을 하나님의 성숙한 자녀로 키우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하나님은 여러분을 꼭 붙잡고 계십니다. 우리가 힘들다는 것은 주앞에서 아직도 잘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힘을 다하여 귀한 믿음의 바라신다면 모두가 하나님의 복된 도구가 되실 줄 믿습니다.
둘 째, 그럼에도 불구한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구원은 약속에 근거하고 그 약속은 하나님의 생명사랑에서 출발합니다. 증거를 보여야 믿는 이스라엘이었지만 지속적으로 키우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직 미약하기 짝이 없는 훈련생을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우리가 훗날 차지하게 될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제사장된 백성으로서 경건의 삶을 살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우리 앞에는 여러 가지의 교육과 훈련이 있더라도 훈련 후의 영광을 기억하면서 성실과 최선으로 임하면 주님의 아름다운 때에 놀라운 것으로 증거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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