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광복절 기념행사를 잠시 보는데 만세 3창에 감동의 눈물이 나려 한다.
나라없는 민족과 교회와 가정은 상상할 수 없기에 나라를 지켜주시는 주님앞에 하나님만세를 불러야 하리라.
소위, 좌파진보라는 이름으로 지금 조국은 교회의 부르짖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얼룩져있다.
그것은 교회가 부패한 탓이리라. 나를 비롯한 목회자들이 철없어 그러한 것이리라.
지도자들은 모두 죽을 죄인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종일 울던 1969년도 막내의 음성을 난 평생 잊지 못한다.
“왜 울고 있어 인마.”“점심부터 굶었단 말야..”
오늘도 그 음성 귀에 쟁쟁하여 허기진 무리들을 대변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아픈 사명이 내게 있다.
거기 주님 날 부르셔서 상상도 못할 영광된 일을 맡기셨으니 그 큰 일거리앞에 어찌 주저하며
어찌 몸을 사려 비겁하랴?
자생좌파진보는 그렇게 의로운 울분속에서 평등을 사모하다가 어느 날 더러운 부자를 보면서 태어난다.
그러므로 보수우익은 반드시 한쪽에서 힘없이 늘어져 있는 퀭한 눈망울을 살펴야 한다.
목회자의 내길을 갈동안 내가 치를 영적전투의 대상 적은 공산주의이다.
이 땅의 소망은 오직 眞善美의 결정체이신 예수님뿐이다.
唯物, 無神論 공산주의 종북일당들이 제아무리 소리쳐도 하나님은 교회를 인하여 우리나라를 保佑하사 품고 가신다.
아, 이제 누가 저 가난한 자의 눈물을 대신 소리치랴?
누가 저 억눌린 자들의 목소리되어 큰소리쳐 신음할 것인가?
정직한 청년이 매월 240만원씩 안먹고 안쓰고 30년을 저축해도 손에 쥐지 못할 거액을 심장튼튼하게 태어나 공을 잘 찬다고 1년 연봉으로 받고 최상의 미녀를 서슴없이 아내로 맞는 세상에서, 300만원이 없어서 어린 자녀를 양팔에 안고 11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엄마의 눈에는 이 세상이 어떻게 보였을까? 그렇다. 지옥이다. 부조리이다. 불평등이다. 모순이다. 온통 불신과 외면과 무관심과 이기심과 그리고 마귀의 굶주린 아가리들 뿐이었을 것이다.
오래 전 부패한 이스라엘에서 소명받은 선지자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충동과 고통으로 외쳤다. “슬프고 아프다.” 머리를 하늘로 치켜든 자라면 마땅히 이제 슬퍼야 하고 아파야 한다.
애곡하는 심경이 아니라면 그는 지도자도, 선포자도, 선지자도 아니다. 그는 다만 삯꾼일 뿐이다.
품삯만 받고 앵무새처럼 뇌까리는 양심의 몰염치가 아픔되어 그를 괴롭힐지니 그의 이름이 수치스러울 것이라.
광복절설교에서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고 무관심은 이기심이요, 무임승차요, 범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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