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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8.01.21.주일설교<눅4:1-13. 마귀의 시험으로 시작된 복음의 출발>

by 설렘심목 2018. 1. 22.

2018.01.21.주일설교<4:1-13. 마귀의 시험으로 시작된 복음의 출발>

[우리도 모르고 그 자신도 모르는 복 받을 만한 사유를 하나님은 찾아내셔서 복을 주신다. 이 사실을 모를 때 인간은 받은 복을 비교하면서 시새움하고 분노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진정 믿고 의심하지 않아 의지하는 사람이라면 그 분의 어떠한 조치에도 아멘으로 답하며 나아가 기뻐하며 불평하지 않는다. 9시에 왔든 정오에 왔던 오후 3시에 왔든 주께서는 어떤 이유로든 모두의 손에 하나 가득 복을 들려 보내시기 원하신다. 바꿔보면 내가 받는 복도 내게는 전혀 복 받을 이유와 무관하게 일어난 터무니없는 것이 아닌가? 본래 자신의 존재가 분명하게 무()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안다면 내 것은 본래 없었으니 인생은 끝까지 거저 얻은 은혜에 손해라는 말은 성립되질 않는다. 그리고 불평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시새움일 뿐 근거자체가 없는 것이다. 끝이 없는 지고지순의 사랑이 그분의 본질이신 것을 알기까지 인생은 불공평과 불평인 이유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 깨닫는 순간 내가 어디에 서 있든지 거기가 출발점이다.]

 

본문은 우리 주님의 공생애가 시작되기 전 40일간의 시험을 거치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시험을 살피면서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평생 끊임없이 다가오는 시험과 고난 앞에 어찌해야 성도의 유익인지 함께 듣기 원합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야의 사역은 어떻게 시작됩니까? 본문 1절을 함께 읽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그리스도의 구원사역 그 첫 순서,

 

1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위대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구원사역, 그 출발은 역시 성령의 충만하신 임재였고 그것은 결코 인간의 출발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주관하셔서 보혜사 성령의 충만한 임재가 출발이 된 것입니다. 나사렛청년 예수의 몸에 거룩한 영이 임하시되 가득하게 오셨습니다. 성령의 충만하신 임재 속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뜻합니다. 완전하신 하나님, 문제가 없으시고 모든 생명을 일으키셔서 사랑하시는 하나님, 고치시고 채우셔서 당신만 바라보게 하시는 최고의 의미, 가치. 영원한 생명과 존엄한 모든 품격의 대명사인 하나님, 그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최고의 능력과 고도의 안전과 극치의 기쁨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넘은 40일간의 시험, 그것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로서 완전한 육체요, 완전한 신으로서의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하기에 충분한 하나님의 구원활동 첫 시작이었습니다. 2절입니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그리스도의 구원사역 그 두 번째 순서.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성령에게 이끌리셨다면 필경 좋은 일과 거룩한 일이 일어나야 하는데 본문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게 하십니다. 그 시험은 육신이 견디기 어려운 먹는 것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40일간을 물조차 입에 대지 않고 끼니를 멈춘 것입니다. 3절입니다.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1) 육신을 빙자하여 영혼을 시험했습니다.

40일간 극심한 굶주림의 고통 속에 사단이 속삭인 시험은 그 내용이 심상치 않습니다. 단순히 배고픈 것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란 점을 흔들어 부추김으로 배고픈 것을 해결하라고 유혹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능력을 왜 못하냐고 조롱했습니다. 뒤집어보면 이 질문에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의 출발과 아울러 배고픈 것을 미끼로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자극적인 확인입니다. 인간 육체가 뭐로 버티며 정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는 것입니다. 이 시험은 참으로 무서운 함정입니다. 이 시험에 정확한 답변을 못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들이란 증거를 결과적으로 피하는 게 됩니다. 3절의 내용은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명령하여 떡이 되게 해서 시장기를 면하라. 그러면 내가 널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겠다. 그리 못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지마귀가 우리들보다 영리합니다. 마귀의 논리는 대단합니다. 우리 주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4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하였느니라.” 영악한 사단의 논리에는 다른 변증으로 맞설 것 없습니다. 오직 말씀과 믿음으로만 마귀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즉 본문에서는 굶주림에 대한 시험이 아니라 굶주림을 빙자해 주님의 정체성을 흔들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충성과 순결을 한 번에 무너뜨리려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에는 5-7절입니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2) 천하만국의 영광과 권위를 미끼로 사단의 발아래 엎드리라는 것입니다.

이 역시 중요한 내용은 천하만국의 영광과 권위가 아닙니다. 지금 읽은 세 개 구절에선 세상천지만국을 마귀가 위임받아 주장하고 있다는 허위사실과 그것을 다 주고라도 사단은 예수그리스도와 교회를 발아래 무릎 꿇게 하고 싶다는 무서운 음모입니다. 이미 불신자들은 이러한 사단의 계략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우리는 가까이서 늘 보고 삽니다. 천하만국의 영광과 권위라 함은 세상이 주는 쾌락과 휘황찬란한 불빛아래 윙크하며 손짓하는 세상문명의 환상과 달콤함입니다. 그러한 유혹을 못 이겨 거룩하신 예수님이 부담되는 세상불신자들은 이미 마귀에게 자신의 영혼이 맡겨진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대책 없이 가고 있습니다. 저들은 이 땅에서 누리는 복을 다 합해도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하늘의 복, 영생의 구원 앞에 눈이 가리고 마음이 닫혀 있다는 것입니다. 가여운 영혼들입니다. 그 영혼을 향하여 불붙는 열정이 오늘 말씀가운데 위부터 내리시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영혼을 내게 맡기고 부귀영화를 차지하라는 5-7절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에게 가장 힘든 유혹입니다. “그깟 영혼이 다 뭐고 예배가 다 뭐냐? 짧은 한평생 잘 먹고 잘살면 되지,” 다른 것 다 잃어도 영혼을 지켜야 합니다. 영혼을 소홀히 여기면 모든 인생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것, 엄숙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무당이나 만신이 되는 과정에 그게 싫어서 피하는 자에게 세상 돈 끌어 모아 잘 살게 해줄 테니 아무 걱정 말고 내림굿을 받으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주님이 주신 구원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이 자신의 생명을 주고 사들인 우리들의 영혼은 그만큼 귀한 것입니다. 우리를 피로 사들인 주님 외에 다른 데에 내 영혼과 삶을 드릴 수도 없고 팔아도 안 됩니다. 그건 파멸입니다. 성도가운데 그럴 사람 없다고 믿고 싶지만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어른들이 야단칠 때 이렇게 말합니다. “어디에 정신을 팔았길래 이게 뭐냐?”

한눈 팔아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히면 예배 중에도 영혼은 다른 데 가고 몸만 예배당에 앉아 있는 사람 있습니다. 더 나아가 주일날 예배드리지 못할 이유 앞에 굴복하는 것, 예배와 영혼을 잠시 팔아버린 범죄입니다. 우리의 소유가 아닌 것 우리가 팔면 횡령죄입니다. 우린 이미 십자가에서 우릴 구원하실 때 주님의 것이 됐기 때문입니다.

 

천하만국을 다 줄테니 내게 절하라고 유혹하는 마귀에게 주님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신 신6:13절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기억하세요. 이 땅에서 누릴 복을 다 준다해도 마귀에게 넘어가선 안 됩니다. 땅에서 받는 복은 순간 지나가면 썩어질 것이지만 하늘의 복은 끝이 없는 영원한 생명과 더불어 꺼지지 않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9-11절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91:11-12>”

 

3)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능력으로 증거하라는 유혹입니다.

마귀는 주님을 예루살렘에 있는 높은 성전꼭대기에 세우고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란 말로 유혹합니다. 3절에서 돌들로 하여금 떡이 되게 하라는 유혹에서도 동일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하면서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일관되게 신명기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판단력과 분노로 하지 않으셨음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굶주린 상태에서 육신으로 유혹할 때는 6절처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줄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나 능력과 명예를 두고 유혹할 때에는 마귀도 성경말씀을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고도화된 마귀는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서 성도들을 혼란에 빠지게 합니다. 세상곳곳에 도사리고 활동하는 마귀의 제자들과 끄나풀들은 여러 가지 등급을 갖고 활동합니다. 그 중에 지도자급 들은 하나님의 성경을 사용할 줄 압니다. 그래서 가장 힘든 교회의 대적은 교회와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는 이단과 사이비 마귀들입니다. 거기 비하면 무당 따위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검불들입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어떠한 정황에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구원사역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본문 13개 구절에서 성경인용이 5번이나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의 시작, 그 출발이 성령의 충만한 임재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 나갔고 두 번째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음으로서 마귀를 물리치며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사역 끝으로 세 번째,

 

3. 하나님 주신 말씀의 검을 붙잡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말씀에 무지하면 영적으로 강한 군사가 되지 못합니다. 마귀도 성경을 인용해서 주님을 시험했습니다. 강한 군사는 굳센 승리의 투지와 용맹과 함께 강력한 무기로 무장합니다. 대장되신 주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때 믿음을 받쳐 주는 성경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귀를 향하여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내가 장전한 실탄, 성경말씀은 과연 내가 생명 바쳐 신뢰하는 것인가를 짚어봐야 합니다. 나도 불안한 성경이라면 그 실탄은 자칫 공포탄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본문 13절을 함께 읽고 오늘 주신 말씀 마무리합니다.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동안 떠나니라.” 시험 후에 얼마동안 주님 곁에서 떠나 있는 마귀는 지금 어디서 뭐합니까? 주님이 늘 우리와 함께 계시듯 마귀도 늘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맴돌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바울사도가 고백한 두 법은 언제나 하나님의 법과 땅의 법으로 우리 안에 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합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 인류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실 때 인간으로서는 넘기 어려운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세상 모든 것 다 준다고 유혹해도,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묻는 결정적 함정의 질문과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고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하셨습니다. 마귀는 말씀 앞에 시험을 멈추고 얼마간 떠나갔습니다. 성경은 마귀가 죽거나 없어진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13절에 얼마동안 떠나니라.”고 증거합니다. 주님을 시험하다가 실패한 마귀는 이제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를 겨냥해 잠도 안자고 활동합니다. 늘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말씀과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자신의 영혼을 마귀의 시험으로부터 지켜내는 일에 승리해야 합니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복음으로 인해 오는 세상은 물론이요, 이 땅에서도 주님 증거하기에 넉넉하시기를 우리의 모든 게 잘 되기를 바라시는 주님이름으로 모두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