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강단

2020.06.14. 주일예배<히13:7-8.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리스도>

by 설렘심목 2020. 6. 14.

2020.06.14. 주일예배<히13:7-8.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리스도>

조상의 제사를 모시던 사람이 사정상 모시지 못하게 되면 형제 친족중 다른 집이 위패를 모셔가서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위패는 망자의 성명, 직함 등을 나무판에 기록해서 작은 함에 뚜껑을 만들어 세워두는 함입니다.

자손들은 그 위패를 조상의 혼백이 접신하는 경건한 처소로 믿고 그래서 매우 소중하게 다룹니다. 부모님 생전에 속을 썩이던 자손도 떠난 뒤에는 위패를 소중히 여겨 그 앞에 절하고 향을 피웁니다. 근거도 없고 허무한 것에 용서를 구하고 잘살게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범죄인데 영이 죽어 깨닫지 못하면 착한 효심으로 우상숭배합니다. 성도들 중에도 마치 위패를 잘 모시듯이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정성껏 드리는 것으로 섬김의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예배는 분명 성도의 가장 중요한 신앙의 실천덕목 중 으뜸입니다. 그러나 예배가 예배로서의 진정한 가치를 갖게 되는 일은 예배 후에 연결되는 생활이 예배의 연속이어야 한다는 영적 거룩한 부담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합니다.

 

1-6절에선 여러 실생활의 교훈을 전함으로 어찌하면 하나님을 잘 섬기는지를 설명합니다. 형제사랑, 손님대접,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는 것, 혼인을 귀히 여기고 음행을 피하는 것, 돈을 사랑하지 말고 가진 것에 만족할 것과 모든 일에 우릴 떠나지 않고 늘 함께 계셔서 돕는 주를 믿어 의뢰하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 등입니다. 그리고 여기 성도의 바른 삶에 모본을 마무리하는 중요한 한마디가 있습니다. 7절 함께 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아멘. 가는 길 힘들어도 실망 말아야 할 이유, 그 첫째

 

1. 앞서 간 믿음의 승리자들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그 말씀을 우리에게 전승하고 먼저 떠나 간 믿음의 선지들을 우리는 면밀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저들에게 위대한 믿음의 승리를 주신 하나님의 증거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험악하고 위태로운 곳입니다. 한치 앞을 모르는 길을 일백 평생 안내자나 지침서 없이 간다는 것은 그야알로 무지 내지는 교만으로 가득한 허세일 것입니다. 우리 성도의 길은 얼마나 복되고 감사합니까?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주 하나님을 뵙고 영혼의 본향과 현주소와 기다리시는 그분과 교제하고 있으니 더 무슨 소원이 있겠습니까? 특별히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는 은혜는 앞서 간 믿음의 선지들의 행보가 너무나 뚜렷이 우리에게 증거와 교과서로서 성경을 통해 지도하고 있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언급한 믿음의 승리자들, 에녹,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다니엘, 요셉, 바울, 스데반이나 야고보, 세례요한 등 성경의 선진들이 있는가 하면 가까이 손양원목사, 주기철목사, 초대선교사 언더우드나 아펜젤러, 토마스선교사 같은 분들입니다. 그밖에도 수많은 믿음의 훌륭한 선진들이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 생명을 기꺼이 바친 믿음의 선조들은 우리에게 지금도 그들이 승리한 삶의 흔적을 통하여 많은 것을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4:17.” 순교나 한 평생 순교자적 희생의 삶은 고통과 함께 잠시 지나가지만 하늘의 상급은 영원하다는 데에 우리의 모든 소망과 그 가치는 순간의 감격이나 흥분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째로 드려야 할 중요한 이유가 바로 주께서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에 근거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손양원목사나 주기철목사의 희생은 아브라함의 모리아산 이삭을 드린 것 못지않은 고통이었습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복음전파를 위해 가족과 함께 비참한 최후를 조선 땅에서 맞이했습니다. 어둠의 땅 조선에 빛을 뿌리기 위해 자신들은 기꺼이 고통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이 믿음의 귀한 선진들은 잠시 지나는 이 세상고통이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가로막을 수 없다는 알았습니다.

 

본 히브리서 11장은 본문을 받쳐주는 내용으로 믿음에 의지해 귀한 본을 남긴 성경의 인물들을 소개합니다. 간단히 살펴봅니다.

1) 믿음으로 방주를 준비한 노아입니다. 120년을 산위에 큰 배를 지었습니다.

2) 믿음으로 정한 곳 없이 가족을 이끌고 길을 나섰던 아브라함, 그는 훗날 믿음으로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립니다.

3) 믿음으로 모세는 화려한 애급의 왕자를 포기했고 모진 세월을 택했습니다.

4) 견고한 성 여리고는 믿음으로 여섯 바퀴를 돌고 일곱 번째 찬양과 동시에 무너졌습니다.

5) 미녀계에 속아 눈이 뽑힌 삼손은 믿음으로 올린 마지막 기도에 블레셋 궁정을 무너뜨려 하나님과 삼손을 조롱하던 삼천 명의 패역한 우상숭배자들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6) 믿음으로 다윗은 손안에 들어온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주었습니다.

7) 믿음으로 다니엘은 용광로 뜨거운 불가마속에서 눈썹하나 그슬리지 않았고 사자 굴에서 아무 일없이 살아나왔습니다.

 

오직 주님께 소망과 가치와 목적을 두는 성도들의 삶은 그 헌신과 희생이, 보이는 지체들을 통해 이뤄지게 됩니다. 형제들을 사랑하고 나그네를 후대하고 학대받는 이들을 생각하는 것, 그리고 결혼을 귀히 여겨 음행을 피하고 돈을 사랑하지 않는 것들로서 성도의 예배자적인 삶이 곧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임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비록 모함과 오해가 있을지라도 낙심치 말고 택자의 모임 교회를 주님께 하듯 잘 섬기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다 사라져가도 예수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세상과 사람 앞에 실망하더라도 그들을 통하여 끝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할 이유, 둘째

 

2. 영원토록 동일하신 우리의 생명, 우리의 소망, 기쁨, 예수그리스도십니다.

 

세상에 아름답고 빛나는 것들은 참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고귀하고 품격있는 것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반드시 내 앞에서 사라진다는 겁니다. 헤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불변하는 이 엄연한 사실 앞에 우리는 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문명의 정점에 결론적으로 드러나는 하나는 언제나 인생이 고독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라질 것이고 네가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인생들의 허망한 논제는 그렇게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도 끝도 없이 존재하는 영원한 그 무엇이 없냐는 것입니다. 이 영원을 찾아 인간은 무수한 세월을 헤맸지만 허사였습니다. 유한한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우리 인생에게 최고의 소망은 오직 하나 영원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이 먼저 찾아주시고 눈을 열어주시기 전까진 허사였습니다. 하나님이 그 답을 갖고 인간을 찾아오셨습니다. 어떤 답입니까?

 

요11:25-26절입니다.“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번에는 고후5:1절입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성도여러분. 이제 우리는 성경을 통해 무수한 믿음의 선지들과 그 행적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친절히 알려주는 인생의 이정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찌 행하며 어디로 가야할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답이 있는데도 여전히 헤매며 불행한 많은 사람들 앞에 성경은 지금도 선포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이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잠1:33) 여기서 “나”라 함은 지혜를 말하며 지혜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두려워할 줄 아는 하나님경외를 의미합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불변동일하십니다. 오늘 말씀이 그렇게 주님의 영원성과 불변동일성을 선포합니다. 다만 그 분을 얼마나 흔들림 없이 분명하게 믿고 받아들이느냐는 여러분과 저의 몫으로 남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과 곧 있을 재림을 믿는 신앙은 그러므로 어떤 것과도 비견할 수 없는 큰 인생자산이요, 능력입니다. 잠시 다녀가는 이슬 같은 인생길입니다. 어제 풀잎 끝에 맺혔던 이슬을 오늘 기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영원에 비하면 인생 100은 참으로 눈 깜박할 사이입니다. 아브라함으로 시작해서 모세, 다윗, 바울 모두 믿음으로 승리하여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남기고 본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도 당시에는 얼마나 긴 세월을 힘들게 자신과 환경과 싸웠겠습니까? 야곱의 고백처럼 참으로 험악한 세월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영원한 주님나라에서 복된 영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잠시 지나 후손들이 우릴 말할 때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이었노라고 자랑하며 전해지길 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잘 섬기는 것은 바로 옆 지체들을 잘 섬기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후손들을 잘 키워 먼 훗날 우리보다 더 나은 믿음의 조상들이 풍성하게 나와야 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따라 이 세상 잠시 지날 때 사람보지 말고, 환경보지 말고 믿음으로 잘 참아 승리한 선진들을 기억하며 오직 주님 앞에 바로 믿고 바로 살아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큰 상급을 확정하는 저와 여러분이시기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