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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20.08.30.주일설교(출20:22~25. 내게 단을 쌓으면)

by 설렘심목 2020. 9. 10.

2020.08.30.주일설교(20:22~25. 내게 단을 쌓으면)

[꼭 남은 인생이 아니어도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삶의 목적을 창조주의 기쁨을 구하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면 창조주의 기쁨은 어디 있고 무엇인가?

창조주의 기쁨은 당신이 창조한 피조물에 담겨있고 피조물이 당신을 인정하고 바라보며 높임으로 그 관계가 형통한 것에 관련되어 있다. 이를 정확하게 선포, 설명하고 있고 그 시작과 과정과 끝은 예수그리스도시다. 그러므로 주께서 이르셨듯이 성경은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고 그것은 오신다는 예언과 오신 예수, 다시 오실 예수에 관한 것으로 인간에게는 최고최상의 복된 소식인 것이다.

칠십을 넘어섰다. 남은 세월 잠시면 지난다. 어찌하면 주를 조금이라도 더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는 것만이 내 고민이고 근심이어야 한다. 그날 예수님은 잘했다 착하고 성공한 종아라고 하시지 않고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실 것이다. 아버지여, 주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일에 탁월한 지혜를 주시고 후손들이 그리 살게 하옵소서. 아멘.]

 

애급에서 노예 되었던 이스라엘민족이 라암셋의 대탈출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14:17” 인간은 떡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예배로 사는 것이 최상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온 인류에게 미치는 가장 큰 교훈이었고 진리였으며 복된 소식입니다. 그러나 택한 백성들조차 불신앙으로 부패하여 불행을 자초했습니다. 예배가 멈춘 삶과 예배하는 삶의 사이에 복과 저주가 현실로 다가와 너무나 큰 편차로 이스라엘은 깨달을 만도 한데 여전히 그 풍요-타락-징계-회개, 회복의 반복이 여전히 보편적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인생이 죄라는 것을 증거한다고 할 수 밖에 달리 설명이 안되는 부분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 귀한 생명의 양식, 예배로의 결단으로 함께 받아 복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설교제목 내게 단을 쌓으면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예배에 성실하면 내가 네게 찾아가 복을 주리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진정한 의미의 복이 물질과 건강과 명예와 평안에 앞서 그것들을 보장하시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그것들을 고치시고 채우시기 원하시는 하나님과 서로 기뻐하는 사이가 되는 것인 줄 우리가 압니다. 즉 인생최고의 복은 바르고 건강한 신앙, 즉 양질의 믿음입니다. 생활이 윤택해지면 타락하기는 비단 세상만이 아닙니다. 교회와 교회의 역량있는 지도자들이 모두 풍요가운데 여유로워지자 다 타락해 흉악한 풍조와 사상이 점점 파고드는 데도 우리교회만 부흥하면 아무 관계없다는 듯 비겁한 결과 오늘날 중공폐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아 곤란해진 교회들을 봅니다. 로마 네로의 핍박을 받아 지하 수백m까지 굴을 파고 내려가 생명을 걸고 예배하던 카타쿰의 신앙은 온데간데 없고 이제 이렇게 세상을 나무라기는커녕 손발 묶인 채 끌려가고 있습니다. 예배는 생명입니다. 본문 23절입니다.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인생 최고의 복, 바르고 건강한 신앙은 첫째,

 

1. 인간 자신을 위하여 신상을 만들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착각하지 않습니다.

 

신앙이 깊어갈수록 성도는 그 신앙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을 찾게 됩니다. 환경의 눌림에서, 절박한 경제에서, 육체의 질병에서, 외로움과 서러움과 억울함에서 답답한 마음을 갖고 종교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후로는 주의 영이 깨닫게 하셔서 삶과 신앙의 모든 목적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구원하신 복음의 본체 예수님인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은 인간이라는 우상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됩니다.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인간의 가장 높은 지혜, 지혜 중 지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높여드리는 것이고 하나님경외사상은 모든 형통의 시작인줄 우리가 믿고 늘 경험합니다. 진정한 인생사랑, 하나님사랑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는 사랑이십니다. 이번엔 24입니다.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인생 최고의 복, 바르고 건강한 신앙은 둘째,

 

2. 하나님을 향하여 제단을 쌓고 귀한 것으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결국 예배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며 예배를 통한 하나님의 기쁨, 그것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그 예배의 핵심인 예물은 당연히 예배자 자신입니다. 본문은 뭐라고 밝히는지 봅니다. 본문은 제물을 양과 소로 드리는 번제와 화목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대 농경사회에서 양과 소는 생계문제와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재산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쓰고 남는 것으로 드리는 게 아니라 없어선 안 될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도 쓰고 남는 시간을 드리는 게 아니라 바쁜 중에 아까운 시간을 드리는 겁니다. 가장 귀한 것을 원하시는 하나님,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신 하나님이 그 예물을 통해 정작 원하시는 것은 드리는 자의 마음과 정성이며 그것을 받으신 후 삶의 요긴한 것으로 다시 되돌려주시는 것을 우리가 늘 믿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물의 형식은 번제와 화목제입니다. 번제는 제물을 모두 태워 죄의 불사름을 뜻하지만 화목제는 제물의 일부를 태우고 나머지는 제사장과 예배자가 제사 후 함께 먹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목제는 주로 나실인의 헌신제사에 쓰입니다. 정리해보면 하나님을 향해 예배를 드릴 때 가장 소중한 것을 드려 하나님 앞에 죄가 씻기고 그 죄 청산으로 하나님과 화목하여 기뻐하면 어디서든지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 찾아오셔서 복을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약속은 이미 예수님이 생명을 드림으로 골고다에서 완성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을 믿고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 즉 생명과 몸을 주님께 드려 온전히 불살라 번제되게 하고 하나님과 화목케 하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허락하신 모든 일과 터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동행하시면 수치가 영광으로, 화가 복이 되는 줄 믿습니다. 끝으로 25절입니다.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인생 최고의 복, 바르고 건강한 신앙, 믿음은 셋째,

 

3.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아 있는 모습 그대로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은 진실합니다. 진실은 다른 그럴싸한 것으로 포장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속속들이 다 아시는 그 앞에 정직함으로 서는 것 말고 방법이 없습니다.

신명기 276절에도 본문과 같은 내용이 나오는데 거기선 하나님과 사귀는 법이 나옵니다.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27:6” 우리들의 신앙양심이 있는 그대로, 이미 용서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그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은 속아도 하나님은 다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돌이키는 자의 심령을 기뻐하십니다. 자신의 죄와 무능을 있는 그대로 고하면서 부르짖을 때 그 예배하는 영혼과, 그 예물과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사람을 감동시키려고 하는 기도나 설교보다는 주님 앞에서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예배당내부의 화려함이 사람의 눈을 지나치게 끌어 그것이 말씀보다 더 기억된다면 이는 분명 정으로 쪼아 만든 부정함이 됩니다. 허물과 죄는 어떤 것으로도 가려지지 않고 예수의 보혈로만 가려 질 수 있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제단에 나아갈 때에 주의 보혈만이 우리 구원의 근거시니 모든 인생대소사 그 형통의 첫 시작인 정직한 예배에 최선을 다하여 주실 복을 다 받으시기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