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데일리] 1984년. 경상남도의 작은 어촌 `월내`에서 가난한 엿장수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먹고살기 힘든데 입만 하나 더 늘려 놓았다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했다. 괄시와 구박 속에 간신히 고등학교를 마치고 가발공장에 들어갔다. 이후 골프장, 식당, 여행사 등을 전전했다.
23세 때 식모살이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100달러짜리 지폐 한 장 들고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갔다. 두 차례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미군 입대. 그 와중에도 학업을 향한 열정은 사그라지지 않았고, 14년간 5개 대학을 옮겨 다닌 끝에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전 미육군 소령 서진규(59) 씨의 이야기다. 42세 때 소령 예편 후 하버드대 석사 과정에 들어간 그녀는 작년 6월, 입학 16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굴곡진 인생 속에서도 포기를 몰랐던 도전정신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서 씨가 졸업식장에서 밝힌 소감이 그 답이 될 듯하다.
"나를 가로막은 벽, 그것이 나의 문이었다."
위기의 순간마다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이를 기회로 `역전`시켰다.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서 씨는 졸업당시 갖은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많은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젊은 시절에는 분노와 오기였어요. `왜 나는 무시 받아야 하나`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해야 돼`라는 오기 때문에 살아왔지요. 그러나 제가 어느 정도 성취한 뒤에는 그 같은 오기와 분노는 사라졌어요. 이제는 `꿈` 때문에 살아가요. 제가 이 나이에 힘들게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노력했던 것도 이 때문이에요. 그리고 요즘에는 제 책을 읽고 희망을 갖게 돼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됐다는 독자들의 편지도 큰 힘이 됐어요."
그녀의 말처럼 자전에세이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북하우스. 1999)는 실의에 빠진 독자들에게 큰 감동과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군인으로서, 학자로서, 어머니로서 살아온 저자의 이야기가 바로 `희망의 증거`였던 것. 특히 낮에는 대학생, 밤에는 웨이트리스로 일과 학업을 병행했던 시절의 일화는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될 만하다.
책에 따르면, 서 씨는 잠잘 때와 식당에서 일하는 시간 이외에는 오직 공부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길을 걸을 때는 단어를 외웠고, 지하철에서는 교과서를 읽었다. 당시 그녀의 영어 실력은 교과서 한 장을 보는데 무려 6시간이 걸리는 수준. 예습으로 단어를 찾고, 책의 여백이 모자랄 정도로 새까맣게 뜻을 적어놓았다.
서 씨가 지닌 열의는 자신의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데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녀는 한 달이 지나도록 강의를 따라잡기 어렵자, 용기를 내어 교수를 찾아갔다. 솔직한 고백에 교수는 시험을 연구실에서 시간제한 없이 치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한영사전을 사용해도 좋고, 설령 답안지의 영어가 서툴더라도 문제 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서 씨는 당시 얻은 깨달음을 이렇게 회고한다.
"사람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늘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돕듯, 서 씨의 교수 역시 그녀가 스스로를 돕는 모습에 감동,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과목에선 미국학생들에게 뒤쳐졌지만, 수학만은 달랐다. 미적분 과목을 들을 때였다. 학기 초 15명에 달했던 학생이, 너무 어렵다면서 한두 명씩 떨어져 나갔다. 종강 무렵엔 절반도 남지 않았다. 서 씨는 그 과목에서 100점 만점에 평균 99.9를 맞았다. 그녀는 책에서 "수학은 대학에서 영어에 시달리던 내게 고향이었다. 한국에서와는 전혀 다른 열등감에 빠져들려는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자존심이었다"고 밝힌다.
수학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던 건 아니다. 수학과 인생을 동일하게 생각한 것이 비결. 실제로 성장기에 주어졌던 환경과 이루고 싶었던 꿈과의 격차가 유난히도 컸던 그녀는, 자신 앞에 닥친 난관을 수학문제처럼 생각했다고 한다. 반드시 해답이 있다고 여겼고, 문제 풀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힘들었던 과거가 부러워."
서 씨를 꼭 닮은 딸 조성아 씨가 자주 하는 말이다. 역경을 견디고 일어선 그녀에게 바치는 찬사요, 노고에 대한 박수라 하겠다. 존경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딸은 엄마의 복제인간이 되고 싶다며, 하버드에서 국제외교를 전공하고 워싱턴주 포트 루이스에서 교육 장교로 활동했다.
군인인 엄마를 따라 미국, 한국, 독일, 일본 등지를 떠도는 터에 초등학교 시절 심각한 언어 장애까지 겪었던 그녀가 어렵게 이룬 쾌거였다. 그야말로 모전여전(母傳女傳)인 셈이다.
다시 서 씨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녀가 외국어를 습득한 과정은 영어공부로 골머리를 썩는 독자라면 주목할 부분. 서 씨가 활용한 건 다름 아닌 텔레비전이었다. 외로운 타향 생활. 세상에 오직 나 혼자라는 공포심을 그녀는 텔레비전을 보며 달랬다. 그러다보니 한 마디 두 마디 아는 단어들이 귀에 들어왔고, 어느 새 문장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실제 생활에서 연속극과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땐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회화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왔다.
일어를 공부할 때도 텔레비전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물론 혹독한 노력과 연습이 뒤따랐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듯하다. 서 씨는 밥 먹을 때, 밥을 짓거나 설거지할 때, 청소할 때, 쇼핑할 때, 심지어는 샤워할 때까지도 쉬지 않고 일어 테이프를 들었다고 한다. 자기 전에도 침대 옆에 테이프를 틀어놓고 듣다가 잠들었다고. 덕분에 그녀는 현재 일본인 앞에서 큰 불편 없이 강연을 할 정도의 일본어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외국어든 다른 공부든, 시간이 쪼들린다는 핑계는 있을 수 없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공부를 하기 싫다는 말과 같다."
이 같은 서 씨의 일침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녀 자신이 시간을 쪼개 공부한 장본인이기에 더욱 그렇다.
서 씨는 무슨 일에 도전하기에 앞서 항상 세 가지 리스트를 작성한다고 한다. 첫째,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둘째,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셋째,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가 그것. 이 세 가지 문제에 답할 수 있다면, 현재의 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란다.
"희망에 도전하려는 나를 알고 있다면, 그 희망은 이미 절반은 이룬 셈"이라는 그녀의 말은, 고단한 삶 속에서 정신적으로 황폐해져가는 이들에게 희망의 싹을 틔워주지 않을까. 서 씨 자신이 `희망의 증거`이니 말이다.
북데일리] 1984년. 경상남도의 작은 어촌 `월내`에서 가난한 엿장수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먹고살기 힘든데 입만 하나 더 늘려 놓았다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했다. 괄시와 구박 속에 간신히 고등학교를 마치고 가발공장에 들어갔다. 이후 골프장, 식당, 여행사 등을 전전했다.
23세 때 식모살이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100달러짜리 지폐 한 장 들고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갔다. 두 차례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미군 입대. 그 와중에도 학업을 향한 열정은 사그라지지 않았고, 14년간 5개 대학을 옮겨 다닌 끝에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전 미육군 소령 서진규(59) 씨의 이야기다. 42세 때 소령 예편 후 하버드대 석사 과정에 들어간 그녀는 작년 6월, 입학 16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굴곡진 인생 속에서도 포기를 몰랐던 도전정신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서 씨가 졸업식장에서 밝힌 소감이 그 답이 될 듯하다.
"나를 가로막은 벽, 그것이 나의 문이었다."
위기의 순간마다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이를 기회로 `역전`시켰다.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서 씨는 졸업당시 갖은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많은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젊은 시절에는 분노와 오기였어요. `왜 나는 무시 받아야 하나`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해야 돼`라는 오기 때문에 살아왔지요. 그러나 제가 어느 정도 성취한 뒤에는 그 같은 오기와 분노는 사라졌어요. 이제는 `꿈` 때문에 살아가요. 제가 이 나이에 힘들게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노력했던 것도 이 때문이에요. 그리고 요즘에는 제 책을 읽고 희망을 갖게 돼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됐다는 독자들의 편지도 큰 힘이 됐어요."
그녀의 말처럼 자전에세이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북하우스. 1999)는 실의에 빠진 독자들에게 큰 감동과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군인으로서, 학자로서, 어머니로서 살아온 저자의 이야기가 바로 `희망의 증거`였던 것. 특히 낮에는 대학생, 밤에는 웨이트리스로 일과 학업을 병행했던 시절의 일화는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될 만하다.
책에 따르면, 서 씨는 잠잘 때와 식당에서 일하는 시간 이외에는 오직 공부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길을 걸을 때는 단어를 외웠고, 지하철에서는 교과서를 읽었다. 당시 그녀의 영어 실력은 교과서 한 장을 보는데 무려 6시간이 걸리는 수준. 예습으로 단어를 찾고, 책의 여백이 모자랄 정도로 새까맣게 뜻을 적어놓았다.
서 씨가 지닌 열의는 자신의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데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녀는 한 달이 지나도록 강의를 따라잡기 어렵자, 용기를 내어 교수를 찾아갔다. 솔직한 고백에 교수는 시험을 연구실에서 시간제한 없이 치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한영사전을 사용해도 좋고, 설령 답안지의 영어가 서툴더라도 문제 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서 씨는 당시 얻은 깨달음을 이렇게 회고한다.
"사람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늘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돕듯, 서 씨의 교수 역시 그녀가 스스로를 돕는 모습에 감동,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과목에선 미국학생들에게 뒤쳐졌지만, 수학만은 달랐다. 미적분 과목을 들을 때였다. 학기 초 15명에 달했던 학생이, 너무 어렵다면서 한두 명씩 떨어져 나갔다. 종강 무렵엔 절반도 남지 않았다. 서 씨는 그 과목에서 100점 만점에 평균 99.9를 맞았다. 그녀는 책에서 "수학은 대학에서 영어에 시달리던 내게 고향이었다. 한국에서와는 전혀 다른 열등감에 빠져들려는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자존심이었다"고 밝힌다.
수학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던 건 아니다. 수학과 인생을 동일하게 생각한 것이 비결. 실제로 성장기에 주어졌던 환경과 이루고 싶었던 꿈과의 격차가 유난히도 컸던 그녀는, 자신 앞에 닥친 난관을 수학문제처럼 생각했다고 한다. 반드시 해답이 있다고 여겼고, 문제 풀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힘들었던 과거가 부러워."
서 씨를 꼭 닮은 딸 조성아 씨가 자주 하는 말이다. 역경을 견디고 일어선 그녀에게 바치는 찬사요, 노고에 대한 박수라 하겠다. 존경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딸은 엄마의 복제인간이 되고 싶다며, 하버드에서 국제외교를 전공하고 워싱턴주 포트 루이스에서 교육 장교로 활동했다.
군인인 엄마를 따라 미국, 한국, 독일, 일본 등지를 떠도는 터에 초등학교 시절 심각한 언어 장애까지 겪었던 그녀가 어렵게 이룬 쾌거였다. 그야말로 모전여전(母傳女傳)인 셈이다.
다시 서 씨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녀가 외국어를 습득한 과정은 영어공부로 골머리를 썩는 독자라면 주목할 부분. 서 씨가 활용한 건 다름 아닌 텔레비전이었다. 외로운 타향 생활. 세상에 오직 나 혼자라는 공포심을 그녀는 텔레비전을 보며 달랬다. 그러다보니 한 마디 두 마디 아는 단어들이 귀에 들어왔고, 어느 새 문장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실제 생활에서 연속극과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땐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회화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왔다.
일어를 공부할 때도 텔레비전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물론 혹독한 노력과 연습이 뒤따랐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듯하다. 서 씨는 밥 먹을 때, 밥을 짓거나 설거지할 때, 청소할 때, 쇼핑할 때, 심지어는 샤워할 때까지도 쉬지 않고 일어 테이프를 들었다고 한다. 자기 전에도 침대 옆에 테이프를 틀어놓고 듣다가 잠들었다고. 덕분에 그녀는 현재 일본인 앞에서 큰 불편 없이 강연을 할 정도의 일본어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외국어든 다른 공부든, 시간이 쪼들린다는 핑계는 있을 수 없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공부를 하기 싫다는 말과 같다."
이 같은 서 씨의 일침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녀 자신이 시간을 쪼개 공부한 장본인이기에 더욱 그렇다.
서 씨는 무슨 일에 도전하기에 앞서 항상 세 가지 리스트를 작성한다고 한다. 첫째,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둘째,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셋째,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가 그것. 이 세 가지 문제에 답할 수 있다면, 현재의 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란다.
"희망에 도전하려는 나를 알고 있다면, 그 희망은 이미 절반은 이룬 셈"이라는 그녀의 말은, 고단한 삶 속에서 정신적으로 황폐해져가는 이들에게 희망의 싹을 틔워주지 않을까. 서 씨 자신이 `희망의 증거`이니 말이다.
김보영 기자 bargdad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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