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6. 주일 오전설교<잠 22:4. 재물과 영광과 생명>
세상일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게 되면 모든 균형이 무너져 한 쪽으로 치우친 열심이 악의 지경을 더욱 넓혀 가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악이란 흉한 마음이며 죄는 악의 증거들입니다. 죄는 반드시 악으로 말합니다. 성경은 죄악을 늘 묶어서 다룹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기도만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찬양만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씀만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치우쳐 있으면 곤란합니다. 롬3:10-12절에 이렇게 지적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하나님을 떠난 결과 깨달음이 없으니 선도 없고 의도 없고 다 한결같이 무익한데, 보니 어딘가 치우쳤다는 것입니다. 치우쳤다는 것은 균형이 무너졌다는 걸 말합니다.
첫째, 국제적 균형감각과 역사의식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좀 부족하고 속도가 나지 않아도 골고루 균형감 있게 가야 합니다.
요즘 교사나 부모님이 말할 때 무엇이든 하나만 잘 하면 된다고 가르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능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지 지성, 감성, 의지에 걸친 전인격적 성숙을 말한 게 아닌데 듣는 자녀들은 결심하고 한 가지에 파고 듭니다. 가슴과 머리, 손발이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잘 익은 과실처럼 골고루 익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6.25남침전쟁이 마무리 되고 60년대로 접어들며 백성들은 너무나 배가 고팠습니다. 이승만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예배와 기도로 시작한 훌륭한 분이었지만 부정부패한 하부조직의 아부에 속아서 3.15부정선거에 이어 4.19혁명과 1960년 5.16군사정권을 불러왔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새마을운동은 허리띠 조르고 열심히 일해 초가지붕 벗겨내고 스레트 올려 우리나라의 경제기적을 이뤄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도 한 자리에 움직이지 않고 오래 있으면 녹이 나고 썩게 됩니다. 군정말기엔 그 조짐이 여기저기 나타났지만 그 측근들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박 전 대통령부부는 시차를 두고 총탄 앞에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전후 경제도탄에서 이 백성들을 구한 귀한 지도자부부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약1:15절에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자라 사망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정권을 내려놓고 명예퇴임을 했더라면 지금처럼 무엇이 어찌되든 민족통일만 하면 된다고 반미 친중, 종북으로 나라를 이렇게 망가뜨리진 않았을 겁니다. 전교조교사들에게 어린 자녀들을 맡길 수 없다는 부모들의 아우성이 없었을 것입니다. 강정구교수라는 자가 “만경봉 주체사상 본받아 민족통일이루자.”며 “위대하신 김일성주석” 운운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대통령이란 자가 “제가 존경하는 한국의 사상가 신영복선행”운운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일일이 예를 들면 끝이 없습니다.
오늘날 공산주의가 몰락한 자유민주적 통일이 아니라 “세대를 아우르고 이념을 뛰어넘어 남북이 하나 되기를 소원하는 자들이, 소위 민족주의라는 미명아래 북한을 묵인하며 결국 공산주의통일을 승인하고 나아가 열심당원처럼 일해 나라를 엉뚱한 데로 끌고 갑니다. 친북이적단체라는 꼬리표를 달고도 버젓이 살아갈 수 있는 요즘 교회말고는 대안이 사실상 없습니다. 김일성왕국은 전대미문의 현대판 폭압 우상세습정치임은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세습우상화엔 생각 바른 사람이 아니라 입 다물고 말 잘 듣는 사람이면 됩니다.
공산주의는 아시다시피 적그리스도단체입니다. 유물론에 의해 하나님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종교를 법으로 없앤 무신론자들입니다. 칼 맑스는 신을 “인간이 필요해서 만든 정신적 허구”라고 했고 엥겔스는 “정신이 물질의 산물”이라는 무신유물론을 주장합니다. 그 뿐 아니라 공산정권은 살인집단입니다. 스탈린에게 죽은 사람은 4천5백만, 모택동에게 죽은 사람은 6백만이나 됩니다. 주로 지주계열의 자본주와 지식층, 종교인, 문화예술인 등으로 노동자, 농민과 기타 천민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혁명의 사냥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월남전을 기억합니까? 전쟁이 터지자 베트남의 대학생들, 천주교사제단, 좌익정치인들이 “월남은 하나다. 미국은 물러가라”고 외치다 후에 그렇게 그들의 소원대로 미국이 물러가자 반미구호를 외치던 좌익들을 통일월맹정권은 남김없이 다 죽였습니다. 약 1천만이 사라졌습니다. 월맹은 과거 중공의 붉은 청년근위대가 경험한 것처럼 지식의 고갈로 국제사회에서 낙제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균형감각이 깨진 곳에 모든 불행은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설교주제는 제목 그대로“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는 분명히 대조를 이루는데 그 대조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처럼 재물과 영광과 생명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존중받는 인권, 선하게 사용되는 물질관과 안정된 후생복지 등은 주로 기독교국가가 선도하고 있습니다. 그 반면 무신론을 주장하고 종교를 탄압하며 세습왕국의 보존을 위해 개인의 인권을 말살시키는 나라는 모두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총칼을 앞세운 무력은 잠시 영광을 누리는 것 같지만 결국 하나님은 바르고 선한 자의 손을 들어주신다는 사실에 아멘입니다.
둘째, 여호와를 경외함이 혼미한 이 시대의 마지막 답입니다.
오늘 주시는 본문을 뒤집어 말한다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자에게 재물과 영광과 생명의 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김정은정권은 반드시 망해 넘어질 것이 자명합니다. 김정은은 아마도, 유고의 인종청소로 26만을 죽인 세기의 살인마 밀로셰비치처럼 네덜란드 헤이그 전범재판소로 가든지 무쏠리니처럼 부하들의 지프차를 타고 한적한 곳에 가서 국민의 이름으로 처형당한 뒤 애인과 함께 밀라노광장에 발가벗긴 채 거꾸로 매달려 있다가 시궁창에 버려지든지 아니면 히틀러처럼 그가 존경하는 뭇솔리니가 처형당한 다음날 내연의 처 에바 브라운과 지휘벙커에서 권총자살을 한 것처럼 입에 권총을 물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를 하지 않는 범죄가 교회들에게 있습니다. 큰 나무둥치가 넘어지면 거기 있던 작고 큰 새둥지들이 모두 부서집니다. 나라 없는 신앙생활은 지옥입니다. 주권 없는 나라의 무너진 경제는 말할 수 없이 비참합니다.
대한민국 정치현장은 아이에게 칼을 맡겨 논 것 같습니다. 십년 전 1.7%의 사학비리를 해결하고자 상당수 기독사학재단을 겨냥한 사학법의 개정으로 시작해 1989년 순수한 교육자 단체 전교협이 탄생 후 거기 대거 짐입된 한총련, 전대협의 운동권교사들로 구성된 전교조의 꾸준한 주체사상운동, 그건 심각한 공산화운동으로 지금 뚜렷한 성공사례가 바로 현재 정치상황이라는 것 잊지 말기 바랍니다. 이만희 신천지집단의 산 옮기기 전력과 꼭 같은 방식으로 나라를 99% 차지했습니다.
어느 나라나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정치에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는 말은 그만큼 정치가 목적을 위해 어떤 것도 희생시킨다는 뜻입니다. 국제정치에도 적과 동지가 따로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세계사를 주장하시며 만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믿습니다. 이미 충분히 경험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고난을 당해도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직 성경의 기준에서 우리의 맹방이 누군지를 판단하며 출발시켜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어차피 세상에 남 잘되는 걸 좋아하는 국가나 개인이 없고 어떤 나라든 자국의 이익을 우선 고려한다면 우리는 깨어서 하나님의 선한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아 형제로 지내야 합니다. 일본은 우상의 나라입니다. 중국도 기독교를 핍박하는 붉은 용의 나라입니다. 그나마 미국은 성경에 손을 얹고 대통령선서를 하는 우리주변 열강 중 유일한 기독교국가입니다. 나라가 워낙 크니까 변두리 한 구석에선 여전히 썩고 냄새나는 곳도 있습니다. 그건 어디나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자명합니다. 우리민족끼리라는 말은 본래 북에서 애용하는 말입니다. 그럴싸한 말로 모든 타민족을 이 땅에서 내쫓고 우리끼리 공산당하자는 겁니다. 친북좌경 반미사상에 젖은 좌파정치인과 주체사상추종세력은 극단적인 배타성 민족주의가 얼마나 위험하고 옹색한 생각인지 생각하질 않습니다. 눈을 들어 멀리 지구촌과 세계사를 한 눈에 보는 역사적인 식견이 필요합니다. 극단의 민족주의가 하나같이 모두 동족의 피를 마시고 수많은 희생을 담보로 권력을 잡은 뒤 민족의 역사를 퇴보하게 했습니다. 가난과 인권유린이 저들의 남은 유산인 것을 부인할 자가 없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북한동포를 사랑하고 그들을 내 민족 내 형제로 아낀다면 북녘동포들을 잔혹하게 억누르고 모진 가난과 질병과 학대 속에서 죽여 가는 세습정권이 속히 무너지도록 기도로 교회의 힘을 모아야 합니다. 바른 역사관과 정치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정치얘기 골머리 아프다며 정치인을 일방적으로 폄하하며 혐오하면 안 됩니다. 정치에 너무 관심이 많아 중독이 되어선 안 되지만 너무 무관심하면 그 정치가 무관심한 국민을 노예로 만들어버립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영적으로 깨어 있어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되기 바랍니다. 이 땅에 마지막 소망은 예수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복음입니다. 우리들이 기도하지 않고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몰라 잘못 손들어주면 우리들의 자녀들이 불행해집니다. 나라가 흔들리면 후손들은 이웃나라로 팔려갑니다. 훗날 우리는 자손 앞에 위대한 선조가 되어야만 합니다.
셋째, 공산주의는 반드시 무너져야 합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통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방향으로 하나가 되는가의 문제입니다. 공산주의로 하나 되는 것은 안 됩니다. 무서운 범죄의 시작입니다. 전교조가 부축이듯 몇몇 극소수의 꼴보기 싫은 재벌들이 미워서 모두 가난해지자는 주장은 반드시 심판받게 됩니다. 공산주의사회에도 일부 지도층은 상상을 초월하는 부와 사치를 누리고 있습니다. 한 때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DJ햇볕정책에 따라 남북과 미국의 중재자를 자청해 온 민족을 들뜨게 했을 때 어느 미국 목사님 한 분이 미국귀빈들을 북한 변두리 탁아소와 식량배급현장을 직접 안내해서 보여주고 사진촬영을 하여 미국 신문에 보도하자 그만 카터의 방북계획이 전면 취소되었던 일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북은 그 목사님을 즉시 추방했습니다. 하마터면 미국도 카터를 통해 실수할 뻔 했습니다. 물론 미국은 워낙 방대한 국력구조를 갖고 있어서 카터는 다른 정보와 이유로도 방북사업을 포기했겠지만 1988년 우리가 올림픽 할 때 북한에서는 약 300만이 굶어죽어 거리에 시신들이 즐비했던 것은 미국의 탁월한 위성첩보사진으로 이미 전 세계에 밝혀진 일입니다. 그러자 놀라 다음 해 1989년 평양축전을 벌였는데 그 때 초청받아온 외국인들은 로봇처럼 움직이는 단체를 보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북한은 지구상에 유일한 군주세습공산주의입니다. 중국, 월남. 쿠바가 공산주의에서 자연스레 자본의 사유화가 이뤄져서 세습군주 공산주의는 안타깝게도 북한 한 곳 뿐입니다. 여기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구분을 잠시 짚고 넘어갑니다. 공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경제개념의 대립이며 자유민주와 군주, 전제정치는 정치이념의 대립입니다. 사회주의는 생산수단과 소유를 사회가 관리하고 개인의 독점을 허용치 않으며 공산주의는 이러한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분배공평을 더해 공유재산제 등 확립된 완전사회주의를 말하는데 무신론과 유물론이 그 경제이념의 기초철학을 이룹니다. 즉 공산주의가 모순과 실패를 예감하여 뒤로 물러난 것이 사회주의고 사회주의는 공산주의 초기단계가 됩니다. 공산주의는 개인을 무시하는 사회주의의 완성판입니다. 이들의 이론은 들을수록 매력적입니다. 뭐든지 불평하는 사람에겐 더 없이 환상적인 이론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젊은이들 가운데 자생공산주의가 생기고 생기면 수그러들지 않는가? 저들은 한번 붙잡히면 도저히 빠져 나오기 힘든 마력에 이성을 잃게 되는데 그것은 투철한 정의감이, 가진 자들의 부패와 부정을 보거나 또는 그로부터 상처를 받으면 돌이킬 수 없는 프롤레타리아 사상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거긴 갖은 열등감과 한이, 큰 위로를 받고 소망을 품게 합니다. 강한 반감, 정의감이 뭉쳐서 이 사상은 한번 갖게 되면 대단한 파괴력을 갖습니다. 제가 젊어 한 때 흙수저의 편에서 철저히 동감했던 부분이라 십분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인 것을 사람들은 세월이 흘러 참혹한 실패를 맛본 후에 비로소 깨닫게 되는데 이때는 이미 많은 세월과 생명을 희생시킨 뒤라는 것입니다.
성실한 부의 창출과 정의로운 분배에 있어서 인간의 결론이 끝내 공평하기 어렵고 끝내 선하기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끝내 죄인이며 죄인의 결론은 어떤 포장을 하더라도 악이라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유구한 인류의 역사가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공평과 사랑과 선은 진실로 이 타락한 지구상에선 불가능합니다. 다만 오직 한 곳, 죄가 없으신 예수님으로부터만 가능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아멘.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고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구한 자들은 모두 불행하게 사라져갔습니다. 혹간 그들 중 복되게 보이는 자들도 드러내어 말하지 못하는 갈등과 번민을 해결받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한 채 죽어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민족끼리라는 단순한 말로 침략자를 민족지도자로 만들고 젊은 피를 바쳐서 도운 혈맹을 외세로 몰아붙여 배은망덕하는 일은 도리가 아닙니다. 우리민족끼리라는 말을 북에서 선호하여 6.15선언일을 ‘우리민족끼리’의 날로 함께 제정하자고 했습니다. 즉 우리민족 외엔 모두 물리쳐야 할 적으로 몰아가는 겁니다. 남자는 의리가 있어야 하고 여자는 절개가 있어야 합니다. 국제사회도 한가지입니다. 사업 잘하는 사람은 현금대신 신용장으로 합니다. 비록 고통을 당하더라도 신의가 있는 사람들은 훗날 역사가 그의 명예를 되돌려 줍니다. 얄팍한 인간은 당장의 이익을 위하여 동지도 때려죽입니다.
러시아 레닌그라드광장에 소년동상이 있는데 그건 우리나라 ‘공산당이 싫어요’동상과 대비됩니다. 식사를 하다가 공산정권에 대하여 불평하는 부모님의 소리를 듣고 철없이 당국에 신고했다가 크게 표창받고 부모는 그날로 사라지게 된 사건입니다. 당시 소련 당국은 아이를 선전도구삼아 화려하게 치장하여 꾸준하게 강연장에 끌고 다녔습니다.
여러분.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누가 주든지 밥 세끼만 잘 먹으면 된다는 식의 말을 하는 사람이 우리가운데는 없습니다. 강도짓해서 먹여주는 밥 얻어먹으면 나중에 강도해야 밥 먹게 됩니다.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국내외로 어수선한 시절에는 더욱 주님 손을 붙들고 믿음으로 단단히 서 있어야 합니다. 균형감 있는 역사관을 바로 정립하고 오직 여호와를 겸손히 경외하여 나라와 가정과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그것은 기도와 바른 정치관, 역사관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우리 교회들과 성도들을 통하여 악한 권세를 누르고 예수승리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담대히 정의 편에 서있음으로 재물과 영광과 생명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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