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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8.01.07.주일설교 <수3:9-17. 받을 딛자 멈춘 요단강물>

by 설렘심목 2018. 1. 8.

2018.01.07.주일설교 <3:9-17. 받을 딛자 멈춘 요단강물>

[젊은 시절 어느 날, 나는 갑자기 부쩍 자라 청년이 된 나를 보았다. 내면에는 아직도 어린 내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가녀린 어깨를 들먹이며 울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나는 다 큰 청년이 돼 세상은 더 이상 나를 애기처럼 봐주려하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청년이 메는 무거운 배낭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70이 다된 지금도 내 안에는 아주 어설프고 주즙어하는 어린 아이가 있다. 내가 오래 전 본 내 안의 작은 아이를, 외로워서 글을 쓴다는 극작가 박수진은 영화 국제시장에서 늙은 덕수의 마지막 신(scene)을 통해 유감없이 그려냈다. 어찌 나뿐이랴? 누구나 자신 내면에 아직도 미숙하고 아직도 엄마치마폭에 숨고 싶은 어린 자신을 외면한 채 좌충우돌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는 게 아닌가? 늙고 젊음이 무관하게 한번쯤은 돌아보자. 가곡 가고파의 가사처럼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가움츠려 떠는 어린 자신을 안아주고 위로하자. 넌 지금 잘하고 있는 거라고, 그만하면 됐다고,]

 

모세의 수종자로 있다가 지도권을 이어받은 여호수아는 본래 소심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모세 못잖은 위대한 일을 감당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내용은 두 사람을 보내 여리고를 정탐한 뒤에 일어난 요단강의 기적입니다. 모세가 홍해를 건넌 것처럼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동행을 요단강의 기적으로 보여주심으로 가나안시대를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베풀어주신 많은 기적에 비하면 백성들의 믿음은 허약했습니다. 눈으로 놀라운 일을 보고도 백성들은 얼마 안가 까맣게 잊고 하나님과 지도자에게 불평합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보이는 건 사막의 먼지모래뿐 삭막한 현실은 하나님 살아계심에 대한 믿음을 늘 흔듭니다. 요단강의 기적은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 우리가정, 우리교회에도 이미 시작된 줄 압니다. 요단강의 기적,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먼저 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요단강의 기적, 그것은,

 

1. 하나님의 동행을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7절에서 밝힌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아직은 애송이티를 못 벗은 젊은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담대한 지도력과 믿음을 주시기 위해 당신의 임재를 백성 앞에 드러내시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임재는 여호수아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고 그 동행은 여호수아의 지도권부양이라는 큰 은혜 중 은혜였습니다.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는 걸 모두에게 알리시겠다는 하나님의 배려, 모세처럼 여호수아를 높이시고 크게 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도록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언제나 하나님자신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의 선하신 목적을 위해서 한없이 소심한 여호수아를 들어 사용하시기로 하셨고 요단강가 앞에서 드디어 놀라운 일을 백성들 앞에 드러내십니다. 그것은 기적보다 더 귀하고 중차대한 하나님의 동행이 여호수아의 권세라는 것을 알게 하려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앞에 있는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 바로 앞에서 백성들이 양질의 삶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하는 중요한 근거요, 지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 저와 여러분에게 동행의 증거로 여호수아보다 더 많은 증거를 주신 줄 믿습니다. 이번엔 본문 10-13절까지 함께 봅니다. “또 말하되 살아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족속과 헷족속과 히위족속과 브리스족속과 기르가스족속과 아모리족속과 여부스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로서 너희가 알리라.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이제 이스라엘지파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붙잡아야 할 사실 하나님의 동행, 그것은,

 

2. 확고한 믿음은 기적을 선물로 받습니다.

 

가나안후기의 일곱 족속은 열두지파 정탐자 들의 보고처럼 실제 장대한 자들이어서 백성들이 불안해하는 상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단강의 물이 멈추게 하심으로 이 일곱 부족의 추방에 대한 증거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즉 기적은 기적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고 그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더불어 하나님이 가나안정복을 위한 모든 조치가 완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약속이었습니다. 10절에서 거론되는 일곱 족속은 이스라엘의 신앙오염을 막기 위해서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쫓겨나야 할 대상들입니다.

그리고 순수한 믿음을 확정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 일곱 족속 제거의 증표를 요단강의 기적으로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여기 우리가 잊어선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13절을 보면 제사장들이 요단강바닥을 밟은 것은 요단물이 멈춘 뒤의 일이 아닙니다.

13절입니다.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물이 멈추기 전에 제사장들의 발이 먼저 요단물을 밟고 서라는 것입니다. 물이 멈춘 것은 제사장들의 발이 강물에 담긴 후였다는 것입니다. 기적이 먼저입니까? 믿음으로 행함이 먼저입니까? 순결하고 깊은 신앙은 기적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나아갈 때 기적이 선물이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제사장들에게 요단강물을 먼저 밟고 서란 명령을 한 여호수아나, 그 말을 믿고 흐르는 물에 언약궤를 멘 채 발을 디딘 제사장들이나 하나님 앞에 순결한 믿음의 행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기적을 선물로 받아 증거를 얻었다는 사실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도전이 되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의 여호수아는 아직도 부족하고 소심합니다. 그러나 요단강의 기적을 통과하면서 이스라엘은 여호수아를 축으로 단단하고 반듯한 신앙공동체로 세워져 갑니다.

그것은 요단강을 믿음으로 건넌 후의 일이었습니다. 17절입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백성이 다 건널 때까지 법궤가 강물을 막아 백성들을 지켜 주고 있습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나라나 그 역사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3. 나그네 한평생, 하나님의 말씀이 지켜줍니다.

 

모든 생명체처럼 사람도 혼자 살지 않고 서로 얽혀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사람 인()자가 그렇듯 서로 의지하고 사는 게 인간인데 의지하는 모든 것 가운데 실망을 주지 않는 게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이 영원하게 내 곁에 있어주지 못하니 결국 모든 눈에 뵈는 게 다 실망을 주며 떠날 것들인 것은 사실입니다. 6.25동란 흑백사진 가운데 가장 처절한 사진 하나를 잊을 수 없습니다. 두 살쯤 된 딸애기가 죽은 엄마 곁에 털썩 앉아 하염없이 소리치며 우는 장면이고 또 하나는 돌쯤 되는 아들애가 울다 얼룩진 얼굴로 죽은 엄마 젖을 움켜 쥔 채 우는 장면입니다. 수많은 애기들이 죽은 엄마 곁에서 그렇게 울다가 지져서 상당수 굶어 죽어갔고 얼어 죽고 더러는 사람 손에 이끌려 입양되거나 고아원에 맡겨졌습니다. 그 애기들에겐 엄마가 모든 의지였고 안식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른들의 욕심으로 하늘과 땅이 무너진 것입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상상 못할 비극이 일어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럴 겁니다. 육체가 의지하는 여러 가지 가운데 평화보다 더 중요한 동기는 없고 그 평화를 위해선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합니다. 그러나 영이 죽어 있으면 보이는 것만 중시하게 됨으로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칩니다.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지켜 주시지 않으면 이 땅은 머지않아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철저 개인적입니다. 다 뒤집혀 지옥이 돼도 믿음으로 주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는 그 곳이 곧 천국가는 사다리길입니다. 천국의 때가 드디어 시작되는 첫 단추가 열리는 것입니다. 두려워 할 것은 전쟁이 아닙니다. 아직도 회개할 게 남았고 아직도 전도해야 할 사람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릴 돈이나 사람이 지켜주지 못하고 국가도 지켜주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굳게 붙잡고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릴 지켜주십니다. 붙잡되 굳게 붙잡기 바랍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놓치지 않고 붙잡는 게 굳게 붙잡는 것입니다.

 

119:105절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요, 권세의 표징이요, 동행의 깃발로서 항상 백성 앞에 제사장들의 어깨위에서 진두 행군합니다. 하나님의 동행은 인생의 최고능력이 되며 최상의 품격이요, 영원한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요단강을 딛고 있는 동안 모든 백성들이 마른 요단강 길을 지나 약속의 기름진 땅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활동과 우리의 믿음은 모든 세상파도 앞에 불패승리의 도구요, 방패가 될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까지 지켜주신 동행의 하나님이 우리교회와 모든 가정을 극진히 사랑하십니다. 앞으로도 여전히 우리 앞에 말씀으로 앞장서시면서 모든 지침과 교훈과 위로와 평강이 되실 겁니다. 법궤를 어깨위에 메고 거친 들판이나 물이 넘치는 강에 명령을 따라 성큼 발을 내디딜 열두 제사장들을 하나님이 지금도 찾아 세우시고 키우십니다. 그 가운데 우리와 우리후손이 있습니다.

 

흐르는 강물에 순종함으로 믿음의 발을 내디딘 제사장들처럼 주님 인도를 따라 첫발을 믿음으로 내딛기 원합니다. 그 선물은 저와 여러분 안에서 반드시 몰아내야 할 신앙오염의 불순물과 여러 가지 일곱 부족을 주께서 깨끗이 청소해 주시는 일입니다. 평생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안 되는 일을 주님이 기적의 손으로 이루실 것입니다. 새해 가정들 앞에 교회 앞에 그리고 모두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선물로 다가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