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22. 주일오후예배<히10:32-39.믿음으로 이루는 인내와 약속>
일명 사랑의 장이라고 하는 고전 13장은 사랑을 말할 때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치 않으며 교만치 않으며 무례히 행하지 않으며 자기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내지 않으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는데 사랑은 그 시작을 오래 참는 것으로 시작해서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으로 세 번이나 겹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인내의 믿음으로 이룩하는 하늘의 큰 상과 받을 약속이 그 주제입니다. 본문 전에 26절에서 31절은 예수그리스도의 흘린 언약의 거룩한 피를 무시(29절)하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는 큰 벌을 받는다고 분명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한편 본문 35-36절은 우리가 인내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받게 될 큰 상과 약속을 선언합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큰 상과 약속은 어떻게 이뤄져 갑니까?
1. 믿음으로 이루는 인내입니다.
본문 32절에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당시의 상황은 매우 긴박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은 물론이요, 온 가족의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심각하고 두려운 환경이었습니다. 최소한 조롱당하고 매를 맞고 채찍과 돌에 쓰러지기가 일수였습니다. 지금 이렇게 편안하고 풍요로운 환경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참혹한 일들이 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평화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특별히 주님위해 고난을 당하지도 않고 거저 받은 구원을 감격하는 일은 어찌 보면 초대교회시절보다 훨씬 어려운 일일 겁니다. 핍박없는 이 시대에 우리는 우리가 받은 구원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위협이 코앞까지 왔다갔다해본 사람은 죽음과 죄악에서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위대하고 감사한 일인지 절감하게 됩니다.
종교개혁 때의 일입니다. 독일에서 20세의 한 청년이 잡혀서 모진 고문을 당합니다. 양팔을 벌려 십자나무말뚝에 묶은 채 앞에 굶은 사자를 풀어놓았습니다. 청년은 태연하게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사자는 으르렁거리면서도 막상 덤비지 않았습니다. 다시 형집행자가 성난 황소를 그 앞에 풀어놓고 황소머리에 뜨거운 물을 끼얹었습니다. 흥분한 소가 이리저리 뛰고 곧 덤빌 것 같이 앞발로 흙을 연신 파 제쳤으나 기도하고 있는 청년에게 이상하게도 덤비지 않았습니다. 형집행자는 결국 그에게 칼을 내려 피부를 베끼고 목을 베어 강물에 던졌습니다. 그는 그러나 죽기 직전까지 찬송을 웅얼거렸습니다. 34절, 35절을 읽습니다.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험한 고통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믿음입니다.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아는 믿음입니다. 할렐루야.
예전에 근로자재형저축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급료에서 많이 떼면 뗄수록 기뻐합니다. 이율이 매우 높고 정부에서 지원이 나와 몇 년 뒤 목돈으로 받을 때는 소홀치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에 보장이 확실하고 후한 것은 더 내지 못해서 안타까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 말씀은 복음입니다. 약속 있는 복음입니다. 복음의 총결산은 천국입니다. 은행이 무너지고 나라가 망해도 주님 나라 천국은 망하거나 사라지지 않고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통치아래 놓이고 기쁜 삶을 끝도 없이 사는 겁니다. 그리고 그 중간결산은 이 세상에서 현실로 늘 증거되고 예표되는 행하는 믿음의 삶입니다. 믿음은, 다시한번 선포하건대 진정한 의미의 능력입니다. 기쁨입니다. 환경을 이기고 하나님을 노래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을 위해서 우리가 희생하고 인내해야 하는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 곧 영생하시는 하나님과의 연합, 천국의 영생을 우리가 믿고 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출중한 사람은 잘 인내합니다. 인내가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알고 도리어 기뻐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인내할 능력이 생깁니다. 36절을 함께 읽습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2. 인내함으로 주의 뜻을 행한 후 받는 약속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이뤄야 하는데 반드시 인내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렇게 인내로 이룬 순종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비결이 됩니다. 우리주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무서운 고통을 끝까지 인내하여 영광의 면류관과 모든 권세를 받으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 죄에서 살려내시는 구원의 언약을 이루신 겁니다.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구원하신 이 예수를 바라보시기 축원합니다. 히3:2절에도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인내, 그 능력이 십자가에서 공급되어야 합니다. 온전한 인내를 이루려면 먼저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분을 끊임없이 묵상하며 닮아가야 합니다. 그 분 안에 인내가 있습니다. 인내 끝에 승리와 약속이 있습니다. 주님은 성취된 약속의 표상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깊이 묵상하시고 여러분의 것으로 삼기 바랍니다. 거기 모든 해답이 있는 줄 믿습니다.
3. 담대함으로 얻는 큰 상입니다.
예로부터 믿음의 거장들은 한결같이 세상앞에서 담대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을 함께 읽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합니다. 정녕 주님을 두려워하면 세상이 작아 보입니다.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세상이 두려워지고 사람이 두려워집니다. 환경 앞에 떱니다. 죽음 앞에 떨게 됩니다. 영생이 없는 자들에겐 육신의 끝이 모든 것의 끝이기 때문에 앞이 깜깜한 겁니다. 이세상이 모두인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이 세상에서 결론을 찾아야 기에 80평생이 짧아 허덕이고 초조하고 급하기 짝이 없습니다. 남을 해치고서라도 자기 손아귀에 모든 것을 쥐어야 합니다. 그에겐 천국과 지옥심판이 상관없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불감증입니다. 영적인 눈이 감겨 안보이니 낭떠러지도 모르고 갑니다. 감각이 죽어서 막가는 겁니다.
이는 이미 죽은 자의 비참한 몸부림에 불과합니다.
사랑하는 비전인 여러분. 믿음의 담대함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인한 담대함은 천국을 소유한 자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지기 소원하시면 주께서 영적감각을 열어주셔서 말씀이 꿀처럼 다가옵니다.
믿음으로 인내를 이루세요. 인내함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시면 넉넉히 받게 되는 축복의 약속가운데 없는 게 없는 줄 우리가 믿습니다. 그 약속은 큰 상급이 있는 약속입니다. 약속의 주님을 깊이 생각하시고 그분과 깊은 교제가운데 기뻐하는 믿음의 삶을 나누시고 누리시기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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