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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8.07.22. 주일예배(롬12:1~2. 영적예배, 산제사)

by 설렘심목 2018. 7. 29.

2018.07.22. 주일예배(12:1~2. 영적예배, 산제사)

[젊어 세일즈맨으로 종일 방문영업을 하던 카네기, 어느 노인의 집 거실에 걸려있는 그림에 마음이 꽂힌다. 썰물로 해변에 걸친 초라한 작은 배와 낡은 노. 그림엔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고 적혀 있었다. 카네기는 노인이 떠난 후 평생 그 그림을 걸어두고 매일 보았다.]

 

1-11장까지는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구원의 교리를 다뤘고 12장부터는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생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요.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겁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1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1. 성도에 대한 권면의 권위는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바울이 형제들이라고 부를 때 형제의 헬라어어원은 자궁입니다. 한 어미의 자궁에서 나온 사람들이 형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궁 복음 안에서 새로 태어난 형제들입니다. 또 권한다는 것은 기도와 부탁이란 뜻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권면한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이렇게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권하는 이유는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자비로 인하여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깨달은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을 품고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라는 권면입니다.

 

이는 구약의 의식적이고 형식적인 예배가 아닌 진실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라는 건데 본문 1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여기 영적예배는 몸만 와서 앉아 있는 예배가 아닌, 온 마음과 영혼을 먼저 바치는 예배를 말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

1) 산제사입니다.

1절에 너희 몸을 산제사로 드리라고 합니다. 몸을 드린다는 건 육체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몸이라고 하는 것은 육신과 영혼을 포함한 전 생애요, 전인격을 말함으로 전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하라는 본문은 성도의 삶 자체, 인생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몸을 산제사로 드리라고 합니다. 산제사란 말은 구약의 죽여 드리는 제사를 염두에 둔 헌신의 용어입니다. 즉 산제사는 구약 시대의 동물을 죽여서 드리는 게 아니라 바로 살아있는 자기 자신을 드리는 겁니다. 또한 지역이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제사로서 살아 움직이며 생활하는 삶 자체를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으로 곧 성도의 삶이 제사요, 예배라고 할 때 성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산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나 가능한 예배입니다. 살아 있음이 예배여야 하는 성도의 삶, 무거운 주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기뻐하라 합니다.

2) 기뻐하시는 산제사입니다.

1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기뻐한다는 건 완전하게 일치한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자신이 하나님께 드리는 산제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해야 합니다. 13:16절 말씀에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선을 행하는 산제사, 나눠주는 산제사가 성도가 드려야 할 진정한 제사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걸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풍요하게 베푸신 것으로 낭비하지 않고 나눠주며 죄를 짓는 게 아니라 메마른 심령, 넉넉하게 보여도 들여다보면 허망하고 외로워 울적한 이들, 삶에 지쳐 절망하고 죽음을 사모하는 이들, 도무지 문을 닫고 열지 않아 도움을 거부하는 이들, 주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만나게 하시고 열게 하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3) 거룩한 산제사입니다.

거룩한 산제사는 세상의 제사나 구약의 제사와 구별된 제사입니다.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제사가 아니라 신령하고 순결한 제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거룩한 제사는 벧전 2:5절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입니다. 이방의 제사나 구약의 제사들은 모두 짐승을 잡아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거룩한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 곧 희생에 의지하여 삶으로 고백되는 제사가 거룩한 산제사입니다.

거룩한 제물이시며 인생의 유일한 구원자, 예수가 성도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 자체가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도라고 부릅니다. 거룩한 사람이 드리는 제사는 거룩합니다. 그 속에 거룩한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거룩한 몸으로 선을 행하며 거룩한 몸으로 사람들을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산제사요, 영적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완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세상에서 실천하는 생활을 통하여 이뤄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드리는 예배는 영적예배의 시작이며 그 예배에서 받은 말씀을 실천할 때 비로소 영적예배는 완성되는 겁니다. 말씀만 듣고 행함이 없는 이를 봅니다. 그건 예배를 보는 거지 드리는 건 아닙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삶으로 드리는 영적예배가 부실하니 결국 부패하여 세상의 지탄을 받게 됩니다. 다음 거룩한 제사이되 삶으로 드러나야 하는 산제사입니다.

 

2. 성도의 삶이 변해야 산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성도는 이전 죄악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새로운 사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를 드릴 수 있는데 먼저,

1) 이 세대의 본을 버려야 합니다.

본문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합니다. “이 세대라 함은,

첫째, 이 세상 신, 혹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다스리는 악한 세대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세대는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적대 세력입니다. 2:2절에 보면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대는 성도가 믿기 전 불신앙 가운데 있었던 사탄의 세대입니다.

둘째, 이 세대의 삶의 방식과 가치기준 등 시대정신을 포함합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 살던 자기 우상적이고 미신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준과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세상의 기준과 방식을 말합니다. 그것은 성경의 사상이나 정신이 아닌 세상철학이나 세상의 이념과 사고방식입니다. 사소한 것까지도 비성경적인 모든 것들과 세속적인 모든 풍습을 버려야 합니다. 사도바울도 예수를 믿기 전에 행하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겨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께 자신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기 위해서는 이 세대의 모든 것을 버리고 말씀과 성령으로 가득 채워지길 주께서 먼저 원하십니다.

2)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2절 말씀에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합니다. 과거 세상의 도덕기준이나 가치기준을 버리고 하나님의 기준에 의한 도덕과 가치의 기준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것이 속사람의 변화입니다. 어떤 것이 과연 옳은 건지 어떤 게 양심인지 성도는 성령의 지혜를 통해 마을을 새롭게 해 변화를 받으라고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변화를 본서 1:29~31절에선 세세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찾아함께 읽습니다. 말씀 읽는 중에 이런 추악함의 악한 영과 생각과 정신이 모두 결박되어 쫓겨 나가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본문 2절 뒤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마음, 결정 또는 하나님의 목적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가려내서 그 뜻대로 행하라는 것인데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 결정 또는 하나님의 목적을 가려내지 못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만이 분별 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세상에서 살다보면 여러 일들을 만나게 되고 그 가운데서 선택하여 결정하고 가야 합니다. 그때 성도는 그 여러 선택들 중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고 그 일을 행해야 합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을 수도 있었고 따먹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사탄 중 한 쪽을 택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 선택의 기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자신에게 그런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의 뜻 보다는 육체의 욕심을 따릅니다.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기뻐한다는 말의 어원은 완전히 일치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완전 일치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건 99%일치가 아니라 100%일치를 말합니다. 삼상15장에서 하나님은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기는 했지만 100% 순종이 아니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입니다.

완전은 빈틈없고 부족함이 없음을 말하지만 온전함은 본래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형상 본래모습은 지금 우리에게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죄로 인해 사람은 완전치도 못하고 또 온전치도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온전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온전함은 순전과 완전을 포함하지만 완전은 그것을 지키려고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하나님이 악하다고 하시면 악한 것이고 세상이 아무리 악하다고 해도 하나님이 선하다고 하시면 선한 겁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 세상을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안 그러면 세속에 얽매여 하나님의 뜻을 가려낼 수 없고 또 이룰 수도 없습니다.

 

성도여러분, 의식적이고 형식적인 예배를 버리고 우리의 몸을 하나님 기뻐하시는 산제사, 곧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길 축복합니다. 좋은 말만 하려고 노력합시다. 선을 베풀 때 진리부터 나눠주기를 즐거워합시다. 주를 의지할 때 이 예배 결코 어렵다고만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선 불신시절에 있던 모든 생각과 습관과 관계와 행위들을 버려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새롭게 변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의 영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기뻐하시는 뜻과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 그대로 믿고 그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세상과 교회가 타락하고 썩어가는 이 시대에 진정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삶이 예배가 됨으로 후대들과 함께 주님의 거룩한 예물이 되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가정들이 되시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