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 꼰대들'의 말 듣지 않는 음악…2018년판 新민중 등장
벌레소년의 저항, 자유를 '라이프스타일' 삼은 2030 특징
‘풍자와 해학’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벌레소년
벌레소년이 ‘586 좌좀 꼰대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초반 대학가에서는 ‘민중문화운동’이란 게 있었다. 비록 초보적인 수준이었지만 시, 소설, 노래, 민요, 연극, 영화, 탈춤, 마당극 등 각종 예술 문화 장르에서 좌파 문화운동이 대학 안팎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미 1970년대부터 작품이 생산되기 시작했고, 이런 창작 활동을 뒷받침하는 이론들이 등장했다. 당시 유행하던 이론 중 ‘풍자(諷刺)와 해학(諧謔)’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풍자와 해학은 봉산탈춤과 같은 장마당 공연에서 양반들에게 억눌려 살던 민초(民草)들이 자신의 한(恨)과 분노를 통쾌한 풍자를 통해 웃음으로 승화시켜 피지배계급의 심리적 단결을 고취하고 문화적 해방구를 확보하는 기법을 가리킨다. 그런데 백낙청, 염무웅 같은 1970-80년대 민중문학, 민중문화 이론가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던 ‘풍자와 해학’이 놀랍게도 2018년 벌레소년을 통해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시작부터 문제인
인민민주주의는 안하무인
폭락하는 비트코인
같이 문꼴오소린
매일 자살골만 골인
지지자는 GG치고 발인
…
공정함과 희망 따윈 니들에겐 없어
투표 끝났으면 입 닥치고 내 말에 복종
이게 바로 운동권의 민주화 맛이 어떰?
좌파 문화운동 이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과연 이보다 더 강력한 풍자와 해학이 있었던 적이 있는가? 단연코 없다. 2000년 경 미국유학 중 잠시 귀국했을 때 과거 민중가요운동을 함께 하던 선배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선배는 신촌에 있는 소공연장에서 열린 래퍼(rapper)들의 공연에 다녀온 경험을 나에게 말했는데, 지금 기억을 더듬어 회상해보면 이런 요지의 이야기였다: “래퍼들의 랩(rap)을 듣는 순간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민중가요와는 비교할 수 없는 파워를 갖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오늘 날의 민중가요는 랩이다. 사회 가장 밑바닥의 정서를 보여주는 노래는 민중가요가 아니라 랩인 것 같다.”
새로운 민중의 등장과 낡은 시대의 몰락
래퍼는 단순한 가수가 아니다. 래퍼는 우리 시대의 음유시인(吟遊詩人)이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선글라스를 쓴 시인이다. 그들은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뮤지션(musician)이며, 그들의 가사는 저항문학이고, 그들의 음악은 저항음악이다. 한마디로 길들여지려야 길들여질 수 없는 야생마와 같은 음악이다. 거칠다. 가사에 욕설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음악이다. 한 마디로 586 ‘꼰대들’의 말을 듣지 않는 음악이다. 왜 좌파들은 랩이 진정한 민중음악이 될 가능성을 보면서도 문화운동 안으로 끌어들일 수 없었을까? 왜냐하면 랩이 너무나 저항적이고, 체제 전복적이고, 파괴적이었기 때문이다. 운동권 안으로 포용했다가 만약 이들이 좌파이념을 비판하기 시작하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가장 우려하던 일이 지금 일어났다. 새로운 민중이 나타나 엄청난 풍자와 해학으로 해묵은 민중문화를 뚫고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벌레소년은 “제 신분은 그냥 백수 히키코모리 잉여노동자이옵고 이를 3글자로 줄이면 ‘네티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뉴데일리’ 인터뷰, 2018.2.1)라고 말한다. 무직자로 방구석에 콕 박혀 편의점 알바를 전전하는, 2030 네티즌들은 2018년 판 민중(民衆)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인정하듯 A급이 아닌 B급 뮤지션이다(‘미래한국’ 인터뷰, 2018.1.31.). 그가 발매한 디지털 음반은 대형유통사와 판매업자들의 자체 검열에 의해 “정치음악”으로 낙인찍혀 전곡 다 삭제되고 금지되는 정치 탄압까지 받았다. 그는 친구가 자기에게 절대 신분을 노출시키지 말라고 충고했다고 말하면서 “아마 제가 못생겨서 그런 거 같습니다. 하하”라고 말했다(‘뉴데일리’ 인터뷰).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2018년 판 민중이 되기에 필요·충분조건을 두루 다 갖추고 있는 셈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청년이 ‘벌레’라는 호칭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는 청소년이 아니라 충소년(蟲少年)이다. 기독교도들은 기도할 때 종종 “벌레만도 못한 나의 죄 때문에 그리스도가 죽으셨다”는 말을 한다. 이때 그들은 여전히 자신을 벌레로 보지 않고 인간으로 본다. 그런데 2030 네티즌들은 아예 자신과 서로를 ‘벌레’라고 부른다. 자신을 벌레로 보고 벌레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스스로를 사회의 최하층으로 보는 자의식(self-consciousness)의 해학적(諧謔的) 표현이다. 그런데 사회 제일 밑바닥에 있던 이 벌레들 중 한 마리(?)가 문재인 정부와 여당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왔다. 이것은 백낙청 류의 민중문학, 민중문화 이론이 끝장났음을 선언한 것이다. 586 좌좀 꼰대들이 지난 30여 년간 만들어온 세상이 끝나고 있다는 불길한 전조(omen)며, 이 시대가 가고 곧 새 시대가 올 것이라는 희망적 징조(sign)다. ‘달(Moon)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자유는 이념이기 이전에 라이프 스타일이다
벌레소년은 왜 이렇게 강력하게 저항하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그 저항이 이념적 이유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적지 않은 586 세대들은 좌우를 불문하고 벌레소년이 이념적으로 각성한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쉽게 실망한다. 여기에 생각의 함정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를 이념의 관점에서 이해한다. 자유가 이념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자유는 이념이면서 동시에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이라는 점이다. 기성세대는 자유를 이념으로 접근하지만, 2030 세대는 자유를 이념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자유는 이념이기에 앞서 삶의 양식이다. 자유는 이미 그들에게 환불이 불가능할 정도로 몸에 맞는 옷이 되어버렸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유는 생활의 일부가 되고,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되어버렸다.
지금 정부 여당이 잘못 건드린 것은 바로 2030 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그들은 이제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다. 저들이 그들의 삶의 양식을 바꾸려고 한다는 것을. 헌법에서 자유, 이 두 글자를 빼는 것에 대해 그들은 이념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부정되었을 때 강력하게 반발한다.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2030 세대에게 우리가 소통해야 할 것은 자유의 이념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설명하는 것이라기보다는 586 좌좀 주사파가 원하는 세상이 도래할 때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경험하고 즐겨온 라이프 스타일을 포기하고 그들이 강요하는 삶의 양식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는지를 계속 집요하게 물어야 한다. 좌파들이 선전하는 평등의 이념이 듣기 좋기 때문에 지금은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평등이 가져올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면 평등을 원할 2030 세대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벌레소년이 보여준 새로운 문화현상에서 우리가 놓쳐선 안 될 또 다른 포인트는 2030 중에 철저하게 자신을 ‘개인’(individual)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베에는 ‘우리’란 개념이 없습니다. 오직 ‘나와 너’만 있죠. 즉,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 자유, 나의 자유가 불편하면 꺼져. 너 따위에 맞춰주지 않아’ 스피릿입니다.”(뉴데일리 인터뷰)
이 언명(言明)에는 집단으로부터 독립한 ‘근대적 개인’의 도래가 나타나 있다. 586 좌좀 꼰대들이 키워놓은 집단주의(collectivism)적 사고방식에서 해방되어, 자신과 상대방을 독립적 개인으로 바라보는 이 스피릿 속에 근대적 ‘자유주의’ 이념의 핵심인 ‘개인’이 굳게 서 있다는 것을 읽어낼 수 없다면 이념적 문맹(文盲)에 빠져 있는 것은 2030 세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지금 서서히 깨어나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민중(民衆)이 아니다. 각성한 자유시민이다. 우리가 그렇게 목매어 기다리던 자유시민이 이제 서서히 깨어나 자신의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지키기 위해 나서기 시작했다.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려면 아직 좀 더 시간이 필요하고 정부 여당의 계속적인 실수와 헛발질이 필수불가결하다.
김철홍 객원 칼럼니스트(장신대 신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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