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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20.09.27.주일설교<사49:8~21. 사방을 보라.>

by 설렘심목 2020. 10. 5.

2020.09.27.주일설교<사49:8~21. 사방을 보라.>

회초리를 쳐도 돌아서면 마음 아픈 게 부모입니다. 우상숭배로 관료나 백성이나 다 같이 부패하여 타락한 이스라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분노를 70년의 세월 속에 온갖 불행으로 치릅니다. 그러나 그 불행은 불행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인생이 고생하며 근심하는 것 하나님이 원하는 게 아닙니다. 불순종과 불신앙과 우상숭배로 당한 불행은 불행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간섭하시는 일의 시작입니다. 깨닫고 돌아오라는 신호입니다. 강하게 경고하던 이사야선지자는 경고를 전하다가도 다시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와 소망을 전합니다. 그 사랑과 위로는 하나님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꿈이요, 미래요, 기쁨입니다. “너는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고 하십니다. 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고 하시는 하나님,

 

1. 교회를 백성의 언약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후 인류에게 주신 가장 복된 소식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구약에서 선포하신 하나님자신이었고 구약의 성취였습니다. 그렇게 주님 나라는 주님의 선포대로 주님이 일으키시고 세워가고 계십니다. 주님의 몸이요, 성전 된 우리인생은 주님의 선포를 이루는 언약의 표징이기 때문에 알고 보면 우리의 염려거리는 주님의 신실하신 언약성취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처럼 황폐했던 육체의 길에 약속이라는 씨가 떨어졌습니다. 떨어진 말씀의 씨는 자갈밭을 헤 짚고 들어가 뻗어내려 그 뿌리가 박토된 인생을 옥토 되게 하신 줄 믿습니다.

온 인류에게 마지막 하나님의 선물은 교회를 통한 그리스도의 구원이고 이 약속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요, 그 나라백성으로 천국시민이 된 것입니다. 9절입니다.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헐벗을 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눈을 들어 사방을 볼 때 보이는 하나님의 일은,

 

2. 환경을 뛰어넘어 성취되는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크고 복된 언약, 예수그리스도의 임재가 2천 년 전에 이뤄졌고 다음 그의 몸인 교회들 안에 보혜사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공중 재림의 놀라운 언약성취로 거대한 마무리가 될 것입니다. 베로 동인 채 주님의 명령으로 걸어 나온 나사로처럼 우리도 육체의 결박이 풀리며 신령한 몸으로 주님 부르실 때에 일어날 것입니다. 길에서도 먹고 헐벗은 산에도 우리들의 푸른 초장이 있는 것은 주님 명령이 영생이며 그 선포는 믿고 받는 순간 교회들의 능력과 권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말씀으로 어떤 환경에서도 그 명령을 듣기 원합니다. 주여, 말씀하소서. 험한 바다를 꾸짖어 잠잠하게 하신 주의 명령은 믿고 구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생명이요, 평화입니다. 오늘 이 말씀 능력되어 어딘가 붙잡힌 여러분의 몸과 영이 풀려나 어둠에서 빛을 보며 나그네 길에서 풍성히 먹고 헐벗은 고난의 언덕이 푸른 풀밭으로 변하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0절입니다.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을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 사방을 보라고 하시는 하나님은,

 

3. 언약을 따라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샘물가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인생은 눈물의 강입니다. 피땀 흘리는 수고의 올가미입니다. 거기서 맑은 샘물 그 신선한 곳으로 이끌어내시고 보호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주님께 붙잡히면 더 이상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습니다. 세상이라는 땡볕을 큰손으로 가려 시원한 그늘로 인도하시는 약속의 주님을 찬송합니다. 11~12절입니다.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 어떤 사람은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은 북쪽과 서쪽에서, 어떤 사람은 시님 땅에서 오리라.” 사방을 보라고 하시는 하나님은,

 

4. 세상의 소망,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의 눈을 들어 사방을 본다면 진정 말씀을 따라 사방에서 여러 민족과 인종에 관계없이, 각기 다른 환경에서 마지막 구원과 소망이신 그리스도의 몸, 교회로 모여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교회란 세상의 어떤 기관과도 구별된 곳입니다. 진정한 평화와 평등과 사랑은 교회에 있습니다. 세상은 교회에서 그것들을 배워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을 나무라되 사랑과 하늘의 권세로 이끌어야 합니다. 그런 교회의 가장 큰 주제는 구원과 영생입니다. 아무리 힘을 써도 세상으로서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것이 구원과 영생인데 교회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니 세상이 이 모양입니다.

예배하는 여러분, 세상이 더욱 악해지고 험해져 갈수록 우리에겐 구원의 소망이 짙어갑니다.

환경이 나쁠수록 성도의 믿음은 깊어지고 깊어가는 믿음 속에는 놀라운 권능의 하나님이 계셔서 거긴 모든 것을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본문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이 돌아오길 바라면서 앞에 있던 근심과 고난의 산이 시온의 대로가 될 것입니다. 거기 희망의 찬송이 그치지 않게 하실 겁니다. 책망의 고난 끝에 사방으로 보이는 것은 결국 택자의 성장과 온전케 하심이었습니다. 14~16절입니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면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눈을 들어 사방을 보면 누가 보입니까?

 

5. 잠시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이십니다.

 

자식은 부모님을 까맣게 잊고 살지라도 부모님은 자식을 한시도 잊지 못합니다. 노심초사 늘 자식염려로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부모님보다 더 지극한 사랑으로 우릴 챙기시고 이끌어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고 집중하며 더 높여 더 기쁘시게 해드리는 우리 모두이기를 바랍니다.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할 것인가? 그러나 우리가 주의 마음이 되면 주의 도를 가르칠 수 있다.” 고전2:16절 말씀입니다. 17절입니다.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고 하시는 하나님은,

 

6. 자녀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악한 자들을 떼어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녀의 삶은 부모의 면류관이고 보람이며 영원한 바램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그래서 항상 우리에게서 떠날 줄을 모릅니다. 자녀가 부모의 기쁨을 살피기 전 이미 부모님은 자녀의 미래를 위해 적금을 들어 둡니다. 우리가 주님을 찬송하기도 전에 이미 우리의 행복과 영생을 위해 두루두루 살피시고 계획하셨고 일하시니 오직 감사뿐입니다. 특히 관계의 괴로움을 아시는 주님은 악한 자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하십니다. 18~21절까지 함께 읽습니다.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이는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주민이 많아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자식을 잃었을 때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내게 좁으니 넓혀서 내가 거주하게 하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들을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혀 유리하였거늘 이들을 누가 양육하였는가, 나는 홀로 남았거늘 이들은 어디서 생겼는가 하리라.”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는 주님은,

 

7. 관계의 풍성한 복을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잘 알 듯 최고의 복은 관계의 복입니다. 그리고 소유의 복은 관계를 따라 맨 끝에 나타나는 복입니다. 최고의 관계 하나님의 관계에서 깨닫는 복만한 복도 없고 그 열매는 깨달은 것을 행하는 복입니다. 18절에서 21절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회복되자 이어서 나타나는 관계의 풍성함을 예언합니다. 18절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걸고 하신 언약의 선언인데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몸에 장식을 차듯 모든 무리들로 인해 영광된 삶이 한층 더 돋보이게 되는 것이 믿는 자의 관계형통입니다. 신부의 띠처럼 관계의 형통은 한 사람의 인생을 뚜렷이 드러내 만민 앞에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어여쁘다 칭찬받게 할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친숙하고 깊어지면 모든 관계의 기름부음이 됩니다.

 

예배하는 여러분. 인류역사의 흥망성쇠는 후손들로 평가됩니다. 선견지명을 가진 미래학자나 신학자들은 후손의 교육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눈에 뵈는 모든 것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후손들에게 물려줄 후손의 것이라는 청지기 사상이 성경적인 생각입니다. 모든 세대가 그렇게 청지기 사상으로 좀 불편해도 환경을 생각하고 보호하듯이 신앙생활에서도 현재의 정황이나 환경에 묶이지 말고 눈을 들어 사방을 봐야 합니다. 머지않아 다가올 주님의 언약완성과 그날 주님 앞에 설 날이 하루하루 다가옵니다. 먼저 나는 과연 지금 성령의 눈으로 사방을 보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당장 당한 현실에는 성실과 최선으로 말씀을 따라 행하되 우리의 눈, 곧 소망과 뜻은 오직 사방에 펼쳐져 있는 하나님의 꿈을 바라보기 주님이름으로 당부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눈이 성령에 감동되어 주님보시는 곳에 집중된다면 더 나은 미래와 더 높은 꿈을 이룰 것이며 그 기쁨과 만족은 곧 하나님의 기쁨이요, 하나님의 만족입니다. 그리하여 내 만족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드리는 사람이 되어 더 이상 내 인생 내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고 오직 내 몸을 구하시고 내 영을 천국의 소유로 삼으신 주님을 늘 인정해 드리는 최고의 삶을 사시기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