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1.주일설교<계1:1-3.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
[1,900 여 년 전 8월 한가로운 어느 날 모든 도시가 한때의 모습을 '동작 그만'인 채 미라가 됐다. 서재엔 두루마리 종이가, 작업장에는 연장이, 목욕탕에는 수세미가, 여인숙 탁자에는 손님들이 서둘러 계산한 돈이 그대로 놓여 있다. 1594년 수로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폼페이는 그 옛날의 모습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사람들로 하여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얼마나 갑작스레 닥친 재앙이었던지, 너무나 비참한 사람들의 화석, 엄마들은 용암이 덮치는 순간 힘껏 아기를 감싸 안았고, 어떤 이는 금붙이를 꽉 움켜쥔 채 돌 더미에 깔려 있었다. 어느 집 문턱에서는 젊은 여자 둘이 집안으로 들어가 귀중품을 꺼내려고 망설이는 몸짓의 화석이 됐고, 한 집에서는 장례식을 치르고 있었던 듯 문상객들이 둘러앉은 그대로 결국 자신들의 장례식을 하게 된 것이었다. 놀라운 모습은 죽음의 순간을 그대로 담고 있는 사람들의 화석뿐만 아니라 오늘날과 비교해서 절대 뒤지지 않는 훌륭한 문명과 문화와 문화재가 고스란히 굳은 화석이 되어 당시를 말하고 있다.]
몇 초 후에 몇 분 후에 또는 얼마 후에 무슨 일이 우리 앞에 어떻게 일어날지 전혀 모르고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불확실성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한 가지 인간은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 외엔 모두 확실하지 않습니다. 눈을 뜨고 다 보는 것 같아도 안 보이는 사실이 인생을 압박하는데 아무도 어찌하지 못합니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또는 앞으로 어떠한 삶이 전개될지 전혀 모르고 하루하루 날이 밝고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삶은 근원부터 다릅니다. 인생의 근본출발지와 과정과 종착역과 그 후의 영원에 대하여 알고 가는 것이 성도의 길입니다.
그럼에도 세상 사람이나 성도나 늘 불안하고 염려가 떠나지 않기는 한가지입니다. 미래 일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7:14절에는 형통한 날의 기쁨과 곤고한 날의 성찰을 통하여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장래 일을 알지 못하게 하셨다고 했는데 오늘 본문은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선명하게 요한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희비가 엇갈리는 인생살이에서 영원한 소망을 미리 보여주심으로 어떤 정황에도 주를 믿어 잘 섬기면 요한에게 보여주신 그 나라가 반드시 온다는 것으로 큰 위로를 삼게 하신 것입니다. 각 구절을 통해 진정한 주님의 위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그 위로의 계시는..
1. 반드시 일어날 일들입니다.
밧모섬에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 늙은 요한에게 찾아오신 주님의 목적은 고난 받는 아시아의 교회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시공을 떠나 주 재림 이전에 이 땅에서 주를 믿고 앙모하는 모든 자들의 귀에 다 들려 누구나 기억해야 할 놀라운 일들, 반드시 일어날 일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일어날 일이란 말에 ‘반드시’가 갖는 어원적 의미는 기필코, 끝내 등 절대적인 확실성을 말합니다. 즉 주변정황이나 어떤 조건이나 변수에도 전혀 관계없이 기어코 일어날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일어날 하나님의 승리, 계시록의 결론은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이 당연한 하나님의 승리는 저와 여러분, 곧 교회의 승리로 증거된다는 사실 잊지 않기 바랍니다.
2. 속히 일어날 일들입니다.
속히 일어난다는 일은 결국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주후 4세기 초 로마는 기독교핍박을 멈추고 오히려 국교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일천년의 전성시대를 누린 후 무너진 로마와 함께 끈질긴 반기독교세력인 공산주의가 탄생합니다. 한동안 전도의 필요성조차 못 느낄 정도로 풍성해진 교회들은 속히 일어날 묵시의 사건들이 로마의 멸망으로 이뤄졌다고 여기고 다시는 계시록을 들여다 보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천년을 하루처럼, 하루를 천년처럼 보시는 주님 앞에 인류의 구원역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성경은 한편 이뤄졌고 한편 이뤄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주시는 본문 말씀은 그렇게 모든 역사 속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어날 일들이 속히 일어난다고 증거합니다.
로마의 멸망과 무관하게 인류에게 중단 없이 다가오고 있는 주님의 재림은 계시록의 내용처럼 대단한 날일 것입니다. 결코 그날은 머뭇거리지 않고 본문에 예언된 그대로 반드시 속히 우리 앞에 주님의 재림과 함께 나타납니다. 마24:21절입니다.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우리 앞에 반드시 속히 될 일입니다.
3. 성도가 그렇게도 목말라 기다리는 승리의 기쁜 일들입니다.
벧후 3:10절에는 계시록에서 보여주신 그 날 주의 재림현상을 네 가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첫째, 도적같이 오고 둘째,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셋째,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넷째,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얼마나 희망적입니까?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성도가 그렇게도 목말라 기다리는 승리의 기쁜 일들이 참으로 두렵게 보이는 우주적 사실로 다가올 것입니다. 하늘이 불에 타서 녹아 사라지고 모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는 광경을 상상하면 실로 놀랍고 두렵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그러한 공포 한 가운데에서 약속으로 인해 완벽한 보호를 받아 하나님의 의가 통치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확실하게 믿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의 흉한 마귀의 등장과 으스스하고 두려운 우주적 대환난의 장면은 그것이 심할수록 포근한 주님 품안에 성도의 안전은 더욱 아늑한 보호가 됩니다. 본문 계1:3절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4. 오직 주님을 믿고 그 날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씀 따라 사는 것이 복입니다.
언젠가 누구에게나 반드시 닥칠 두 가지 사실을 성경이 지적하는데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세상에선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불안과 공포로 받아들이지만 성도에게는 가장 소중한 희망과 기쁨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주님의 재림이든 아니면 우리가 주님 앞에 먼저 가든 죽음이 출발점이 되는 새 하늘 새 땅의 시작은 육신을 버리는 순간입니다. 천국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땐 그때고 내가 당장 죽을 판이야, 나중 뭐가 어떻게 될지 뭔 상관” 미래를 완전히 포기한 이런 불신의 말이 우리들에게 들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 믿고 순종하면 그대로 복이 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고전15:19절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부활의 약속과 소망이 없다면 교회만큼 불쌍한 존재도 이 땅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벧후3:11-12a절에서 말씀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즉 계1:3절의 지적처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가 복되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주님을 믿어 그 날에 대한 기대로 늘 마음이 부풀어 있다면 그 확신과 기대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그 날을 사모하게 될 것인데 바로 그 상태 자체가 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말씀을 제대로 받은 저와 여러분이라면 우린 믿음의 복을 가득 받았습니다. 아무리 소유가 풍성해도 믿음이 짧으면 그 나라와 그 날에 대한 소망이 희미해서 그 풍성한 소유에 노예가 되고 맙니다. 창고가 넉넉하면 행복하고 은행잔고가 줄어들면 불안하고 안절부절하게 되는데 물질이 여러분을 다스리지 못하게 하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이 여러분을 다스리도록 통치권의 보좌를 내 드리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변하고 달라져도 주님은 전혀 불변이요, 영생하시는 진리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그날의 정황이 두려울수록 우리의 안보와 영원한 소망은 더욱 두드러지게 최고최상의 복으로 다가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찌 보면 숨 막힐 것 같은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여전히 샘솟는 주님향한 소망과 기쁨이 멈추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주님의 말씀대로 반드시 그리고 속히 우리 앞에 다가올 일들이 너무나 가슴 뛰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신 말씀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언약과 계시로 믿어 받았다면 오직 성경중심적인 삶으로 날마다 말씀을 읽고 듣고 쓰고 거기 적힌 대로 살기로 결단하기 바랍니다. 본문에는 분명 그것이 복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복된 인생, 믿음으로 시작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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