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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8.09.23. 주일설교 <행 2:14-36.(14-21봉독) 베드로의 증언>

by 설렘심목 2018. 9. 23.

2018.09.23. 주일설교 <2:14-36.(14-21봉독) 베드로의 증언>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항상 노래하며 행복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기분이 좋을 때 노래를 부릅니다. 여러분은 어떤 노래를 부릅니까? 노래라고 다 노래가 아닙니다. 썩어 냄새날 것을 노래하지 않기 바랍니다. 이왕 부를 노래라면 그 대상은 썩을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 풍성한 사랑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기회만 되면 찬송가든 복음송이든 노래를 많이 하세요. 노래대로 됩니다.

 

본문 14절에서 베드로가 우뚝 서서 소리 높여 말할 때 너희에게 알게 하겠다는 이일은 저들이 다 놀라 새 술에 취했다고 오해하는 성령충만의 사실을 두고 한 말입니다.

베드로의 복음증거는 지극히 간단명료합니다. 진리는 본래 단순합니다. 베드로는 요엘서의 말씀을 그대로 원용했고 거기에 복잡한 부언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베드로의 증언을 토대로 요엘서와 시편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의 증거를 간단히 요약한다면,

 

1. 이 현상은 요엘서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2:28-29절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이번에는 사32:15절입니다.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1) 약속처럼 마침내 부어주시는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너희가 본 것은 요엘서 2:28-32에서 예언된 말세에 하나님께서 부어주실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임한 것이며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5:16절에서도 술과 성령을 대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한 충만은 가득차서 빈틈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 곧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이 가득차서 다른 어떤 것들이 틈타지 못하게 된 상태입니다. 그렇습니다. 허탄한 것이 틈타지 못하도록 가득한 하나님의 영을 성령충만이라고 하는데 이는 돌이켜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특권이기도 합니다. 즉 회개는 성령충만의 첫 출발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후로 성령충만보다 더한 복이 있을까? 없습니다. 최고의 복입니다. 성령충만받기 바랍니다. 그러려면 뭔가 내안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둘씩 버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돌이킨다는 것은 발길을 돌린다는 것인데 지금까지 해오던 것들 중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들을 과감히 바꾸고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꾸준히 노력해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가득할 때 비로소 신앙인격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을 언급할 때 그 유명한 갈라디아서 말씀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5:19-24절입니다. 함께 천천히 읽을 때 말씀을 따라 성령의 임재가 충만할 줄 믿습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한평생 살면서 이보다 더한 복은 없습니다. 믿기를 바랍니다. 다음에는 본서 행2:19-21절입니다.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2) 주님은 반드시 재림하실 것이며 그 때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2000년 전의 주님오신 것과 달리 다시 오실 때는 성경의 예언처럼 하늘과 땅, 곧 천지가 개벽하는 일이 있습니다. 하늘과 땅이 두루마리 말리듯 말릴 것이라는 예언처럼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그때엔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 기절할 것이라고 복음서는 예언하고 있습니다. 주님 친히 하신 예언의 말씀 중 우리들은 어느 한 부분도 소홀히 넘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이루어질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그날은 옵니다. 반드시 오되 속히 온다고(1:1)했습니다. 본문 34절을 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더디 온다고 할 그 때 도둑처럼 갑자기 온다는 것입니다. 깨어있는 사람이라면 그러므로 하루하루를 살 때에 함부로 팽개치듯 사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내일 세상의 끝이 올 것 같은 마음, 곧 경건을 유지하며 자신의 삶과 인격과 관계 속에서 좋은 믿음을 유지함으로 늘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잘 단장된 신부의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구할 때 주님의 영 성령이 도우십니다. 본문 27절을 읽습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 16:8-11절의 재현이요, 성취임을 밝힙니다.

 

다윗의 신앙고백처럼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영원한 즐거움(16:11b)과 생명의 길이 너희가 죽인 나사렛예수이며, 그가 바로 하나님이 보내주신 메시아라는 것이 베드로의 선언입니다. 이 증거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큰 충격이었고 위험천만한 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성령충만한 베드로는 거침없이 요엘서(2:28-32)와 시편(16:8-11)을 들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신 것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고 높이셔서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너희도 보았듯이 내려 부어주셨다는 것을 유감없이 말합니다. 어떤 거리낌도 없이 증거하는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께서 잡히실 때 닭이 울기 전 3번씩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과거의 시몬이 아닙니다. 나약하고 비겁하고 신의가 없으며 혈기로 분별없던 옛사람 바요나 시몬이 아니라 담대한 믿음으로 주님을 증거할 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전도자, 베드로가 된 것입니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불타오르게 한 것입니까? 그것은 성령충만이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약속대로 주님이 하늘로부터 부어주신 성령의 가득함이 부족한 시몬을 영적인 거장 베드로사도로 만든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배동지 여러분. 우리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주님이 함께 하시면 저와 여러분, 엄두가 나지 않던 하나님의 귀한 일들을 넉넉히 이뤄냅니다. 시몬이 변하여 베드로되고 사울이 변하여 바울됐다면 우리도 변하여 능력의 새사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아 옥에 가두려고 가던 다메섹의 길 위에서 사울을 바울로 변화시키신 주의 권능과 사랑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십니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자신의 울타리에 가두지 않게 되기 바랍니다. 죽은 지 4, 냄새가 나던 시체, 나사로에게 나사로야 나오너라.” 온몸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자 다시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하신(11:44) 그 주님의 음성을 말씀 듣는 중 우리도 모두 듣고 자신의 옹색한 성곽 밖으로 뛰쳐나와 저 넓은 은혜의 바다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성령의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보면 할일이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헛된 것에 바칠 시간이 없습니다. 능력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을 붙잡는 순간 능력은 해결됩니다. 내 힘으로 할 게 없다는 겸손한 마음을 갖는 순간 주님은 우리들의 손을 잡아주십니다. 주님 손을 붙잡고 위대한 사역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귀신 동역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성령의 충만으로 능력자가 된 베드로가 선포한 것은 무엇입니까? 24절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3. 사망권세에 묶이지 않는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도, 베드로사도도, 당시의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 즉 구세주로 오신 것을 선포하고 전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당시 모든 힘 있는 나라의 왕이나 이단들은 대부분 신의 아들, 또는 태양의 아들 등으로 불렀기에 진정 단 한분이신 하나님의 아들은 그러므로 오직 예수 한분이심을 제자들은 강조해야 했습니다. 변할 수 없는 것은 복음과 복음을 전하는 제자의 사명인데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것과 지금도 이 땅과 저 하늘의 모든 권세를 한 손에 쥐고 영원한 나라의 생명기록부를 정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불변하는 사실을 믿고 선포해야 하는 것, 이는 성도들의 삶 가운데 최고의 영광이요, 특권이요, 사명인 것입니다. 왜 최고의 영광이자, 최고의 특권이고 최고의 사명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은 사망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끝을 하나님이 최고의 것, 즉 죽어도 죽지 않고 영원히 하나님 곁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갈 수 있는 단 하나의 길로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설교제목이 베드로의 증언입니다. 베드로가 한 증언 우리도 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거듭나기 전 부끄러운 신앙인격이었다면 우리도 낙심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의 충만으로 한 일 우리도 성령충만하면 넉넉히 할 수 있습니다. 거듭 일러드리는데 교회가 힘을 얻으면 가정이 새로워지고 힘을 얻습니다. 교회가 새로운 출발을 하여 새날을 열어 가면 가정과 자녀들과 관계에 새날이 열립니다. 지금까지 도우시고 많은 증거를 주신 주님 앞에 힘 있는 교회운동과 전도사역에 불을 지펴서 풍성하고 알곡 같은 교회와 가정을 다 이루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