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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22.05.08. 주일예배<삼하 20:14-22. 아벨성에서 던진 세바의 목>

by 설렘심목 2022. 5. 9.

2022.05.08. 주일예배<삼하 20:14-22. 아벨성에서 던진 세바의 목>

 

오늘 본문은 압살롬의 난이 진압되고 다윗이 입성하는 중에 생긴 일입니다. 다윗이 모든 반란을 평정하고 궁으로 들어오는 일에 유다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지파들이 기득권을 잃게 되자 베냐민 지파에 세바라고 하는 자가 나머지 지파들을 선동합니다. 요압이 이 세바의 난을 진압하려고 진군해 세바와 그 무리가 도망친 아벨성을 포위합니다. 이제 아벨성을 송두리째 불살라버릴 판입니다. 세바와 그 반란군들을 진압하기 위해 성을 모두 불태워 버린다 해도 상황은 압도적이어서 입을 열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곳이 이 에벨성의 곤경입니다. 누구 하나가 들어왔는데 멋모르고 몰살을 당할 처지라는 겁니다.

어찌보면 예수모르고 졸지간에 악한 영의 노예가 되고 하나님의 심판가운데 들어가는 것과 흡사합니다. 아벨성은 지금 죄가 없습니다. 그런데 무차별 공격앞에 놓였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반역자 세바와 그 무리들이 도망쳐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러한 비류 세바가 오늘도 피할 곳을 찾아다니다가 졸고 있는 틈을 타서 감쪽같이 숨어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며 말씀을 받기 바랍니다.

 

1. 세바 하나로 모두 죽게될 위기의 아벨성.

 

유다지파는 다윗을 모셔올 때 다른 지파와 함께 그 행사를 치렀어야 했지만 왕이 유다지파라는 이유로 일방처리했습니다. 세바는 괘씸한 생각이 들었고 남은 지파를 선동해 다윗에게 반감을 부추겼습니다. 여기서 세바의 생각은 사람의 감정과 생각이었지 하나님의 판단은 아닙니다. 세바의 반란군은 막강한 요압 부대에 맥없이 당합니다.

 

아벨성은 자신들이 그간 잘 지내던 형제지파 다윗군대의 공격을 받으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군대가 코앞에 왔습니다. 매우 위태로운 순간입니다. 우리도 종종 이렇게 아벨성 사람들처럼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이유도 깨닫기 전에 불행 속에 빠져드는 걸 알곤 당혹해합니다. 무엇이 아벨성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렸습니까? 무엇이 우릴 갑작스런 불행 속에 던진 걸까?

 

1) 바로 알지 못한 무지입니다.

아벨성 사람들은 세바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사람을 바로 보지 못했습니다. 아벨성의 백성들은 세바가 그럴싸한 말로 현혹하자 정말 다윗은 자기들의 왕이 돼선 안 될 사람으로 여기게 됐습니다. 그리고 세바가 왕이 되면 좋은 세상이 될 줄 믿었습니다. 누가 바르고 누가 잘못된 사람인지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바로 알지 못하면 만사를 그르치게 됩니다. 사람을 바로 알아보는 눈이 열리기 바랍니다. 사람을 바로 보는 지혜의 눈은 기도할 때 비로소 열리는 줄 또한 믿습니다.

 

94:8절입니다. “백성 중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까?”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멀리하면 불분명한 판단으로 흔들리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어지러운 인생, 뭐가 먼저인지 나중인지도 몰라 닥치는 대로 보이는 대로 살아갑니다. 결과는 뻔합니다. 불행의 늪입니다.

 

5:13절입니다.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 하나님의 도를 듣지 못해 깨닫지 못하면 세상 속된 것에 사로잡혀 늘 죄에 찌들고 쫓기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겁니다. 아벨성의 모습니다.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 가운데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아벨성은 지금 세바 한사람을 잘못 만났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을 만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히틀러 한사람의 잘못된 편견이 600만 유대인을 잔혹하게 살상했습니다. 196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우간다는 육군상사출신 이디아민 한 사람을 잘못 만나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과 가난속에 들어갔습니다. 50만명을 학살했고 그 방법에 있어서도 엽기적이어서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이디아민은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한반도가 왜 이렇게 찢어져 싸웁니까. 김일성 한 사람 잘못 만나 70년간 가까이 북한은 저렇게 비참하게 살고 있는 겁니다

아벨성은 지금 세바 한사람 들어와서 성읍 전체가 피범벅이 될 위기 앞에 놓였습니다. 그렇습니다.

 

2) 지극히 작은 것입니다.

우리 안에 가장 작은 세바, 암세포를 봅니다. 생명을 앗아가는 암세포는 실제로 보이지도 않는 작은 것이지만 자기가 속한 몸 전체를 죽입니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지극히 작은 유혹과 욕심이 나를 통째로 삼킨다는 겁니다. 우리가 마땅히 삼가 기도함으로 깨어 살펴야 할 아벨성의 세바는, 3:5절에 이와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대수롭잖은 사소한 것 하나 작은 유혹을 못 이겨 큰 고난을 만납니다. 아주 작은 습관 하나가 나를 일으키기도 하고 쓰러지게도 합니다.

작은 혀의 고백으로 주님 나라 이루기 바랍니다. 성령의 작은 불씨 하나가 되어 많은 악한 영들을 태워서 새롭게 하는 기쁨이 있기를 바랍니다. 22절입니다. “이에 여인이 그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백성에게 나아가매 저희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진지라. 이에 요압이 나팔을 불매 무리가 흩어져 성읍에서 물러나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에게 나아가니라.”

 

2. 지혜로운 여인의 말로 온 성을 지켰습니다.

 

1) 지혜로 말했습니다.

여인은 성의 백성들과 요압장군 사이를 중재합니다. 성을 구출하는 길은 하나, 반란자 세바를 제거하면 됩니다. 모든 병도 그렇듯 우리네 삶의 어느 한 부분이 전체를 멍들게 할 때 알고 보면 간단한 것 하나만 빼내면 되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고 찾아내도 고칠 용기조차 없습니다. 방법도 모릅니다. 성경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우리인생 성곽을 지키는 길은 세바를 찾아내어 없애라는 겁니다. “이에 여인이 그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백성에게 나아가매여인은 그 지혜로 백성들을 설득시켜서 세바를 백성가운데서 분리해 반역자로 정확히 보게 했다는 겁니다. 구변과 설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혜의 왕이신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신 겁니다. 시편기자는 시111:10편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라고 선포, 노래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최선의 해결점은 지혜를 붙잡는 겁니다. 지혜자는 지혜로 말하고 지혜로 알아듣습니다. 아벨성의 여인은 지혜로 말함으로 성 전체가 피로 물들고 몰살당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백성들은 여인의 말을 알아들어 불에 타죽지 않고 모두 살았습니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할 때 비로소 주어지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따라서 모든 악한 상황을 주님 주시는 지혜로 막을 수 있는 줄 믿기 축복합니다.

 

2) 세바의 목을 베어 던졌습니다.

백성들은 여인의 지혜로운 말을 듣고 비로소 세바의 정체를 알았습니다. 전체를 다 죽이는 암과 같은 존재임을 알게 된 겁니다. 그들은 즉시 세바를 끌어내 목을 베었고 성 밖에 있는 요압에게 던졌습니다. 우리 인생의 성곽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세바를 찾아내 목을 쳐 몸 밖, 생각 밖, 일상 밖으로 던져버려야 합니다.

 

세바는 성경에서 불량배, 비류, trouble maker, 난봉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파괴자, 사악한 자, 부도덕한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 안에 이러한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게 비류입니다. 세바에게서 보듯이 아무리 작은 비류라도 성 전체를 죽일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존재입니다. 어떤 것들입니까? 1:29절입니다. 함께 읽으며 우리 속을 살피기를 원합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는 하나님의 결정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비류의 정의입니다.

이 외에도 우리를 송두리째 해칠만한 비류는 숱하게 많습니다. 그것들을 다 나열할 순 없으나 그 비류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교회를 미워하고 멀리하게 하며 하나님에 관한 한 아무 이유 없이 싫어하게 한다는 겁니다. 믿는 일도 무조건이지만 방해공작도 무조건입니다. 악한 영이 틈타 속는 줄도 모르고 속습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이 비류를 어떻게 했습니까? 목을 베어 던졌습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서 잘라내는 겁니다. 우리 내면 안에, 가정 안에, 교회 안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싹을 잘라버리는 겁니다.

 

예배를 소홀히 여기는 게으른 비류가 아직도 있습니까? 예배보다 더 중요한 일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잘못된 세속사상의 난류가 있습니까? 인정사정 보지 않고 잘라내야 합니다. 그리고 성 밖으로 미련 없이 던져버리기 기대합니다.

 

3) 성읍은 평화를 찾았습니다.

세바의 목을 베어 약속대로 성밖에서 기다리는 요압에게 던졌습니다. 그러자 요압이 나팔을 불어 무리들을 해산시키고 그들은 각자 흩어져서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에게 나아갔다고 22절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싣딤에서 비느하스가 모압여인과 음행하는 자를 창에 꿰어 죽일 때 24천명을 죽인 염병이 그쳤습니다. 아이성에서 전리품을 훔친 아간을 죽이자 여리고성의 승리가 보장됐습니다. 세바의 잘린 머리통이 성 아래 떨어지자 작전종료의 나팔소리가 울리고 요압과 군대는 모두 철수했습니다. 아벨성은 아벨성대로, 요압군은 요압군대로 평화를 찾았습니다. 지혜의 한마디가 모두를 살리고 샬롬의 제자리로 돌아가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거될 게 제거되면 평화입니다. 여러분의 성곽인 가정과, 직장과, 그리고 관계와 소유와 가치관이 바른길을 가고 하나님 앞에 평강을 얻으려면 교묘히 우리 안에 숨어있는 비류와 난류를 잡아내 밖으로 던지시기 바랍니다. 비류와 난류는 지혜의 영이신 하나님이 아니고는 찾아내기 어려운 상대입니다.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온전히 맡겨드려 정확히 찾아 확실하게 제거하는 우리 모두이기를 주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