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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窓가에서

2010.04.27.크리스챤이란 다른 말로 '뿌리를 찾는 이들’이다

by 설렘심목 2011. 6. 8.

 

 
 

크리스쳔이란 다른 말로...

2010.04.27.

크리스챤이란 다른 말로 ‘뿌리를 찾는 이들’이다.

감귤 한 개를 먹으면서

입맛과 건강과 몸을 주신 하나님을 찾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은 원초적 근원을 찾아 감사하는 일일 것이다.

세상에서는 그나마 감귤을 입에 넣으면서

우장춘박사의 기구한 삶과 애국충정을 생각한다면

그는 작은 뿌리하나를 보는 사람이다.

그러나 뿌리의 기둥과 잔뿌리 모두를 보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으로 가능한 일이다.

 

나는 하나님을 다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선 나를 너무 잘 아신다.

바른 분별이 아니었던 일들, 본의가 아니었던 많은 착오와 오류들,

그런 내 부족과 허물로 힘들어 했던 이웃을 위해

그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범죄를 회개한다.

 

본디 어리석게 태어나 많은 데서 늘 실패하고 넘어진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만은 반듯하게 서서

아름답고 선하게 승리하고 싶다.

부족하기에 더욱 성실하고 정직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되길 원하지만 지나고 나면 늘 아쉬운 날들,

오직 주님 외에 무슨 답이 있겠는가?

주여, 종을 불쌍히 여기소서. 아멘.

2010. 05. 26.

지금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얼마나 많은 대적앞에 종을 가려주셨으며

얼마나 많은 허물을 덮어주셨는가?

오직 주의 선하신 인도와 보호로 종이 지금 여기 있사옵나이다. 아멘.

 

2010. 05.30. 주일아침에..시12:6-8절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

 

세상이 끝내 부조리이며 모순된 것은

타락한 에덴의 연속이란 증거이며

택한 자들에게는 더없는 생명을 향한 몸부림과

그로 인한 삶의 보람과 가치추구와 자기구현의 기회일 것이다.

 

세상이 천국이면

우리는 더 이상 크신 하나님께 그나마 작은 성실과 의지조차

보여드릴 일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 지혜의 부요함을 누구라 알손가?

전교조와 민노총과 극성좌파빨갱이들이 날쳐도

이 나라는 주의 돌보심과 불쌍히 여기심으로 강성하리라.

신(神)이 없다고 외치는 공산주의사상,

그들의 주장에 호감을 느끼는 자들은 그만큼 이 추악한 세상에서

뼈아픈 불평등으로 상처가 깊은 자들의 가여운 호소가

다시 그들의 후손을 괴롭히리란 것도 모를 것이다.

빈부격차의 해소와 계급타파를 부르짖는 자들이

다시 그것을 위하여 신계급을 만들어 다른 무고한 자를 탄압하고

암살하고 또 다른 불평등으로 더 큰 불행을 총체적으로 이뤄간다.

그들은 에덴의 타락이 궁극적으로 장구한 인류사에

어떤 그림을 그려내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악한 세상의 불평등과 다툼과 눈물과 사망은 고금동서 불변이다.

세상의 본래 모습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길은

오직 복음뿐이다.

예수그리스도의 간섭없이는

어떤 길도 길이 아니며 진리도 진리가 아니다.

2010. 06. 12. 주일 

 

진실로진실로 한없이 부족하고 허물많은 나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고 아프게 했을까

간 알게 모르게 저지른 범죄와 실수를

 

우리 좋으신 주님은 에덴의 큰 범죄와 함께 다 용서하실 때

십자가의 피값으로 청산하셨으니

내 남은 짧은 삶은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서만 존재하여야 하리라.

  

사택을 나와 사무실을 향하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뚝방길에 자갈을 어제 다 깔아 이제 먼지가 덜 날릴 것이다.

비가와서 다져지면 몇 안되지만 우리 교회식구들 다니기 좋겠지.

1년을 넘길진 모르지만..

리빙스턴모자를 쓰고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비내리는 교회마당을 천천히 걸었다.

 

사랑이신 주님은

부족하고 허물많은 내게 항상 최고의 복을 아낌없이 부으신다.

삶의 분량은 느낌에 의존하는 것이며 느낌의 분량은 삶의 분량이다.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사랑하여 더 많이 아파하고 더 많이 기뻐하며

더 많은 삶을 누림은 주님주신 풍성한 은사가 아닌가.

2010. 07.17. 토요. 밤비 멈추고 시원한 바람.

주변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지고 아름다운 보화로 가득하다.

보통 내게 있어서 그것들은 모두 원석이다.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연마하며 얼마나 소중하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적어도 그 모든 것들은 보석이다.

내가 부족해서 원석과 보석이 종종 떠나는 아픈 현장마다

주님은 함께 계셨다.

거기 뿐 아니라 주께서는 항상 내 곁을 떠나신 적이 없다.

그럼에도 내 곁에 쓸만한 사람들이 떠났다.

괜찮은 환경도 종종 떠나갔다.

그럼에도 지극히 날 불쌍히 여기셔서 귀히 보시고 사랑하시는 주님은

풍족한 것들로 채우셔서 찬미예수로 남은 생애 부족이 없게 하셨다.

좋으신 하나님이 아니었더라면

내 어찌 들풀 하나를 보면서 이리도 감동할 수 있단 말인가?

 

교회마당 구석구석에 이름없는 작은 꽃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어여쁜지?

어제 아침에는 다리 다친 어린 산비둘기 한 마리가 아반떼 옆에 있는데 달아나지도 못한다.

놀랄까 돌아가 보니 어느 새 차 밑으로 들어가 있었다.

녀석과 대화만 가능하다면 이런 공연한 경계와 적대심이 없어질텐데..

그러면 우리는 즉시 녀석을 데려다가 치료하고 먹이를 주고

건강을 찾게 하여 마음껏 날아 어미품으로 가게 할텐데...

마음이 아파왔다. 아, 그랬구나.

모든 세상의 문제는 대화의 벽으로부터 시작된다.

잃어버린 세월속에 수많은 안타까운 일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대화부족에서 온 것이고

대상 사물과의 대화부족이 항상 문제였던 것이다.

진실로 속내 깊은 곳을 서로 알았더라면

그렇게 배신을 주고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2010.09.24.

인생은 모험을 수반하는 끝없는 순례이며

순례자는 순례의 목마름이 자신이 왜 순례의 길에 올랐는가에 대한

끝없는 질문이어야 한다.

우리의 순례는 결국 생명에 대한 탐색이며

그 목마름은 십자가보혈로만 해결된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피한 모든 답변은..

진정한 의미의 결국이 되지 못한다.

진정한 결론은 반드시 십자가의 보혈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얻게 되는 모든 의미는

인생에 대한 가장 분명한 답을 제시한다.

인간보기에 상당한 합리성을 갖는 것들도

그것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고 영원하지 못하니

언젠가는 변하는 답, 진실하기도 어렵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