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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8.09.30.주일예배 <히4:1-11. 믿음으로 들어가는 하나님주신 안식>

by 설렘심목 2018. 9. 30.

2018.09.30.주일예배 <4:1-11. 믿음으로 들어가는 하나님주신 안식>

[2018.09.13.목요. 해아래 완전한 인격체는 예수님 외 없다. 제 아무리 지혜롭고 완벽해 보여도 결국 모든 인간은 선악과 아래 어미의 뱃속에서 죄 가운데 태어났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말년이 그것을 증명한다. 나처럼 부족한 인생들이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욱 복되고 영광된 것은 깨달음을 간구함에 있다. 노년(세월)이 아름다운 이유 하나는 그러므로 깨달음이다. 깨닫는 복만한 복도 세상에는 드물다. 인생마다 조금 부족하게 태어난 이유가 그 부족으로 인해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며 따르라는 것인데 그리하는 자와 그와는 무관하게 하나님 없이 가는 자와의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다. 부족을 애석해 하던 날을 지나 이제 허물조차 감사하며 나아간다. 처음부터 90이 아니라 60으로 출발한 인생이 도리어 완성도와 성취감에 있어서 주께 감동할 일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해 한해 다르게 몸이 사위어 간다. 참 기쁜 일이며 또 아쉬운 일이다. 더 많은 좋은 것들을 남겨주고 싶은 욕심이지만 그것도 헛되고 헛되나니 다 헛된 것이 아닌가?]

 

구약에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모든 약속은 이제 신약에서 선포된 그리스도의 복음과 이어져 영원한 하늘의 소망으로 다시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져 다가오고 있습니다.

본문은 두개의 명령, 그리고 두개의 안식과 두개의 약속을 대비해 드러내면서 받은 구원을 결코 헛되게 하지 말라 권면합니다. 먼저 구약과 신약의 두 가지 약속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명령과 순종에 따르는 복된 약속입니다. 12:1-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희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에게는 아버지 집을 떠나란 명령과 거기 따른 조건부약속과 복을 동시에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명령이 이스라엘자녀들에게 잘 지켜지지 않자 약속하신 복을 위해 징계와 책망의 회초리가 등장합니다.

1절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함으로서 3장에서 거론된, 구약시대에 약속을 받고서도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한 출애굽 1세대들의 실패를 말합니다.


1절을 다른 말로 바꿉니다. “언약의 백성 중에도 불순종해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보고도 들어가지 못한 자들처럼 너희 중에도 믿음이 부족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자가 있을까 염려하노라.” 본문에서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란 말은 우리가 분명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아 죽은 후에 심판대신 영생에 들어갈 약속이 있다고 해도끝까지 긴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쌓기는 힘들어도 무너지는 것, 순간입니다. 성실히 믿음생활 잘하던 성도가 세상구경 한 번에 전혀 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도미노공연을 보면 쌓아놓은 수많은 블록이 순식간에 연쇄적으로 쓰러지는 것이 볼만합니다. 그것을 세우는 데는 며칠이 걸리기도 합니다. 우리 믿음도 한번 흔들리기 시작하면 작은 시험에도 송두리째 뿌리를 드러낼 수 있음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2절에서는 그 이유를 들은 말씀을 믿지 않았다.”는 데서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조건없이 아멘으로 받아 믿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3절과4-5절을 보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는 자가 분명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언약백성가운데에도 천국에 들지 못하는 이유가 불순종이라고 하는 사실은 오늘 본문이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약속의 유효성에 관한 경고입니다. 믿고 따르는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확정된 하나님의 뜻은 이미 3절에 밝히듯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정하신 것이요, 출애굽당시 가나안입성을 통해 분명하게 증거됐을 뿐 아니라 이제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약속 앞에 모든 교회와 성도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서두에서 이른 구약과 신약에서 다루는 두 개의 약속, 안식과 명령을 살펴봅니다. 여기엔 피할 수 없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 본질과 뿌리가 하나같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점입니다.

 

1. 따라야 할 명령입니다. 여기엔 붙잡아야 할 약속이 깔려 있습니다. 즉 약속을 붙잡고 명령 앞에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 7절은 시95:7-8절에 기록된 다윗의 노래로 하나님의 음성 앞에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며 순종할 것을 권합니다. 구약에서의 명령은 다분히 행위언약의 성격을 갖고 있어서 불순종시 당하게 될 책망과 불행을 곁들여 말합니다. 반면 신약의 명령은 믿고 사랑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주께 맡기라고 합니다. 골고다에서 흐르는 어린양의 보혈을 통과한 후에 하나님명령은 이렇게 공의에서 부드러운 사랑의 권면으로 옮겨갑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해 우리의 죄값이 말끔하게 치러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잊지 않아야 할 것은 명령보다 사랑의 힘이 더 크다는 겁니다. 우리는 징계가 두려워 명령에 순종하는 구약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은 그 뜨겁고 지속적이며 깊은 사랑 앞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명령을 따라가는 충성된 자들은 모두 명령권자의 사랑에 죽을 만큼 감동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두려워 따르면 그건 굴종이라는 불행이지만 존경하고 신뢰하여 기쁨으로 순종하면 행복한 신약의 사람들입니다. 순종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경외심, 우리가 정녕 주님의 실존과 구원 앞에 확실하게 감동하고 있다면 어떤 경우와 환경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절개는 그렇게 명령을 지켜갈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됩니다.

 

2. 다음엔 붙잡아야 할 약속입니다. 세상의 약속은 어길 것을 염두에 두고 여러 가지 단서조항으로 약속을 보장합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믿지 못해 단단히 하는 것이 세상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대부분 복을 주시기 위한 일방적인 언약선포로 돼 있어 하나님은 베푸시고 인간은 받기만 하는 것인데 그 복을 받지 않으면 안 되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게 약속이고 신약에선 하늘에 있는 가나안 곧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게 약속입니다.

 

지금 붙잡아야 할 약속에 대해 듣고 있습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약속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선포입니다. 선포한 하나님께는 전혀 문제가 없는 약속이 인간이 신뢰하지 못함으로 항상 문제는 시작됩니다. 그러나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약속이 지켜지도록 도우시는 방법으로 기상천외한 모든 것들을 다 사용하십니다. 매우 흔한 방법 중 슬픔과 아픔과 외로움이라는 것은 살면서 많이 겪은 일입니다. 복 받으라고 준비하신 채찍,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불편한 것들을 사용하기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예배라는 걸 통해 먼저 무릎 꿇어 돌아보게 한 뒤 말씀으로 깨우치시고 찬송과 결단을 받아 화목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벌써 용서할 준비가 돼있다는 것을 이 시간 아멘으로 받기 바랍니다. 누구 때문에 용서를 결정하셨습니까? 독생성자 예수님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본문은 출애굽의 상황을 예로 분명히 약속을 받고도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처럼 우리가운데에도 믿음부족으로 말씀과 행동이 연결되지 않아 신약의 안식,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뭐래도 우리 영원한 소망과 기쁨은 천국에 가는 것, 즉 본문에서 말하는 바, 하나님의 품 영원한 안식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소망, 주님 안에서 누리는 안식입니다. 본문에서는 안식이란 말이 11개 구절가운데 8번이나 나옴으로 중요한 주제를 이루고 있습니다. 본문이 지적하듯이 그 안식은 오래 전 창조 때부터 하나님이 6일 일하시고 쉬심으로 규례가 된 일입니다. 함께 읽은 5-7절에서 증거하듯 택함 받은 일부 이스라엘은 불순종으로 안식, 곧 가나안땅에 들지 못했습니다. 시로 말씀하신 과거에 묶이지 않는 오늘이라는 날에 구원을 외치는 주의 음성을 우리가 지금 듣습니다. 그리고 듣는 우리에게도 과거 모세 앞에서 이스라엘민족이 하던 것처럼 마음을 새롭게 해 약속하신 하나님의 안식, 천국입성을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히브리서기자는 가나안이 마지막 안식이 아니라 그것은 다만 예시적이요,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안식은 천국에서 시작된다는 걸 밝히고 있습니다.여호수아가 차지한 가나안은 잠시 지친 나그네의 쉴만한 그늘이었던 것이고 주께서 통치하시는 안식의 본향은 슬픔과 고통과 눈물과 한숨이 없는 곳, 어둠이 없으니 태양도 없습니다. 더 이상 기도하지 않고 얼굴을 보며 대화합니다. 직장도 없습니다. 매일매일 푹 자고 일어납니다.

 

10절을 함께 읽습니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육신을 떠나 잠든 자의 모습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매우 귀한 구절입니다. 즉 이미 주님의 안식에 들어간 사람은 그 평화의 나라에서 쉼을 얻는데 그 쉼은 하나님께서 창조사역 6일을 하시고 쉬심같이 평화와 만족가운데 들어있음을 말합니다. 11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안식중의 안식, 진정한 의미의 영원한 안식인 예수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수안의 안식은 죽어 저 천국에서는 분명히 이뤄질 일이지만 여기 이 땅에서도 얼마든지 누리는 하나 됨과 진정한 평화와 기쁨을 찬송에서 맛보며 기도로 구하고 말씀에서 감동으로 받아 믿음의 증거를 삼게 됩니다. 그것은 다시 우리의 육체, 곧 현실적인 삶을 통해 세상 모든 사람들 앞에 예수는 진정한 평화요, 안식인 것을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지친 인생, 나그네 길에서 안식이란 말은 언제나 소중합니다. 안식은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지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입니다. 진정한 안식은 재창조와 재생산을 위한 힘의 축적입니다.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은 그러므로 동시에 안식을 필요로 하는 보람있고 힘겨운 많은 일들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안식을 안식답게 하십니다. 이제 두 개의 안식을 정리함으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두 가지 안식은 불완전한 안식과 완전한 안식으로 나뉩니다. 불완전한 안식이 살아 육신 안에서의 안식이라면 완전한 안식은 몸을 떠나 영광스러운 영으로의 변화, 영화 후의 안식입니다. 불완전한 육체의 안식은 늘 내안에 안식을 방해하는 강한 적이 있으니 욕심이요, 이기심이요, 각종 죄성입니다. 이것을 죽이고 이기는 힘은 오직 주 예수를 믿는 깊은 믿음뿐입니다. 그래서 내 안에 내가 살지 않고 나를 위해 죽어주신 주님이 살기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과 더욱 친해집시다. 깊이 사귀기를 축복합니다. 주님과 친하면 기쁨으로 자원하여 그 명령을 잘 지킬 힘이 생깁니다. 그 명령 따라 약속 안에 살아가는 자, 진정한 안식인 예수그리스도 안에 들기를 소망합니다. 거기 편안한 쉼이 있고 평화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넘치는 풍성이 있습니다. 승리입니다. 아멘.

기도합니다.

본토 아비 집을 떠나라는 명령에 크게 담긴 복의 약속을 놓치지 않는 모두이길 원합니다. 충효라는 말에 담긴 민속의 전통에 휘둘리지 않게 하옵소서. 신앙을 위해 더 외로워져도 주님 계셔서 복되게 하시고 나를 낮춰 죽일 때 더 높이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예리한 할례의 승리를 주옵소서.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다고 하셨으니 그리스도의 용사되게 하시고 자기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뺏는 자보다 낫다고 하셨으니 감정통제에 승리하여 주님 손에 있는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다 받게 하옵소서. 교묘히 숨어들어온 악한 영을 기도로 발견하고 예수님 이름으로 결박해 쫓아내는 능력도 풍성히 부어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