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8.주일설교<출17:1-7.므리바 반석의 생수와 복음>
[남을 사랑하는 것이 결국 자기를 위한 일이다. 자유하려면 용서라는 끝없는 훈련이 필요하고 경건연습이란 자기통제를 말한다. 우리는 모두 고장이 난 핸들을 에덴에서 물려받았다. 스승을 애써 찾지 말자. 내 원수가 내 스승이다. 그를 어찌 대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이 달라진다. 원수를 분석하면 온통 교훈으로 가득하다. 내 행복은 내안에 있는 자비심과 인내와 희생이다. 원인을 알면 원망시비가 그쳐 괴로울 일이 없어진다. 나는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육체가 아니라 잠시 육체로 사는 영원한 영적존재로서 평생 순간순간을 통해 영원한 삶의 질을 결정해가는 중요한 존재이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 길을 잃고 맴도는 인생들 가운데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
산을 옮길 수는 있어도 습관을 바꾸기 어렵고 바다는 메울 수 있어도 욕심을 채울 수는 없다. 그러나 습관과 욕심을 잘 활용한다면 훌륭한 삶이 다가올 것이다. 탐욕과 집착, 성냄과 질투와 교만과 무지와 아집과 허영의 원수를 물리치자. 욕망과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내 손발이 나를 해치는 원수가 되고 자신을 이겨낸 사람은 원수도 친구가 된다. 진짜 원수는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꽃 중의 꽃은 웃음꽃이다.]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택한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군중 이하도 이상도 아닌 전형적인 보통의 무리들이었습니다. 므리바를 맛사라고도 부르는데 므리바란 “다투다.” 란 뜻이고 맛사란 말은 “시험하다.” 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불평이 극에 달하자 이제 자신을 향하여 돌을 드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은 호렙산 반석을 치라고 명령하십니다. 반석은 갈라지고 생수가 솟아올라 백성들의 목마름이 해결됩니다. 후에 바울사도는 이 반석을 예수그리스도로, 생수를 신령한 음료로 고전10:4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주시는 은혜가 오늘 모두에게 임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과 동행의 권세가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 출17:1-2절을 함께 읽습니다. “이스라엘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 본문 말씀의 배경은 사막여행길 한가운데입니다. 사막에서 물이 없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모세 앞에 백성들은 불평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당장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죽일 수도 있는 험악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은 생명의 위기 앞에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살아남을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합니다. 지도자, 체면, 예절, 품격, 다 편안할 때 하는 말입니다. 모세가 뭐라고 합니까?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백성들이 목말라 쓰러질 것 같은 위기에 그들이 모세에게 보인 태도는 인도자이신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신뢰했다면 모세 앞에 지파의 대표들이 모여 대책을 강구하며 함께 부르짖어야 했습니다. 모세와 다투고자 한 것은 모세를 부리시는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원인은 언제나 하나, 불신앙, 하나님을 믿지 못한 죄였습니다.
5절, 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 나일 강을 쳤던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의 지팡이입니다. 그것은 생사를 마음대로 취하던 하나님임재의 상징입니다. 모세에게 그것을 들고 반석을 치라는 것은 문제가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6절 앞부분을 함께 읽습니다.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이번엔 7절을 함께 읽습니다.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즉 하나님을 향하여 므리바, 다툼과 불신앙과 불평의 몽둥이, 그리고 맛사, 시험의 막대기를 내리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여호와께선 깨어진 바위로 백성들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인간의 죄성을 그대로 한 몸에 담고 인간의 불신과 배신의 나무에 매달려 내침을 당한 것입니다. 그 반석은 둘로 갈라져 쪼개졌습니다. 생수가 치솟아 올라왔습니다. 백성들은 그 물로 생명을 구하고 하나님의 기적, 구원 앞에 엎드립니다. 성경은 주님의 복음을 항상 생수에 비해 설명합니다.
여기서 잠시 므리바에 대해 짚고 갑니다. 므리바는 가데스에서 일어난 일과 호렙산 부근에서 일어난 두 개의 사건을 성경은 각각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출17:7절의 므리바는 반석을 치라고 해서 쳤고 민20:11절 이하의 므리바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는 말씀에 모세가 혈기로 쳤던 바위입니다. 그러므로 출17장의 므리바는 분노하신 하나님의 명령대로 쳐서 모세의 허물이 없지만 민20장의 므리바는 단순히 명령하라는 말씀에 모세의 혈기로 쳐서 하나님 앞에 허물이 됐습니다. 하나님의 분노를 받아 하는 일은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나 우리 스스로의 분노로 일을 그르치면 큰 허물이 됩니다. 즉 하나님이 계획하셔서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쳐 쪼갠 거기서 생명의 영생수가 솟아나는 그 자체는 우리에게 허물이 아니나 이제 그 반석 생명의 원천수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믿는 일은 우리가 마땅히 이뤄가야 할 하나님의 소원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도 모세처럼 우리의 분을 못 이겨 종종 그리스도의 몸을 내리칩니다. 그분의 몸된 교회가 아파하는 것은 외부로부터의 공격보다 내부의 미숙함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환경을 원망했지만 성숙한 성도는 그래서 자신의 부족을 아파합니다. 잊지 마세요. 분노할 만한 일은 먼저 하나님께서 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 명령보다 내가 빠르게 반응해 감정을 따르면 낭패가 되는 것, 모세도 실패한 것을 우리가 어찌합니까? 다만 즉시 엎드리는 무릎과 돌이키는 심령을 주께서 심히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오늘 기억하며 주님만 찬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모세의 지팡이에 내리침을 받은 반석에서 생수가 솟듯이 십자가에서 몸을 깨뜨리신 주님으로부터 생명의 신령한 영생수가 지금도 그침없이 우리가운데 믿음의 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줄 믿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모세의 사이 반석에서 일어난 이 놀라운 사건은 결국 불신앙 가운데 있던 백성들을 용서하신 후에 생수를 공급해 새 생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용서는 반석을 내리침으로 대가를 치름으로 가능했던 하나님의 아픔이었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합니다. 반석은 뭘까? 반석은 죄를 담은 저주의 마른 돌덩어리입니다. 물을 품지도 못하고 내지도 못하는 아무 가치 없는 돌덩어리, 이 바위는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과 배신의 악함이 아닌가? 거기에 구원의 지팡이를 치켜들은 모세, 인생들의 죄를 반석에 옮기신 하나님의 은총을 잊어선 안 됩니다. 반석을 때림으로 이뤄진 하나님의 만족, 죄용서, 결국 터지고 깨지는 통증으로 죄 값을 치른 것입니다.
사48:2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막으로 통과하게 하시던 때 그들이 목마르지 않게 하시되 그들을 위하여 바위에서 물이 흘러나게 하시며 바위를 쪼개사 물이 솟아나게 하셨느니라.”
그렇게 우리 주님은 골고다에서 인류의 죄를 대신 갚기 위해 몸을 쪼개 제단에 드림으로 죄로 막혔던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가로막혔던 벽을 허무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존재는 그대로 복음이 되어 사막 같은 인생을 가는 모든 죄인들에게 지금도 끊임없이 갈증으로 타는 목을 채워주는 생수가 되셨습니다.
시편에서는 우리주님을 피할 산성, 바위라고 노래합니다.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하나님의 영광 그 얼굴을 보기 원했던 모세에게 하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출33:19-23”
모세처럼 반석 틈에 두신 우리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의 지팡이를 잡고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믿기 바랍니다. 지팡이를 들기 전에 먼저 순종으로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순종의 두 손을 높이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확신과 감사함으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험한 세파 지날 때 그 반석의 틈 안에 항상 숨겨주실 줄 믿습니다. 이미 열린 반석, 만세반석에서 생수가 끊임없이 저와 여러분에게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은혜의 생수가 흘러가는 그 끝은 주님 서 계신 발 앞입니다.
그 발 앞에 영원한 주의 나라가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 비전방주, 예수그리스도의 배로부터 흐르는 생명의 물길을 따라 오늘도 찬양 속에 꾸준히 주님나라 향하여 흘러갑니다. 고요한 이때는 기도하면서 더욱 주님과 깊은 교제로 채워 가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합니다.
[아버지 그렇습니다. 모두 고장이 난 핸들을 에덴에서 물려받은 우리가 남을 사랑하는 것이 결국 자기를 위한 일이고 자유하려면 용서라는 끝없는 훈련이 필요하고 경건연습이란 자기통제를 말한다고 배웠습니다. 원수를 사랑하시라는 말씀은 원수 안에 교훈이 있고 그를 어찌 대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도 일러주셨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 길을 잃고 헤매는 인생들 가운데 우리를 찾아 구원하신 주님. 우리 안에 끊임없는 탐심과 집착, 성냄과 질투와 교만과 무지와 아집과 허영의 원수가 있습니다. 원수 중 원수는 자신임을 깨달았사오니 우리 안에 무력과 천박함을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이 우리를 꼭 붙잡고 말씀으로 천국가기까지 친히 인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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